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의 안 좋았던 기억 때문에 나에게 프랑스 파리는 다시 여행하고 싶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정확히 5년 뒤 나는 새로운 여행 파트너와 함께 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처음 파리를 방문했을 때 나는 비행기에서 점점 멀어지는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며 "우리 다신 보지 말자!"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적어도 앞으로 10년 동안은 프랑스에 가지 않으리 생각했다. 그렇게 단호했던 내가 다시 파리로 향한 건 아주 사소한 계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 나는 추석을 앞두고 홀로 도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지쳐있는 나의 심신을 달래기 위해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이런 나에게 도쿄는 가장 만만한 여행지였다. 일본어도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는 데다, 비행시간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또 같이 근무하던 동료가 엄청난 일본통이어서 굳이 내가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나에게 최적인 여행지를 추천해줬다.
여행 2일 차에 방문한 국립 서양 미술관도 일본통 동료가 추천한 여행지였다. 잠깐 들리려고 했던 미술관에서 나는 우연히 외젠 부댕의 <트루빌의 해변>이라는 작품을 보게 됐다. 휴대전화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음악을 재생시키고 천천히 전시를 감상하는데,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내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전시를 보고 눈물이 나는 건 처음이라 그 상황이 나조차도 너무 당황스러웠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외로웠던 것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국립 서양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을 보고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특히 <트루빌의 해변>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됐다. 나는 <트루빌의 해변> 앞에 한참을 서 있었는데, 작품 속 여자들의 모습과 탁 트인 바다 풍경이 눈앞의 현실처럼 다가왔다.
<트루빌의 해변>이라는 작품을 처음 접한 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때 받았던 위로가 흐릿해질 때 즈음 오랜만에 만난 친구 K가 나에게 함께 프랑스 여행을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프랑스 파리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에 단박에 거절하려던 차에 갑자기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외젠 부댕!
맞아, 외젠 부댕이 프랑스 사람이었지.
그래! 트루빌도 프랑스였어.."
나는 직접 외젠 부댕의 작품을 보고 싶어, 또 트루빌이라는 곳을 가고 싶어 K에게 흔쾌히 프랑스 여행을 함께하겠노라고 말했다. 그토록 싫어하던 파리였는데, 그것도 도쿄에서 본 한 점의 그림 때문에 다시 그곳을 가게 되다니…. 이토록 사소한 여행의 계기가 있을까!? 하지만 때론 아주 사소한 이유가 여행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결국 트루빌에 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