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이 조리원 퇴소하는 날.
1. 어제, 그러니까 토요일. 나는 현충원에 다녀왔다. 목사님이셨고, 군인이기도 하셨던 친할아버지가 계신 곳이다. 친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친가의 명절 모임은 늘 이곳에서 했다.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납골당에 올라가 인사를 하고 밥을 먹고 헤어진다. 이번에도 구정을 앞두고 친가 친척들이 모였다.
하진이와 아내의 안부를 물으며 축하의 말을 건네는 친척들에게 나는 하진이의 사진들과 세세한 근황을 모두 꺼내야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는 시간도 오늘은 조금 길었다. 나도 개인적으로 드릴 말씀이 많았으니까.
할머니는 어린 시절 나를 혼낼 때도 '에이 잘 될 놈아'라고 하셨다. 내겐 화도 곱게 내던 우리 할머니, 날 닮은 하진이를 얼마나 예뻐하셨을까. 나란히 웃고 있는 두 분의 사진에 하진이 이야기를 한참 주절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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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리원으로 돌아가 밤에는 아내와 퇴소 준비를 했다. 아내는 하진이가 퇴원할 때 입을 옷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옷과 양말 무늬를 맞춘다던가, 모자를 씌운다던가 하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준비를 하는 아내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괜히 부산스러운 모습이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아내는 하진이가 울면 왜 우는지를 몰라 답답하고 막막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실없는 소리를 하며 아내의 긴장을 풀어주려 하니 그제야 조금 웃는다. 그래 걱정하지 말자, 우리는 잘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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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침부터 비가 조금 내린다. 이사 가는 날 비 오면 잘 산다고 하던데!
오늘 하진이는 처음으로 건물 안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간다. 바깥의 찬 공기도, 내리는 빗방울의 감촉도, 부서지는 햇살도 하진이에게는 모두 새롭겠지. 이 아이가 세상에 발붙이고 살아갈 수 있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하는 것은 오늘부터 온전히 아내와 내 몫이 됐다. '잘할 수 있을까'와 '아냐 할 수 있어'를 들숨 날숨처럼 반복하며 아들을 데리러 올라간다. 태어난 지 3주 만에, 처음으로 너를 만져 보겠네. 정말 행복할 것 같아.
지난 3주는 평생에 걸쳐 쓰일 하진일기의 프롤로그 같았을 거야.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