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하는 온천마다 우리 온천은 이러이러해서 좋고, 최고이다! 하는 자랑을 많이 숱하게 보아왔다. 매번 무심히 넘겼는데, 내 목욕 친구들은 허심청을 진짜 최고의 온천이 맞다며 엄지를 세웠다.
남편과 아이에게 그동안 다녔던 온천 중 어디가 가장 좋냐고 물었다. 아이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동안 너무 많이 다녀서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남편은 "솔직히 나는 어떤물이 좋은 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시설이 좋으니까 허심청?"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도 그때서야 허심청이 제일 좋았단다.
아, 그렇구나... 나는 목욕 친구들에게 어느 온천이 좋은지를 물어보기만 하고, 내가 먼저 쓰고 싶은 온천을 기록하고 싶었나 보다.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소개 순서를 정해둔 상태라, 예상과는 다른 대답에 그냥 무시해 버릴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내 온천여행의 기동력이자 말벗이 되는 가족의 의견도 존중하는 게 예의라며 마음속 목차보다 빨리 작성하게 된 동래 허심청에 관한 이야기이다.
부산에는 온천지구가 무려 42개, 그중 아마도 가장 유명한 온천지구가 동래온천이 아닌가 싶다. 수백 년 동안 사용해도 고갈되지 않는 풍부한 수량, 다른 온천에 비해 수온이 높아 식혀서 사용해야 할 정도라는 동래온천.류머티즘, 신경통, 요통, 근육통, 냉증, 부인병 등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어르신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고 한다.
유명 온천마다 하나씩은 꼭 있는 전설, 동래온천에도 당연히 있다. 학이 아픈 다리를 온천수에 담근 후 씻은 듯이 나아 날아가는 것을 보고 노파가 자신의 아픈 다리도 온천수로 치료했다는 백학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동래온천 주변을 '온천장'이라고도 하는데, 부산 1호선 온천장역에서 농심호텔에 가기 위해 걸어가면서 깜짝 놀랐다.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인 수안보, 부곡에 가도 온천표시가 많은 편이긴 했는데, 부산 온천장 지역엔 고개만 돌리면 온천로고를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중 가장 큰 규모가 호텔농심에서 운영하는 허심청으로, 호텔에서 연결통로를 이용해 허심청까지 이동할 수 있다.
허심청 건물 1층에는 수호용 당간 허심상이 있다.
허심청 건물 1층에는 전통 독일 맥주 전문점 허심청 브로이와 드럭스토어 판도라 등이 있고, 2층에는 연회시설 있다. 예식홀 쪽으로 농심호텔 연결 통로가 있어서 연결통로만 다녔는데, 궁금증에 허심청 건물 1층은 어떤가 하고 내려가 보니 이렇게 멋있게 꾸며져 있었다.
허심청 온천은 평일과 주말, 휴일 이용요금이 다르다. 게다가 여느 목욕탕과 달리 입욕료부터 후불제였다. 우리는 부산여행 중 호텔농심에서 2박을 하였는데, 체크인할 때 온천 이용권을 받아 그것을 사용했다. 성인은 온천 이용권을 사용(찜질방 이용료는 추가)하였고, 초등학생인 아이는 투숙객 할인요금 (성인요금의 50%)을 지불했다.
안내데스크를 기준으로 왼쪽은 선남탕이고 오른쪽이 선녀탕이다. 들어갈 때는 선남선녀가 아니지만, 나올 때는 선남선녀가 되길 기대하면서 신발장 안에 신발을, 옷장에 옷가지를 집어넣었다.
사진출처 http://www.hotelnongshim.com
대온천탕 입장하고부터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허심청은 홈페이지를 잘 꾸며놓아 기억을 되살려 후기 작성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자체 개발한 100% 천연 온천수를 전량 공급하고 있는 동양 최대 규모의 온천시설, 무려 3천여 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대온천장에는 장수탕, 화목탕, 물맞이탕, 이벤트탕 (철학탕, 영상탕, 샴페인탕) 등 40여 종의 효능별 욕탕이 있다. 샤워장도 많고 미니풀장이 있어 어린아이들이 놀기 좋은 공간도 마련되어 있는 데다, 노천탕도 있어서 만족도가 높았다. 머리는 차갑게 마음은 뜨겁게를 실행에 옮길 수 가을 겨울의 노천탕! 공기는 시원하고, 탕에 담긴 몸은 뜨끈했다.
수건 인심은 좋지만, 아껴 쓰시게!
욕탕 안으로 들어가기 전,화장실 앞쪽에 하얀 수건이 켜켜이 쌓여 있다. 보통 여탕은 매표소나 여탕 카운터에서 1~2장의 수건을 제공받는다. 심지어 수건 대여가 유료인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수건을 쌓아두다니 웬 떡이냐 싶었다. 하지만, 욕장 안으로 타월 가지고 들어가지 말라고 안내문을 보고 살포시 내려놓곤 샤워타월만 챙겨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온천장 안의 풍경은 놀라웠다. 웹툰 목욕의 신의 배경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도 유사점이 많았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이 쩍! 다양한 크기와 온도의 욕탕이 매우 많아 수를 헤아리기 힘들었다. 규모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욕탕 내 직원에게 "여기가 국내에서 제일 큰가요?" 용기 내어 물었더니 "국내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동양 최대 규모"라고 일러준다. 아, 역시!
허심청에서 가장 큰 욕탕인 장수탕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온탕은 40℃이고, 열탕은 44℃정도였다. 이외에 화목탕, 동굴탕, 이벤트탕(철학탕, 영상탕, 샴페인탕), 냉탕, 청자탕, 반신욕탕, 침탕, 족탕, 노천탕, 원적외선 사우나, 황토사우나, 소금탕 등이 있다. 샤워장은 입식과 좌식 코너가 적절하게 곳곳에 '많이' 있는데 그동안 가 본 온천, 목욕탕 통틀어 가장 규모가 컸다.
대온천장은 1층, 2층으로 되어 있다. 1층에는 주로 각종 탕과 샤워 코너가 있고, 2층에는 사우나와 노천탕, 좌식 샤워장, 미니풀장 등이 있다. 온천장 내에 총길이 10m의 미니풀장이 있어서 아이들이 튜브 등 물놀이 기구를 가지고 와서 물놀이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2층의 고온 사우나도 애용했는데, 사우나 앞에 수건더미가 쌓여 있었다. 욕장 입장할 때는 수건 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제한하지만 사우나 앞에 많이 준비되어 있으니 낭비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용하면 되었다.
목욕의 신은 여기에
가장 오랜 시간을 들락날락거린 곳은 장수탕 온탕과 냉탕이지만, 진짜 좋다며 엄지척했던 곳은 물맞이탕(38~39℃)이다. 물줄기 마사지 효과가 있는 곳으로 6석인데 인기가 많아 약간의 눈치작전이 필요했다. 여느 목욕탕이나 온천에서 보아온 폭포 샤워와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할머니들이 욕탕 바닥에서 엎드려 흐느끼는듯한 희한한 포즈로 물맞이를 하고 계셨다. 때때로 물 맞는 부위만 바꿀 뿐 좀처럼 빈자리가 나지는 않는 상황, 한참을 기다려 빈자리가 나자마자 잰걸음으로 제일 끝 자리에 앉았다. 물맞이를 하는 동안 어느새 나도 엎드려 울부짖고 있었다. 관찰자 입장에서는 희한한 포즈였는데, 직접 물맞이를 해보니 이 분들이 진짜 '목욕의 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욕의 신> 주인공인 세신 꿈나무 '허세'처럼 때를 잘 미는 재능은 없을지라도 목욕탕에 특화된 목욕방법을 체득하신 분들이니 말이다.
첫날은 온천욕에 집중했다면, 다음날에는 찜질방에 집중했다. 샤워를 하고 가볍게 온천욕을 즐긴 다음, 4층 라커룸 내 용품 판매코너에서 찜질복을 받아 갈아입었다. 용품 판매코너에는 목욕용품뿐만 아니라 방수 기저귀 등도 판매하고 있다. 어른용 찜질복은 찜질방 옷 같지 않고 병원 환자복(?)처럼 생겼는데, 어린이용 찜질복은 그냥 보통의 찜질방에서 볼 수 있는 모양새이다. 가운을 받아 착용하고, 3층에 위치한 찜질 및 식당 휴게실로 향했다. 찜질방 이용 시 이용한 금액도 후불이라 편하다.
허심청 찜질방에는 참숯방, 아로마 향기방, 황토방, 보석방, 아이스방 등이 있다. 규모가 크고 이용자가 많음에도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이용 시 쾌적하다. 주로 황토방과 아이스방을 들락날락했고, 대휴게실에서 누워서 쉬는 것도 매우 좋았다. 대휴게실은 찜질방 한가운데에 있는데 바닥은 황옥으로 만들어 어느 부분은 따뜻하고 어디는 시원하고 어디는 뜨끈하고... 온도 차이를 두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탁 트인 공간이고 넓은 편이라 이용자가 많아도 여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또한 웰빙테라피실, 모임방 등 유료 이용시설도 있다.
허심청에서 안 먹으면 섭섭한 메뉴는?
허심청 내에 있는 n.cafe에서 맥주, 커피 등 음료를 주문해서 마실 수 있고 식사도 가능하다. 새알 미역국 (8,000원), 라면 (5,000원), 찰비빔면 (5,000원)을 주문했다. 농심호텔이라 라면은 신라면을 끓여주나 보다. 찜질방 내에서 판매하는 음식 치고는 가격대도 무난하고 맛도 평타치.
목욕탕에 오면 미역국이 먹고 싶어지기도 하고 워낙 미역국을 좋아하기도 해서 나는 새알 미역국을 먹었다. 다소 짠 편이지만, 새알이 쫄깃하니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또 허심청 찜질방 간다면 나는 새알 미역국, 아이는 신라면을 먹기로 했다. 초등생인 아이의 나름 합리적인 추측에 따르면, 농심호텔 꺼라 공장에서 바로 나온 라면으로 끓여줄 것이기 때문에 다른 데서 사 먹는 것보다 더 맛있는 거라고 한다. 과연 그러한가?
찜질방에서의 지출도 후불, 메뉴당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다고 무심코 주문을 반복하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우리는 이 날 합계 계산서에 5만 원 넘게 찍힌 금액을 보고 말았다. 성인 2명의 입장료 뺀 금액인데도 3인 가족이 5만 원 쓰고 나온 거면 '먹보의 하루'라고 말할 수밖에...
Tip.프로야구 팬이라면 '온천만' 말고 호텔 숙박도 해보면 어떨까? 우연히 야구선수와 마주칠 수도.. 호텔 직원분의 말로는 대부분의 사직구장 원정팀 숙소가 바로 농심호텔이라고! 실제로 유명 야구선수와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