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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남방 Feb 20. 2017

새벽과 아침 사이의 고요함


새벽과 아침 사이의 고요함을 좋아한다. 


시간으로  말해보자면 아침 다섯 시에서 여섯 시 사이쯤 인 듯하다. 세상이 조금씩 깨어나는 시간이라는 것과 무더운 여름 조차에도 이 시간만큼은 조금의 서늘함이 몸을 감싸는 순간. 그리고 밤과 아침의 모호한 경계선이라는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밤이 다 가기 전 무엇이라도 써 보겠다는 의지로 연필과 노트 위 몇 줄의 문장들을 끈질기게 쓰고 지우기를 수차례. 텅 비어버린 마음과 푸석해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창문을 열어보니 푸르러진 세상이 유달리 순수해 보이고 심지어 특별해 보이기까지 한다. 항상 보는 흔한 풍경인데 그 시간을 지나가는 풍경은 왜 그리 마음 깊은 곳에 남는건지. 하루 중 지저귀는 새소리가 가장 선명하고 크게 들리기도 하는 순간이어서. 하루 중 가장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줘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이유를 덧 붙여 본다. 그러다 보니 그 시간에 깨어 있는 일을 좋아하게 되어 가끔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그리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끝이 되어가는 시간이고 이른 아침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시작하는 시간. 이 시간에 쓰여지는 글과 담아내는 사진들은 둘 사이 묘한 감정을 동반한다.


단 한 병의 와인과 조금의 안주와 함께 수많은 이야기로 밤을 지새운 적 이 있었다. 와인을 아껴 마시며 그 시간을 즐겼다. 그 날은 특별하지도 않았고 그 다음 날이 특별해 바뀌는 건 없었다. 그저 미루고 미루었던 끝없던 이야기를 마음 편히 시작할 수 있는 날이었다. 멀뚱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옷장 위에 올려 둔 큰 여행용 가방이 눈에 들어오고야 말았다. 잠시 동안 말없이 넌지시 그 가방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일어나 떠나야겠다 너에게 무심히 도 말해 버렸다. 그것도 까마득한 밤을 은은히 빛나던 별로 가득 채웠던 그 밤이 지나가던 아침 다섯시. 세상은 조금씩 푸르러지는 순간이었고 우리가 가끔 만나던 순간이기도 했다.


사실 예정되어 있던 떠남이였다. 그렇다고 너에게 그렇게 미리 알리지 않던 것은 나의 이기적인 배려였다. 유일한 술친구가 떠난다는 사실을 짧은 순간만 아파하고 괜찮아졌으면 하는. 날이 좋던 여름에는 안 보다 밖에 있던 시간이 길었다. 너의 집 앞에 있던 나지막한 계단에 앉아 시간에 따라 바뀌는 도시의 풍경을 안주 삼아 밤새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리고 별을 보자고 조명 하나 없는 공원을 무작정 걸어 다니던 일도, 버스의 종점까지 이유 없이 걸어 가보자는 것도, 고민이 없어 고민거리를 찾아보겠다는 이유로 술병을 들고 무작정 찾아오던, 그러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떠나야겠다고 무심히 도 말해버렸다. 나에게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면, 더군다나 이런 풍경 속에서 그러면 나는 어떻게 안녕 해야 했을까. 적어도 아름답지만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너는 나만큼 이나 무심히 대답했다. 너의 입에서 나온 건 긍정도 부정의 뜻 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의 말 들이었다. 무색, 무취의 대답이라 오히려 너 다운 말들. 그 대답의 끝은 나에게 편지를 쓰겠다는 것이었다. 매일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을 보러 떠나야 하지만 그럴 수 없을 때, 그럴 때마다 하고 싶은 말을 조금씩 써두겠다 하였다. 그리고 그 말 들이 흰 편지지를 가득 채웠을 때 나에게 이 편지를 붙이겠다고. 그리고 붉은 태양이 떠 올랐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안녕했다. 그 뒤로 네가 있던 곳은 백야의 삶을 살던 북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이였는지, 아니면 별을 보러 매일 어디론가 떠났는 탓에 그 편지지는 아직 다 채워지지 못해 나에게 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을 하는 중이다.


그 이후 일상에서도, 그리고 여행지에서도 그 순간을 즐겼다. 너와 보냈던 모호한 순간들은 뚜렷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서늘한 새벽 공기 사이로 청명하게 들리던 새소리와 함께 프랑스 어느 한 자그마한 마을 이 곳 저곳을 걷던 순간들이. 지금은 더 큰 도시, 더 오래 지내 온 이 곳에서 불행히 그런 존재가 내 곁에 없다. 아마 그때의 벌 인가 보다. 그래서 새벽이란 단어가 흐려지고 아침으로 또렷이 바뀌어가는 시간 속에서 글을 쓴다. 여명 속에서 흐려지는 아름다운 별 빛을 품었을 너의 소식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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