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지우개 Sep 05. 2022

오늘도 골프

극 내향적 사람은 말이죠

 나는 혼자가 편하다. 아무리 친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도, 심지어 가족이라도 오랜 시간 함께 있으면 불편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무의식에는 피해의식이 넓게 깔려있다. 나는 타인에게 절대 피해를 주고 싶지 않고, 누가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죽도록 싫다. 나는 끔찍하게 외로움을 타지만 절대 사교적일  없는 사람이다. 말과 행동은  가시를 품고 있다고 믿기에 그것들은 결국 남을 찌르거나 자신을 찌른다고 생각한다. 타인과 함께일 때는 누구든 가시가 툭툭 튀어나올 수밖에 없고  그런 상황은 매우 자연스럽다고 본다.     


 혼자 할 수 있는 운동, 혼자 해야만 효과적인 운동, 예를 들면 등산이나 마라톤, 자전거, 수영은 이런 나와 참 잘 맞다. 물론 이 운동도 동반자와 함께 즐길 수 있지만, 동반자가 없을 때 운동이 가진 효과가 더 좋다. 운동하는 동안 철저히 내면과 만나고, 타협하고, 싸워야 하기에 나처럼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딱이다. 나는 특히 등산이 좋다. 사람이 많이 다녀서 멧돼지 출몰이나 실족의 위험이 낮은 산은 혼자 다니기에 좋고 길도 잘 나 있어서 산길을 탐닉하기에 충분히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들과 한라산 정상에 다녀왔다. 등산하는 내내 이 길이 혼자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아들과 함께 산을 걷는 일은 충분히 의미 있고 어미로서 당연히 행복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이 숲길을 혼자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 숲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흙과 돌, 나무와 새소리, 잎이 뿜어내는 제주 특유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혼자였다면,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 모든 것을 내 오감이 흡족할 정도로 수용했으리라. 아들과 걷는 동안 아들과 수많은 말을 주고받았고 그 때문에 숲에서 즐길 거리를 많이 놓쳤다. 특히 백록담을 눈앞에 두고서는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불어오는 산신(山神) 옷자락 바람은 놀라웠다. 아들이 없었다면 나는 뒤로 넘어지더라도 그 옷자락에 파묻히고 싶어 꽤 오래도록 버티고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들은 내가 그 앞에 가는 것만 봐도 무서워하며 나를 안전한 곳으로 잡아끌었다. 엄마 그쪽으로 가지 마. 엄마 여기 앉아서 쉬자. 백록담 봤으면 됐잖아. 제발 내려오세요. 나도 아들이 나 같았다면 똑같이 말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같이 있으면 사교와 배려가 기본값이다. 하산하는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혼자 왔다 상상하며 가끔 한눈을 팔았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존재감을 드러냈고(힘들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는 이내 어미로 돌아와야 했다.     


 골프는 자신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운동이면서도 사교가 근본인 운동이다.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은 골프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매력이 있다. 특히 여성은 남성이 비해 공과 친하지 않고, 더군다나 작대기로 공을 치며 논 경험이 적다. 나는 작대기를 휘둘러 공을 타격하는 행위 자체를 골프를 통해 처음 경험했다. 죽어 있는 공을 공중에 띄워 멀리 보내고, 작은 구멍 속으로 집어넣는 이 놀이가 어쩌면 매우 단순하면서도 얼마나 정교하고 다양한 스윙을 요구하는지 하면 할수록 사람을 미치게 한다. 어떤 날은 신들린 듯이 공이 잘 맞다가 또 어떤 날은 신이 나를 버린 듯 좀체 맞지 않는다. 길에서도 스윙 연습을 하는 사람을 한 번쯤은 보았으리라. 이들은 좋았던 스윙 자세를 몸이 기억하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일 점 이 초 만에 끝나버리는 스윙은 몸과 마음이 일치하기 어렵다. 스윙은 그저 습관적이고 반사적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스윙을 위해서는 치열한 연습 말고는 답이 없다. 나를 달래고, 나를 연마하고, 나와 싸우고, 나의 변화에 기뻐하는 골프에 나는 당연히 빠졌다.     


 골프는 필드에서 빛나는 운동이지만 나는 필드가 싫다. 정확하게 말하면 필드 체제가 싫다. 친하든 친하지 않든 4인과 함께 치는 상황이 불편하다. 나로 인해 진행이 늦어지는 것도, 나 빼고 다 잘 치는 상황도 불편하다. 18홀을 돌면 4시간이 훌쩍 넘는데 함께 있어야 하는 그 긴 시간도 부담스럽다. 친밀감의 표시인 ‘구찌’라고 일컫는 말과 행동도 쉽지 않다. 나는 그날의 구찌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제법 걸리는 편이다. 게다가 캐디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청소 도우미, 산후도우미도 불편했다. 그들의 서비스에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데도 서비스를 즐기기는커녕 내내 눈치가 보였다. 이건 캐디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피해의식이 저변에 깔린 내 문제다. 게다가 비싼 캐디피, 그린피, 카트비도 부담스럽다. 4명이 4시간을 잘 노는 데 드는 비용이 인당 5만 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드는 비용은 내 생각에 거의 4배 가격이다. 또 골프복, 특히 여성 골프복은 왜 그런 스타일인지? 물론 자기만의 스타일대로 입을 수도 있겠지만 타인의 눈치가 보이는 나는 내 스타일을 고수할만한(나만의 스타일이 있긴 한 건지) 사람이 못 된다. 나도 여느 여성 골퍼처럼 짧은 치마도 입고 붙는 상의도 입고, 화려한 컬러도 입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니삭스도 신어보았다. 변명 같지만 내 모습에 내가 오그라들어도 그렇게 입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필드에 너무 가고 싶고, 필드가 너무 싫다.     


 18홀 필드에서 혼자 손수레 카트를 끌며 골프 치는 상상을 해 본다. 제한 시간만 지키면 되니 투볼 플레이도 괜찮다. 주어진 시간 안에, 골프장에서 제공한 일정량의 공만 치고 나와야 하니까 말이다. 비용은 4~5만 원 정도. 동반자도 캐디도 전동카트도 볼 수 없다. 복장은 편안한 트레이닝 복이다. 내가 치고 내가 굿샷!이라고 신나게 외쳐본다. 이 골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에 귀도 기울여 보고, 여기서만 볼 수 있는 풍경도 눈에 정성껏 담아본다. 그러다 마음에 들면 사진도 찍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페어웨이를 걸어본다. 스코어는 그저 나만의 기록이다. 나는 그 골프장에서의 스코어와 그날의 내 스윙과 그날 그 골프장에서 든 여러 감정과 생각을 일기에 기록한다. 필드에서의 나는 평소보다 더 평온하고 차분하다. 연습장보다 훨씬 스윙에 집중할 수 있다. 등산만큼 자연을 즐긴다. 동반자가 없으니 핸디캡도 없고, 사교와 배려에서도 해방된다. 스코어는 일기의 부분일 뿐이다. 실컷 초록을 보고 온 나는 실컷 노래를 부른 것처럼 속이 후련하다.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 잔디밭에서 실컷 공치고, 마음껏 뛰놀다 온 어린이에 불과하니까. 나에게 준 선물 같은 시간이니까.     


 오늘도 어린이의 마음으로 필드 골프를 즐기는 사람도 물론 많겠지. 아예 하지를 말지, 하면서 왜 불만이냐고 되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나는 갈비뼈가 부러져도(두 번이나 부러졌다) 치러 가고 싶을 정도로 골프를 좋아한다. 나에게 골프는 등산만큼 매력적이다. 그저 마음껏 필드를 즐기지 못하는 내가 그저 한심하다. 나처럼 혼자가 편한 사람도 필드를 맘껏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필드 구조가 생기길 바랄 뿐.


매거진의 이전글 수행 기록 3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