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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Aug 28. 2019

계획한 듯 계획하지 않은 여행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아무것도 없는 파리 여행

K와 나는 주말마다 사총사 중 한 명이 운영하는 카페에 모여 여행 계획을 짰다. K는 이번이 첫 유럽 여행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만날 때마다 몹시 신난 표정이었다. K도 나만큼이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주로 미국과 일본 등을 다녔는데, 우리의 카톡방이 조용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해외여행 중이었다.


사실 우리의 여행은 계획할 만한 것이 없었다. K는 꽤 즉흥적인 사람이었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계획 없이 여행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파리에서 5일, 니스에서 5일, 그리고 다시 파리에서 2~3일을 보내기로 하고 여정에 필요한 숙소와 교통편만을 예약했다. 


여행의 총무는 자연스럽게 내가 맡게 됐다. K보다는 내가 유럽 여행 경험이 많았고, 비교적 유럽 물가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사실 K는 오랫동안 은행에서 근무해왔다. 그러나 나와 친구들이 본 K는 생각보다 꼼꼼하지 못한 타입이었고 덜렁거리기 일쑤였다.) 


우리가 아무리 계획 없이 여행한다지만, 그래도 각자 꼭 가고 싶은 곳은 있을 터였다. 모든 일정을 둘이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 여행하는 사람으로서 큼직큼직한 여행지는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나는 파리 근교에 있는 트루빌에 꼭 가고 싶었기에 장시간의 부재에 대해서 K의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K에게 이번 파리 여행의 목적을 이야기하며 여행 기간 중 하루는 트루빌을 갔다 오겠노라고 했다. 


트루빌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던 K는 흔쾌히 그날 하루는 서로 자유시간을 보내자고 했고, 내가 도빌과 트루빌을 다녀오는 동안 K는 파리에서 스냅사진 촬영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K의 마음이 바뀌었다. 파리 근교 투어 상품을 찾아보던 K는 몽생미셸에 가는 투어 상품 중 도빌을 경유하는 상품을 발견했다. 도빌은 외젠 부댕 박물관이 있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한두 시간 정도 자유시간도 주어진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몽생미셸의 아름다운 야경 사진을 보고 “여긴 꼭 가야 해!”라고 외친 K와 “이번 여행의 목적은 트루빌에 가는 거야!”라고 말했던 나의 일정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모처럼 만에 서로가 원하는 여행지가 일치했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게으른 사람들이었다. K와 나는 트루빌을 경유하는 일정에 합의하고 나서도 바로 투어 상품을 예약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여유를 부리며 예약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새 1인당 8만 원짜리 투어 상품이 3배나 비싸져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원하는 날짜에 이미 예약도 다 차 버렸다.


우리는 원가의 3배 이상 비싼 금액을 주고 몽생미셸 투어를 갈 용기가 없었다. 물론, 몽생미셸 투어를 갔더라면 나와 K는 무척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나면, 바가지요금을 썼다는 찝찝한 생각이 우리의 머릿속을 가득 채울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우리는 과감히 몽생미셸 투어를 포기했다. 

23살 때도, 28살 때도 늘 그놈의 돈이 문제다. 조금 더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다면 이 정도 금액은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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