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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Sep 02. 2019

10시간의 형벌,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파리

두 번째 파리 여행의 날이 밝았다. K와 나는 오전 9시 5분에 출발하는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서 샤를 드골 공항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사실 나는 오전에 출발하는 항공편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이른 아침, 첫 번째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 가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오전 8시부터 11시에 출발하는 항공편은 피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같은 유럽에서 출발했더라면, 파리행 비행기는 한두 시간마다 편성되어 있을 터였다. 그러나 현실은 대한민국이었다. 


어쩔 수 없이 오전 비행기를 타게 된 우리는 오전 5시에는 집에서 나와야 했다. 그래야 출발 2~3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할 수 있을 테니까. 아침 일찍 일어날 자신이 없었던 K와 나는 결국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각자 공항버스를 타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에서 맞는 일출

7월 초, 본격적인 휴가철이라고 하기엔 아직은 조금 이른 시기였다. 하지만 공항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파리행 비행기도 만석이었다. 사실 K와 나는 이 시기에 파리에 가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굳이 좌석을 지정하지 않아도 현장에서 변경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의 보기 좋게 빗나갔고, 우리는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따로 앉아 가게 되었다. 


우리가 탄 항공편은 에어프랑스 노선이었다. 가는 동안 K의 좌석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좌석은 최악이었다. 국내 항공사와 연계해 운행하는 에어프랑스에는 한국인이 많았고 내 양옆에는 남자 승객이 앉았다. 두 덩치 큰 남자 때문에 나는 안 그래도 비좁은 좌석을 더 비좁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제일 최악이었던 건 양옆에서 두 남자가 졸며 내 어깨 쪽으로 고개를 떨구는 것이었다. 나는 왼쪽, 오른쪽 어느 쪽으로도 편히 누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 두 남자는 내 좌석까지 자신들의 다리를 길게 뻗어 나는 다리조차 제대로 펼 수 없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나는 옆자리 승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두 남자 때문에 형벌을 받고 있는 기분이었다.)


옆 좌석 남자가 잠깐 잠에서 깼을 때 다리 좀 치워달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옆 좌석 남자는 너무나 험상궂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조금 남아 있는 내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었다. 나는 아주 조금 남은 공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점점 밀고 들어오는 그의 다리를 있는 힘껏 막아섰다. 물론, 그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만.


 몇 편의 영화를 보고, 두어 번 기내식을 먹었더니 어느새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파리 여행 이후, 환승을 위해 드골 공항에 온 적은 있었지만, 목적지가 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착륙을 알리는 기내 방송이 나왔을 때 평소와는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환승을 위해 드골 공항을 갔을 때는 연결 편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늘 바쁘게 움직였다. 실제로 드골 공항은 꽤 넓고 환승 구간도 길고 복잡해 자칫 잘못하다가는 항공편을 놓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다. 시간에 쫓길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입국심사만 잘 받고 짐만 잘 찾아 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드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설렘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꼈을까? 이 불안함은 지난 파리 여행에서 온 기우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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