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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삼각자 Apr 27. 2024

이것은 내 얘기일지도

짧게 끝날지도 모르는 암투병 관찰기

4월 27일. (토)

호스피스에 제출할 의무기록사본을 발급받고 아버지를 잠시 보기 위해 오전에 병원에 들렀다.

어제 빠졌다는 배액관은 별 문제가 없이 드레싱이 되어있었고, 아버지는 주무시고 계셨다.

사실 결론이 너무 빨리 내려져 ‘이게 암투병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머니는 잠깐의 시간을 내어 머리를 감고 오셨다.

아버지가 내주신 휴식시간인가 보다.


자연스럽게 옛날 얘기가 나온다.

아버지의 부모, 형제들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셨던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다.

그런데 오늘 되짚어보니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 두 분, 큰고모, 작은아버지가 이미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제 아버지가 그다음 순서가 되실 게 확실해 보인다.

암은 가족력이라고 하지 않는가.

가슴이 덜컥하고 내려앉는다.

건강관리란 걸 따로 한 적도 없고 그저 건강체로 태어나 병치레 없이 살아온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50을 앞두고 이런 일을 겪어보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뭐라도 해야겠어요.” 기약 없는 혼잣말을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의 마지막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 얼마 전에 유행했던 게 기억났다.

회사의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와중에 이런저런 다짐과 막연한 기대 뒤에는 지쳤다는 핑계로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보내버린 지난 몇 년의 시간이 떠오른다.

마치 인생을 마무리하듯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마지막을 기다리던지. 어떻게 되겠지 하는 동안 내 모습이 주변에 어떻게 보였을지 뻔하다.


“재미있는 일이 없어.”

물론 코로나의 영향이 있었지만 모임이 적어지고 삶과 일의 범위가 줄어들어가는 걸 그냥 내버려 둔 채 누가 재미있는 일을 가져다주길 바란다는 말 아닌가.

팔다리의 힘이 빠지고 머릿속의 생각이 줄어들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그저 잔고 걱정이나 하고 있는 것.

결국 재미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게 죽어가는 것과 뭐가 다른가.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워진다.


하도 오랫동안 뭔가를 벌이고 재미를 느끼고 몰두하고 몸이 부서져라 부딪히는 일을 안 해서 얼마나 빨리, 제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 나는 나에게서 ‘죽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살고 싶다. 아직은 아니지 않은가.


아버지가 마지막에 나에게 큰 거 한방을 주고 가시는 것 같다.

사실 남자로서 아버지에게 큰 의지를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꿈도 없어 보였고, 그저 좋은 사람이기만 한 뭔가 상담하고 물어볼만한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혼도, 사업도, 육아도 아버지에게 물어본 것이 없다는 게 다시금 마음에 걸린다.

정말 그런 분이셨을까. 오로지 내 마음대로 아버지를 재단하고 내 인생에서 어떤 존재인지 규정을 해버린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이제 말로는 내속에 가득한 문제와 고민을 아버지와 나눌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후회는 살면서 충분히 하겠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내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고 가실 수 있도록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려고 한다.

그리고 진짜로 괜찮게, 잘해서 나 스스로 몰아넣은 이 구렁텅이에서 나와야 한다.

그게 아버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겠노라고 결심했던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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