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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남방 Apr 06. 2020

노르웨이의 숲은 자라고 있다

미래의 도서관



A forest in Norway is growing.





'노르웨이의 숲은 자라고 있다.' 그 단 한 줄의 문장과 그 뒤로 재생되는 노르웨이 숲의 호흡이 인상 깊은 페이지가 하나 있다. 2014년, 노르웨이 오슬로 외곽의 어느 숲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한 예술가가 공공 프로젝트 : Future Library를 시작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Katie Paterson. 천 그루의 모종을 심었고 백 년 후 이 나무들은 노르웨이의 거창한 숲 일부를 이루고 있을 테다. 백 년 동안 매해, 프로젝트 이사회는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작품을 헌정받는다. 그 책은 그대로 오슬로 도서관 특수 금고에 봉인되고 2114년. 심어진 천 그루의 나무들을 이용해 한정판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백 년 동안, 천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백여 개의 작품이 백 년 동안 쌓여 세상에 나오게 된다. 현재 6개의 작품이 헌정되었고 한글로서는 처음으로 한강 작가가 집필한 소설이 봉인되어 있다.


케이티 패터슨의 설명을 읽게 된 순간 앗, 이거다 하고 어느 생각이 스쳐갔다. 들고 다니는 노트를 열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을 적기 시작했고 지금은 일부를 브런치에 옮겨 적는 중이다. 패터슨의 작품에 순간적으로 영감을 받게 된 것은 지금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도서관'이기 때문인 영향이 크다. 공공시설에 대한 오늘날의 도시적 정의는 어떠한 건축적 언어들로 이루어져야 할까? 앞으로의 건강한 도시에서의 공공시설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대학원 논문에서 다루었다. 그중, 미래의 도서관은 과연 도시에서 어느 만한 부피에 어떠한 기능을 담아야 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고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던 과정에 만나게 된 케이티 패터슨의 작품이었다.



Intro, Future Library, Katie Paterson



예전에 살던 동네의 도서관은 나에게는 일종의 커다란 여름 집 같았다. 밥도 먹고, 책도 읽고, 누워서 잠도 자고 앞 쪽 공원에서는 친구들이랑 숨바꼭질이나 농구도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소.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기나긴 여름방학 동안 머물 수 있는 여름 집이 내게 있다면 그것과 퍽 닮았으리라 생각했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도서관으로 향했다. 친구들과 도서관 공원에 있던 농구 코트에서 한 게임을 뛴 뒤 도서관 지하식당으로 내려가 허겁지겁 차가운 음료를 마시고 라면을 주문해 먹었다. 배도 부르고 땀도 어느 정도 식으면 2층에 있는 열람실에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숙제도 하고, 공부도 했다. 그러다 어둑해질 때면 누구는 집으로, 누구는 학원으로 가는 게 하루의 일상일 때가 있었다.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는 이곳의 도서관에 적응이 잘되지 않았다. 다니던 어학교는 사립 대학교 내의 부속기관이어서 그곳의 도서관을 이용하였다. 도서관은 아침 느지막이 열어서 저녁시간이 되면 닫는다. 대학교라 지칭은 하지만 커다란 두 개의 건물이 평행하게 있고 크나큰 안뜰을 사이에 두고 강의실과 도서관이 마주하였다. 유럽의 도서관은 이럴 것이다 짐작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커다란 아치의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그 햇살은 오전 열 시쯤, 신문과 잡지가 놓여있는 작은 Salle (방)을 시작으로 도서관을 품었는데 그곳에 들어가면 그 온기로 종이 내음이 가득 피어오르는 처음의 공간이기도 했다. 쉬는 시간이면 가끔 그곳으로 가 가만히 앉아 그 냄새를 맡곤 했다.


도서관이라는 게 공부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은 애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곳의 도서관은 더욱이 아니었다. 울창한 숲 같은 공원을 등지고 있고 커다란 안뜰을 앞에 두고 있어 언제든지 큰 아치형의 창을 열어두면 공원의 내음이 살며시 도서관 안으로 들어왔다. 요즘 같던 따뜻한 봄날이면 더욱이 책상 앞에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곧 있을 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 수업 후 도서관을 찾았는데 오히려 밖으로 나가라는 재촉스러운 봄기운이라니.




그 봄날 이후로 도서관은 지붕 있는 공원과 같아야 한다고 꿈꾸었다. 포근한 햇살 아래 잔디밭에 누워 책도 읽고, 낮잠도 자고 때론 종이 내음으로 가득한 곳에서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산책하며 읽어도 방해받지 않는 곳. 비가 오면 누구든지 도망쳐오듯 들어와 피할 수 있고 방금 전까지 옷을 적시던 빗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는 곳. 도서관의 둥근기둥은 밖으로 겹쳐 보이는 나무와 나란히 있어 꼭 숲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연주를 할 수 있는 누구라면 누구든지 연주할 수 있는 마당이 있는 곳. 어릴 적 배우다만 피아노 건반을 조심스레 누를 수 있을 것만 같은 도서관.


건축가로서 꿈꾸는 공공의 도서관은 오히려 면적과 같은 숫자의 싸움이 아닌 추상적인 곳에서 시작되어야 생각한다. 앞으로의 도서관은 책을 위한 공간이 아닌 사람의 활동으로 채워지고 그것들이 표현되고 저장되는 장소가 될 것이다. 빽빽한 빌딩 사이보다는 숲 속이 더 잘 어울리며 자라나는 나무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종이 내음을 피어오르게 함과 동시에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노르웨이의 숲 속의 나의 여름 집 같은 도서관이 우리 동네에 생기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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