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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Sep 03. 2019

파리의 첫 숙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대하여

5년 만에 돌아온 파리는 모든 것이 달랐다.

아니, 사실 5년 전과 비교해 내가 달라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5년 전, 내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온 도시가 축축한 느낌. 어쩌면 내가 있던 맨체스터보다 더 글루미한 도시 분위기였다. 그러나 5년 만에 다시 찾은 파리는 맑음이었다. 달라진 건 날씨뿐만이 아니었다. 파리는 5년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주변 공기는 조금 더 세련되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공항에서 만난 사람들은 전보다 친절했다. 


익숙한 듯 새로운 도시의 인상을 품고, K와 나는 공항을 나섰다. 우리의 첫 숙소는 파리의 대표적인 관광지, 개선문 근처에 있었다. 공항에서 개선문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공항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의 몸집만큼 큰 캐리어를 끌고 메트로를 탈 자신이 없었기에, 여행 첫날부터 택시를 타 막대한 여행비용을 지출하고 싶지 않았기에. (5년 전 경험을 통해 이미 파리의 택시 요금에 대해 학습한 바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택시는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공항철도, 택시와 비교해 공항버스는 도착지까지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는 교통수단이었다. 하지만 공항버스를 탄 덕분에 우리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고,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거쳐 비로소 새로운 도시의 왔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파리 개선문

파리에서의 첫 숙소는 개선문과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중저가 호텔 체인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숙소는 대부분 내가 고르고 후에 K의 동의를 얻었는데, 나는 주로 접근성과 가격, 그리고 시설을 고려해 숙소를 구했다. 개선문 인근 지역은 여러 개의 메트로 노선이 환승하는 구간인 데다, 편의시설과 우리가 가고자 하는 관광지와 무척 가까웠다. 게다가 할인 기간에 방을 예약해 숙박비도 저렴했다. (성수기, 파리의 중심가에 한 사람당 4~5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꽤 괜찮은 방을 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접근성과 가격도 좋았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이 숙소를 고른 건 이곳의 특별한 시설 때문이었다. 숙박 예약 서비스를 통해 여기저기 둘러보던 중 나는 조그마한 테라스와 싱그러운 초록으로 뒤덮인 중정 사진에 마음을 빼앗겼다. 화려한 아름다움은 아니었지만, 사진을 보는 순간 “아, 이런 게 바로 프랑스지!” 싶었다. 

첫 번째 숙소로 향하는 길

K와 나는 공항버스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고 개선문 앞을 지났다. 캐리어를 끌기엔 최악인 울퉁불퉁 돌바닥을 지나, 마치 자로 그은 듯 잘 계획된 개선문 인근의 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저 멀리 우리가 묵게 될 호텔 간판이 보였다. 호텔은 오르막길에 위에 있었는데, 다행히 호텔에 있는 골목은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었다. 만약 호텔로 가는 길까지 울퉁불퉁 돌바닥이 이어졌다면 우리는 숙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지쳤을 것이다.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면서도 나와 K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앞으로 5일 동안 우리가 묵을 곳이니, 주변 지리를 잘 익혀두는 편이 좋았다. 큰길에서 호텔로 올라가는 골목에는 베트남 쌀국수집 하나, 타이 마사지샵 하나, 그리고 전동칫솔 같은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 하나가 있었다. 그 밖에는 대체로 사무실처럼 보이는 건물이 즐비했고, 호텔 바로 옆에는 Franprix(프랑스의 식료품점)도 있었다. (웬만한 식료품은 다 있는 Franprix는 파리에서 첫 5일동안 우리의 조식과 식전, 식후 와인을 책임졌다.)


호텔 로비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조금 더 아담했다. 잘 정돈된 로비는 마치 스파 혹은 마사지샵 대기실 같은 분위기를 풍겼고, 오래된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무사히 체크인을 마치고 우리는 4층(혹은 그보다 더 높은 층)에 있는 트윈룸을 배정받았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지만 다행히 친절한 프런트 맨이 우리의 캐리어를 가뿐히 들어 옮겨 두었고, 짐을 옮기는 동안 우리는 사진으로 봤던 예쁜 중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짐을 다 옮긴 프런트 맨이 방에 올라가도 좋다는 사인을 주었다.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K와 나는 약간 지치기는 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하나, 둘, 셋!” 


역시…. 사진은 믿을 게 못 됐다. 

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더. 더. 좁았다. 하지만 내가 반했던 작은 테라스만은 사진 그대로였다. 

내 마음에 꼭 들었던 작은 테라스

 

햇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작은 테라스는 우리의 최애 장소였다.

“조금 좁네….” 


K는 약간 실망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이내 내가 반한 그 테라스로 향했고, “여기 멋진데? 인스타 사진 각이야!”라며 만족스러워했다. 


비록 처음부터 러브하우스 BGM이 흘러나오는 숙소는 아니었지만, 작은 테라스와 하늘하늘한 커튼이 있는 첫 번째 숙소는 꽤 로맨틱했고 파리 여행하는 내내 계속 생각나는 장소가 됐다.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알았지만 지금 이 호텔은 영업을 종료했고, 내 마음에 쏙 든 작은 테라스와 중정은 다시 볼 수 없는 공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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