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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지우개 Dec 04. 2023

소통(疏通)

강신주 [장자수업] 읽고

소통(疏通)   

  


모두가 잎을 떨구었을 때

당연히 붙잡고 있는 나무를 본 적이 있다

차마 떨어뜨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찬 바람을 감내하던 나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연둣빛들을 위해 붓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어느 할아버지는

잠바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는

두 손을 모아 호호 불었다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일이 분명한 듯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정녕

지루함이 아니라 즐거움이었다     


어느 초등학교 학생들의 해금 연주를 들으며

저렇게 어려운 악기를 저만큼 소리 내는 데

얼마나 힘겨웠을지 상상하다

슬며시 눈이 아파오다

힘겹다는 그 생각마저 불통(不通)이라 여겨져

아이 얼굴에 내 얼굴을 슬며시 포개기만 했다     


내 책상 위의 석곡은

매년 노란빛의 꽃을 피워내는데

홀릴 향기 필요 없이

그저 연두 잎처럼, 입김처럼

제 기쁨을 걷는다

꽃잎이 해금처럼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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