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회계적인, 너무나 회계적인 가치론
어떤 "이것"에 대하여 "이것의 가치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어렵다. 조금 쉽게... "이것은 얼마짜리인가?"라고 질문을 바꾸면... 비슷한 질문이다. 이제 쉽게 대답한다. 10원짜리이다. 백원짜리이다. 만원짜리이다.... 1억원 짜리이다. 지불한 금전으로 대답한다. 연장해서 "우리 사랑의 가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계산이 안되어서 일 수도 있고, 솔직히 말할 수 없어서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학적인) 정답은 있다. 가치는, 교환가치는 내가 이것과 바꾼 그것이다. 내가 돈을 지불하고 무엇을 획득하였다면 내돈의 가치는 내가 내돈과 교환한 그것이고, 내가 당근을 하였다면 내가 떠나보낸 애장품의 가치는 내가 수령한 댓가이다. 경제학적인, 지극히 경제학적인... 그래서 기업회계에서는 어떤 기계를 다른 기계와 교환하였다면 내가 건네준 기계의 가치는 내가 건네받은 대상물로(혹은 대상물의 금전적 가치로) 장부가격을 기장한다. 그러므로, 나의 어떤 행위의 가치는 내가 그것을 위하여 바친 그것이다. 화랑관창의 목숨의 가치는 신라이고, 사명대사가 승병을 이끌며 포기한 불살생의 불도의 가치는 조선이다. 혹은 조선의 백성이다. 어떤 남녀가 결혼을 했다면 신랑의 가치는 배우자인 신부이고, 신부의 가치는 배우자인 신랑이다. 그래서 예수가 성모마리아를 뒤로하고 십자가에 매달린 것은 자신의 가치가 어머니의 고통보다 더큰 그 무엇이었기 때문이고, 석가모니가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부인과 부왕을 뒤로하고 갓 태어난 자식을 내 팽개치고 불법(佛法)을 구한 것은 불법에 왕비와 부왕과 자식과 지신이 왕위를 계승하기로 예정된 카필라국의 존망보다 더 큰 가치를 매겼기 때문이이다. 70년대, 80년대 우리 어머니들은 학교 난간에 매달려 구호를 외치는 자식들에게 "제발 나를 봐서..."라고 애원을 했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고개를 숙인 아들들은 독재타도보다. 어머니를 더 중하게 여긴 것이고, 기어이 뜻을 꺽지않은 아들들은 민주주의의 대의를 개인의 혈연보다 더 중히 여긴 것이다. 둘다 장하다. 장한 사람은 무엇을 해도 장하고, 아닌 사람은 무엇을 해도 아닌 것이다.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