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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해 May 06. 2024

참나를 찾아서 -템플스테이 한 달

#20240407-20240507 -전남 화순 쌍봉사

한 달 동안, 장기 템플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이전에 일할 때는 업체에 상주하는 경우가 더 많았었는데, 코로나 19로 인한 거리 두기를 하게 된 이후로는 원격 근무 형태가 점차 많아지게 되었다. 나도 그러한 사회 분위기를 따라 지내다가 이제는 원격 근무만으로만 일하는 것으로 완전히 전환하였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게 되면서 워케이션을 가거나 본가에 가서 일을 해보니 이제는 서울이 아닌 다른 지방에서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최근에 갑자기 살고 있던 곳이 정리가 되는 바람에 어떻게 지낼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히 짐을 꾸려서 우선 본가로 이사를 왔다. 이참에 남은 인생과 앞으로 살아갈 곳 등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이전부터 생각해두고 있었던 장기 템플스테이를 알아보니 한 달 이상 길게 지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중, 어머니와 다른 일로 외출을 나왔다가 근처에 있는 화순 쌍봉사에 가벼운 마음으로 답사 겸 왔었는데 경치가 좋고 규모도 있는 오래된 절이어서 지내기에 좋아 보였다. 어머니도 괜찮아 보인다 하시기에 며칠 뒤에 바로 오게 되었다.

쌍봉사는 신라 경문왕 때 철감선사가 중국에서 귀국하여 산수의 수려함을 보고 창건한 사찰입니다. 철감선사의 법력과 덕망이 널리 퍼지자 왕이 궁중으로 불러 스승으로 삼았다고 하며, 창건주 철감선사의 도호가 쌍봉이었으므로 사찰명을 쌍봉사라 하였다고 합니다. 해철선사가 여름을 지낸 곳이기도 합니다. 현재 쌍봉사에는 대웅전, 지장전, 극락전과 새로 지은 요사채, 그리고 국보 제 57호인 철감선사탑과 보물 제 170호인 철감선사탑비가 있습니다.
(템플스테이 소개글 중)

https://www.templestay.com/reserv_temple_rest.aspx?ProgramId=17092

쌍봉사


1박 2일의 템플스테이는 몇 번 해봐서 어떻게 지내는 것인지 대략은 알고 있었다. 모두 휴식형으로 가서 특별한 프로그램은 없었지만 예불도 참여하고 스님과 차담도 하곤 했었다. (차담은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뜻하는데 절에서는 대체로 스님께서 주관하신다.) 새벽 예불 전에 법고를 치고 범종을 울리고 목어를 두드리는 의식이 장엄하고 멋있었던 기억이 있다. 고요한 밤도 정갈한 공양도 좋은 공기와 풍경과 함께 한 산책도 돌아보면 모두 좋았었다. 그러한 경험들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준 듯하다.


짐들 중에 본가에 둘 것, 이사하면 다시 가져갈 것들도 따로 정리하고, 절에서 지낼 한 달 동안 필요한 것들을 챙겨 본다. 이제 내 집이 없으니 조금 허전하기도 하지만 언제고 이렇게 훌쩍 떠나도 될 것만 같은 자유로운 기분도 든다.


생활공간

템플스테이를 시작하는 당일, 차에 미리 챙겨둔 짐을 싣고 운전을 해서 오후 3시쯤 절에 도착했다. 템플스테이 팀장님을 뵙고 절 내에서 입을 조끼와 바지를 받고 방을 배정받았다. 템플스테이로 쓰는 건물은 종무소 뒤와 그보다 좀 더 위쪽있는 한옥 형태의 건물 두 곳이었다. 각 방사에는 샤워 시설이 있는 화장실이 있고, 옷장과 책장이 있는 공간이 여닫이 문으로 방과 따로 나뉘어 있다. 책상과 의자도 있다. 혼자 일하고 생활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다.

템플스테이 건물
한달 동안 지낸 방사


욕실에 태국에서 사 온 목용용품들을 두니 그 여행의 연장인 듯한 기분이 되었다.

방사 욕실


아침에 일어나면 새소리가 들리고, 창문을 열면 푸른 나무들이 보이고, 맑은 공기가 들어와, 하루의 시작부터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업무 환경

큰 방은 잠을 자는 곳으로 하고, 옷장이 있는 작은 공간에 책상을 두고 일하기로 했다. 책장이 있는 곳 옆의 벽을 뒤로하고 창문이 보이도록 앉으니, 바깥 풍경도 볼 수 있고 책장에 물건을 두고 쓸 수도 있어서 좋았다.

원격 근무 환경


소소한 생활

커피

여기서 지내는 동안에는 커피를 마실 기회가 별로 없을 듯해서 미리 준비를 해왔다. 여행 선물로 받은 말레이시아에서 온 커피백을 넣고, 아프리카 케냐에서 온 원두는 분쇄기에 미리 갈아서 담고, 드리퍼와 필터와 휴대용 전기포트로 가져왔다. 드립포트가 없는 것이 커피를 내릴 때 기분이 좀 안 나서 아쉬웠지만 이만해도 훌륭한 홈카페를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스님께서 자주 차담에 불러주셔서 커피를 마시는 경우도 많았다.

방사 카페


단주

시간이 날 때 하려고 액세서리와 매듭 재료들을 챙겨 왔었다. 절에서는 '단주'라고 하는 팔찌 형태의 염주를 이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필요한 재료를 주문해서 몇 개 만들었다. 절 내에 있는 분들께 하나씩 선물을 드렸더니, 한 보살님께서 단주들이 쌍봉사 소속 표식이 된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셔서 정말 그런 느낌이 들며 소속감이 생기는 듯했다. (절에서 여자 불자님은 보살님, 남자 불자님은 젊은 편일 때는 처사님 그렇지 않으면 거사님으로 부른다고 한다.)

단주


모든 일은 공양간에서,

몸이 조금 안 좋은 상태로 와서 오자마자 감기 몸살이 걸렸다. 삼사일 동안은 점심 공양만 겨우 하고 방에 누워 앓았다. (절에서는 식사를 공양이라고 하여 그리 부르기로 한다.) 그 사이에 초하루 법회도 하고 용왕제라고 연못에 사는 잉어들을 방생하는 큰 행사도 있었다고 한다. 초하루 법회는 매월 음력 1일로 한 달에 한 번만 하고, 용왕제는 일 년에 한 번뿐인 쌍봉사의 특별한 행사라 한다. 참석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절 내의 행사에 대한 참석이 강제가 아니기도 하고, 내가 앓아누워있기만 해서 밖을 못 나가다 보니 이번에는 할 수 없었고, 다음에 또 와서 참석해야겠다.


절에 오기 전에는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기회를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절에 있는 한 달 동안은 조용히 혼자 수행하듯이 지내겠거니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는 다른 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같이 산책도 하며 스님과 차담도 나누는 등 화목하게 지내게 되었다. 모두 친절하시고 성품이 좋으셔서 덕분에 잘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공양 시간에 주로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이런저런 절 내의 소식도 주고받으며 산책 약속을 하기도 한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쉬기도 하며 각자의 개인 시간을 보낸다. 공양하는 때 외에는 마주치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가급적 공양 때마다 가서 인사도 나누고 식사를 하이 좋은 것 같다.


비 오는 날

비가 오는 산사는 맑은 비 냄새가 난다. 안개 가득한 산도 찰박찰박 걸어갈 때 나는 소리도 운치가 있다.

안개에 들러싸인 절


나름대로의 수행

모든 일은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이 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내가 바르게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보인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서 홀로 고립되고자 했었는데 좋은 생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을 마주하지 않고 평생 지내는 것은 어렵다. 어떤 환경에 있어도 편한 마음으로 잘 지낼 수 있게 스스로를 돌보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108배

스님과 차담을 하던 어느 날에 템플스테이 팀장님께서 108배하면서 염주를 만들 수 있는 키트를 주셨다. 안 그래도 매일 108배를 해야지 생각은 해두고 정작 하지는 못했는데 이 기회에 한번 해보았.

극락전에서 염주 구슬을 왼쪽에 두고 실은 오른손에 감고 절을 한번 할 때마다 염주 하나씩 실에 꿰었다. 부처님께 소원을 비는 것보다는 나 자신의 문제를 알고 돌보며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기도문에 쓸 문장을 만들어 되뇌는 것이 좋다고 들었다. '나는 편안합니다.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내 삶을 살겠습니다.'라는 기도문을 가지고 절을 하는 동안 마음속으로 되풀이하였다. 요즘의 나는 원치 않는데도 주변 상황에 쉽게 영향을 받아 자꾸 신경이 쓰이고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염주를 다 만들고 나서 마무리를 고민하다 이전에 배웠던 매듭으로 예쁘게 정리하였다.


템플스테이를 하시는 처사님과 보살님들과도 함께 108배를 하기도 했다. 유튜브에 '108배 참회문'이라는 영상이 있어서 재생해 두고 따라서 절을 했다. 한 번 참회와 감사의 문장을 얘기하고 한 번 절을 하는 방식이다. 108번 절을 하는 것이 조금 힘들기도 했는데, 여럿이 함께 하면 금방 지나가고 속도를 맞춰서 하니 덜 힘들기도 했다.

https://youtu.be/XimtqhlRAeQ?si=TimMHryS3aK_OSIS


예불

템플스테이 중인 분들과 매일 저녁 예불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예불은 부처님께 올리는 의식을 말하는데 매일 새벽, 아침, 저녁마다 있다. 원래 생각은 매일 새벽 예불에 참석하고 하루를 일찍 시작해 보자는 것이었는데, 예불이 시작되는 4시 20분에 나가는 것은 눈이 떠지지는 해도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사시 예불은 아침 10시에 한 시간 정도 하는데 평일에는 업무가 있기도 하고 진행 시간도 조금 길어서, 저녁 6시 30분에 짧게 진행하는 예불만이라도 참석하기로 했다.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템플스테이를 하는 동안 예불에 참석해 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불 15분 정도 전에 나와서 초를 켜고 향을 피운다. 스님께서 법당 내 작은 종을 울리시면 다른 스님께서 밖의 큰 종을 울리신다. 그리고 이어서 법당의 종을 울리고 나면 스님을 따라 예불문과 반야심경을 읊고 나서 마무리된다.

한 번은 스님께서 범종을 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새벽에는 28번, 저녁에는 33번을 치는데 각 의미가 있으며, 처음과 끝에는 작게 두 번 울린 후에 크게 한 번 친다고 배웠다. 울림을 크게 하기 위해 종 아래에 깊은 구멍이 있다는 것을 처음 보고 알았다. 가까이에서 듣는 종은 몸속까지 울림이 느껴졌다.

템플스테이가 끝나갈 즈음에 새별 예불에도 참석해 볼 수 있었다. 저녁 예불 내용에서 천수경 등을 추가로 더 하시는 것 같다. 뜻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몸과 정신을 가다듬는 시간으로 삼으니 좋았다.


차담

예불을 할 때 뵙는 법안 스님께서는 종종 차담에 불러주셨다. 스님께서는 늘 바쁘신데도 템플스테이에 온 사람들을 살펴봐주시고 신경 써주셔서 감사했다.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다른 관점으로 현상을 보기도 하고 나를 돌아보기도 하였다. 스님처럼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좋은 영향력을 전하는 사람이 되자 생각하기도 했다.

쌍봉사 주지이신 증현 스님과도 차담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않고 양심을 속이면 안 된다, 본질을 바라보아야 한다.'라는 좋은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공양

식사(공양)는 아침 7시, 점심 12시, 저녁 5시로, 시간에 맞춰 공양간으로 가서 원하는 만큼 접시나 그릇에 덜어 먹으면 된다. 나물 종류가 많이 나오는데 두릅, 가시오가피 순 등 제철이 아니면 먹기 어려운 음식들도 있었다. 잡채, 떡볶이, 카레 등 별식도 종종 나왔고 모두 맛있었다. 공양을 한 후에는 본인이 먹은 식기는 씻어둔다.

공양
공양으 기록


대외 활동

산책

절이 꽤 커서 절 안에서만 산책해도 꽤 걷게 된다. 공양 후에는 절 바깥으로 돌아서 방사로 돌아간다. 공양간 뒤로 나오면 있는 강아지 자비하고도 인사하고 좀 놀다가, 연못에 가서 잉어들 잘 지내나, 꽃잔디 많이 늘었나, 잡초는 없나 살펴본다. 오늘 구름이 많은가 하늘도 좀 보고, 대나무들 뒤로 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방사에 도착한다.

칠감선사 탑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라 도착하면 마을 풍경이 내려다 보인다. 이곳도 물길이 있어 옆에서 들리는 소리가 좋다. 국보는 어떻게 생겼나 탑도 살펴보고 설명도 읽어보고 다시 내려온다.

절 내 산책


근처에 대한제국기 의병 활동을 하던 장소가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 항일의병 추념식이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항일 투쟁을 하신 많은 분들 덕에 지금 잘 지내고 있음에 감사드린다.


절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을 보고 왼편으로 가면 마을이 나오고, 오른편으로 가면 저수지가 나온다. 양쪽 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서 산책을 다니기에 좋다.

저수지 산책


산행

날씨가 맑을 때면 종종 산행을 나갔다. 이곳은 어딜 가든 물이 흐르고 있어서 소리도 좋고 시원한 느낌도 들어서 좋았다. 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늘 물이 곁에 있으니 마음이 좀 더 안정되는 것 같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아서 경사도 완만하고 2~3시간이면 돌아올 수 있어 다녀오기에 딱 좋았다.

같이 갔던 한 거사님께서 요즘 한참 고사리가 나온다고 하셨다. 하나도 안 보이는데 거사님께서는 짚어주시는 곳을 보면 정말 고사리가 있다. 몇 번 다니다 보니 이제 고사리가 잘 보이게 되었다. 다 큰 잎이 넓은 고사리가 있으면 주변에 먹을 수 있는 새로 올라오는 고사리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고사리는 포자로 번식을 하기 때문에 주변에 몰려있기가 쉽다고 한다.

4월이 지나가려니 벚꽃이 지고, 나무들에 연두색 새 잎이 나기 시작하더니 술이 점점 진해지면서 우거지는 것이 보인다. 길가에는 꽃이 피기도 하고 못 보던 쑥갓 같은 풀들도 나기 시작한다. 이곳에 있으니 하루하루 식물들이 자라나고 계절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산행 (4/12)
산행 (4/16, 4/23)


울력

절에서 할 일이 있을 때면 종종 함께 했다. (울력이란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하는 일을 뜻한다고 한다.)

템플스테이에 먼저 와계신 보살님께서 몰래 연못 가운데 섬에 난 잡초를 정리하고 계셨는데 소문이 나서 모두 알게 되었다. 나도 가보니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넓어서 정리할 일이 많았다. 직접 해보았는데 풀뿌리가 깊어서 잘 뽑히지 않고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는 일도 힘들었다. 비록 나는 얼마 하지는 않았지만 지나다니면서 정리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올해 유난히 꽃잔디가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보살님이 애써주신 덕분인 것 같다.

절 입구에 있는 연못


하루는 나주에 있는 절에 등을 달러 갔는데 산 아래에 예쁜 절이었다. 미리 설치된 기둥에 연등을 달았는데 나는 색 별로 필요한 연등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바깥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좋았다.

연등 달기

종무소가 비어 잠시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늘 거기에 있는 고양이 흰돌이에게 간식도 주고 쓰다듬기도 하고 사냥놀이도 하며 같이 놀았다.


'화순 연등 축제'에 참석하기도 했다. 주지 스님께서 인사말을 하셨는데, 그중 현재에 충실하자는 말씀이 지금의 내 인생 과제로 생각 중인 내용과 같아서 인상 깊었다. 행사 마지막에는 등을 들고 거리 행진을 하는 제등행렬에 참여했는데 어떤 무리에 속해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인다는 점이 오랜만이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작은 친구들

털 친구

절 안에는 강아지와 고양이 여러 마리가 지내고 있다. 템플스테이 건물 옆에는 강아지 두 마리가 있다. 이름은 '반야'와 '금강'이고 남매지간이라 한다.

금강, 반야


공양간 뒤편에는 '자비'라는 강아지가 있다. 공양을 마치고 나오면서 주로 인사를 나눈다.

자비

공양간 쪽에는 '보리'라는 고양이가 있고, 종무소에는 '흰돌'이라는 고양이가 항상 지내고 있다. 흰돌이는 보리의 아들이라고 한다. 몸에 검은색이 더 많지만 보리가 낳았던 아이들 중에 흰색이 있는 아이는 얘뿐이라 이름이 흰돌이가 되었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기도 한데 두 마리가 비슷해서 처음에는 구분을 못했다. 서로 활동하는 영역이 다르고, 보리는 등에 흰 털이 조금 나있다.

보리
흰돌이


털 없는 친구들

깨끗한 환경에 있으니 여러 생물들을 종종 보게 된다. 꽃 옆에는 나비들이 있고, 비가 온 전후로는 민달팽이가 있고, 개구리들도 오간다. 한옥인지라 방사 안에 벌레들도 있다고 하는데, 주변에 약을 쳐주시기도 했고 방 안에도 밤마다 살충제를 뿌려서 그런지 안 좋은 사건은 생기지 않았다.

개구리들, 민달팽이


풀 친구들

처음 왔을 때는 나무에 잎도 별로 없고 꽃도 많지 않았는데, 5월이 되면서 많이 자라났다. 작약에 꽃봉오리가 생긴 것을 보면서 언제 꽃을 볼 수 있나 얘기하곤 했었는데 이제 거의 다 피었다. 불두화라고 하는 수국처럼 생긴 꽃나무도 처음에는 꽃이 피는 줄도 몰랐는데 이제 제일 눈에 띄게 활짝 피었다.

작약, 불두화


한달살이를 마치며

절에 오기 전에 생각한 것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고 오자는 것이었다.


편히 지내지만 게을리 있지 않으려고 했다.

아침 공양 시간이 이르다 보니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평소보다 조금 앞당겨지게 되었다.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는 생활에 가까워졌다.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고 주기적으로 걸으니 살도 좀 빠진 것 같고 몸도 덜 힘들어진 듯하다.


몸을 좀 더 보살피게 되었다.

이제 아무 아픈 곳이 없는 날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어진 것 같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으면 약을 바르고 마사지를 한다. 잘 때는 머리부터 발까지 조금씩 내려가며 긴장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면 풀어주고 심호흡을 하면 더 편히 잠이 드는 것 같다. 별 이유가 없다면 더 이상 아픈 이유를 찾지 말고 조금이라도 나아지도록 돌봐주기로 했다.


현재에 집중하고자 노력을 하였다.

세상과 조금 떨어지니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지만 생각을 많이 하지 않도록 마음속을 잘 살펴주었다. 늘 그랬듯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매달리지 않기로 한다.


쌍봉사에 있는 동안 정이 많이 들어서 떠나려니 많이 아쉽다. 아무래도 이곳에 종종 올 것 같다.

언제든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살아가기로 다짐하며 오늘 하루도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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