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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장구 Jul 28. 2024

어느 누구도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나지 않았다.

사람은 자기자신을 정의하는 존재다.

"우리는 민족중홍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려... " 지금 다시보니 무슨 네오나찌당 창당선언문 같은 이글을 베이비부머세대들은 모든 행사에서 복창하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외며 자라났다. 지금 6,70대 머릿속이 부러진 코르크마개같은 것도 이런 성장과정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그뿐인가? 모든 책은 개인의 집단에 대한 사명을 설파하고 있다. 화랑관창, 강감찬, 세종대왕, 신사임당,  이순신, 류관순...

칸트가 인간은 이성을 지닌 존엄한 목적 그자체이며, 절대로 수단이 될 수 없음선포한지 거의 200년이 지난 시점에 한국인들은 매일같이 그렇게 세뇌되고 있었다. 그 영향은 사회전체와 국민들에게 지금도 남아있다. 민족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축구를 위하여, 연극을 위하여... 스스로에게 사명을 부과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말릴 일은 아니다. 그것없이는 생의 동기와 횔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 인 것도 안다. 그러나 방편은 방편이고. 사실은 사실이다.

나는 조금의 사명과 조금의 자기 의식과 조금의 즐거움과 조금의 허무를 매일같아 느끼는 존재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자신에게 방편으로 사명과 의미를 부과하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은 절대로 말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짧은 글이라도 사람과 사명, 의미를 연결지어 일반화하는 것은 과도한 수사이다. 편의상 쓰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어쨌든 나는 매우 거슬린다.(내 브런치이니...)

불교에서는 수상행식의 감각의 외피로 '나'의식이 생겨날 뿐 원래부터의 나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없다.", "마음은 없다"는 아리송한 화두가 왜 수천년간 수도승과 일반인에 구애없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와 "마음"으로 전승되어 왔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간혹 가지면 지금 지닌 "사명"과 "의미"를 새롭게 하는데도 도움이 될것이다. 이정도 간단한 회의도 이기지 못하는 "사명"과 "의미"란게 과연 무엇일까? 내 인생을 걸만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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