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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운타인 Sep 22. 2022

김에 대하여

백종원도 못이겨

나는 잘 먹었다. 이 문장이 꼭 잘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지만, 잘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꽤 맛있는 인생을 지켜냈다고 볼 수 있다. 홀로 늦은 저녁상을 차려도 소홀한 법이 없었고, 혼자 먹는다고 해도 쓸쓸한 풍경 따위는 키우지 않았다. 자취 경력 15년, 그 막막한 혼밥 세월을 통해 터득한 것은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은 오롯한 밥상을 차리는 능력. 잘 살 때나 못 살 때나 나의 밥상은 풍요로웠으며 맛있는 혼자였다.


나는 외로워도 슬퍼도 밥상을 차리는 데 진심이었다.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가 망했을 때도, 수년간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질 때도 지극 정성으로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세상의 어떤 실패와 좌절도 나의 밥상을 뒤엎어버릴 수는 없었다. 절친한 친구가 각종 문학상을 휩쓸고 다녀도, 사촌이 땅을 사고 빌딩을 올려도 나는 배가 아픈 게 아니라 배가 고팠다. 밥상은 나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상이었으며, 거대한 허기와 맞서는 최후의 벗이었다. 배가 부르면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랜 벗처럼 밥상이 먼저 진심을 보여준 날도 많았다. 어떠한 레시피 없이, 오직 먹어본 기억만으로 만들어도 맛집의 맛이 났다. 나의 밥상은 먹고 싶은 것을 생각만 해도 완벽하게 재현해 주었다.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며 맛집을 두루 경험한 덕이겠지만. 밥상이 내 진심의 맛을 읽어준 것이라고 믿었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요리를 만들어도 늘 놀라운 세계를 보여주었으니. 세상에서 내가 한 노력 이상을 보여주는 건 밥상 하나뿐이었다. 맛집을 몰라서 혼밥을 자처했던 게 아니라, 혼밥이 주는 진심이 맛집보다 더 맛있었다.


그리하여, 사뭇 설레였는지도 모른다. 주야장천 제맛대로만 살 줄 알았던 내가, 어엿한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왜 가정을 이루는 일이 설렜냐고 물을 것이다. 답한다. 내가 누구인가. 생각만으로 맛집의 맛을 재현해 내는 사람이 아니던가. 아이가 이유식을 끝냈을 때 나는 직감할 수가 있었다. 아이들 식단계의 백종원 될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아이들의 결식과 편식으로 속이 타는 세상의 모든 부모님의 구원자가 될 사람을 비로소 찾은 것 같았다. 바로 나, 나였다.


일단 국과 반찬이 예쁘게 담길 식판부터 구입했다. 조금 비싸면 어떠한가. 나의 모든 식단은 인스타로 시작해 세계의 모든 SNS로 퍼지게 될 것이 뻔했다. 초인플루언서가 되어 억대의 광고비를 벌어들일 것이며, 식단을 책으로 출간해 내 자식들에게 재산 대신 저작권을 물려줄 것이다. 그깟 식판이 비싸 봐야 나의 대업보다 비싸겠는가. 나는 이 식판 하나로 오은영 박사님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게 뻔했고, 나를 배고프게 했던 모든 성공한 것들에게 완전히 다른 판을 선물할 게 뻔했다. 배가 아프다면 기꺼이 밥상을 차려줄 인간성까지 겸비하고 있었으니, 이젠 밥상이 아니라 인생의 큰 상을 받을 차례가 분명했다.


대통령상도 따놓은 거나 다름없었다. 모든 정부가 출산장려정책에 실패할 때 나의 큰 성공이 귀감이 되어 앞다투어 아이를 낳고, 남편들이 요리를 배울 게 뻔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토록 안아주고 싶은 달빛 흐붓한 대통령을 만나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를 넘어, 세계의 저출산 문제까지 해결하게 된다면 노벨평화상도 따 놓은 당상일지 모른다. 그때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재단을 하나 설립해, 어떤 인생도 맛있음을 알려주는 것도 좋겠다. 생각한 인생보다 조금 더 성공한 인생이라, 피곤할지 몰라도. 모두가 배부르다면 기쁘게 그 인생 살아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진심이 통하지 않고 있다. 나의 대업이자, 기쁜 인생은 김 한 장에 가로막혀 있다. 아무리 기깔나게 식단을 꾸리고, 있는 재주 없는 재주를 부려도 김 한 장을 이기기가 어렵다. 새벽같이 일어나 세상의 모든 SNS를 뒤져 맛있는 아이 식단을 차려도 김 한 장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냥 아이들은 김이다. 김이 밥이고, 밥이 김일 뿐이다. 백종원도 오은영도 대통령도 김을 이길 수는 없다. 김은 아이들의 실체적인 맛이자, 평화이다. 김이 만든 식단의 평화는 산해진미 따위가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 위치이다. 김이 하나님이나 다름없다.


아이들이 먹는 김은 이토록 명료한데 왜 어른의 김은 출신을 묻고, 성분을 묻고, 성별을 묻고, 색을 묻는 것일까. 내 비록 김에 밀려 성공할 뻔한 미래를 접어 두지만, 어른의 부끄러움은 좀 알아야겠다. 김이 무어냐고 묻는 그대여. 김은 그냥 맛있다. 맛있는 인생에 이바지하기 위해 태어났을 뿐이다. 김은 밥상이 싫다고 김의 맛까지 떠나지 않는다. 그게 김의 진심이. 인생이 맛없는가? 지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그대의 김이다. 김이 있다면 적어도 그대는 맛없는 인생은 아니다.


김이야말로 노벨평화상 후보지만, 나의 성공적인 미래를 가로막는 가장 현실적인 벽이 아닐 수 없다. 괜찮다. 김이 있어, 아이 하나라도 배가 부른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새삼 자매품 계란과 미역에게도 큰 감사를 전할 뿐이다. 나는 진짜 괜찮다. 김 하나를 이길 수 없지만, 이길 수 없으므로 나의 식단은 진심이라는 맛집을 오래 기웃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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