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
이 책을 읽으면서 한때 좋아해서 공부한 불교철학이 생각났습니다. 불교에서는 ‘삼법인’이라는 3가지의 근본교리이자 진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제행무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변화하여,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제법무아’로 인간은 정의할 만한 실체도 없고 기준도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일체개고’로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의 원리를 인정하지 않고 실체나 정의를 고집하기에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내용입니다. 제행무상과 상응하는 메시지를 찾아보면 204~205쪽 ‘운명이 레몬을 건네면 그것을 레모네이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로 압축할 수 있고, 제법무아의 내용을 찾아본다면 195쪽 ‘다른 사람을 모방하지 말고 내 모습대로 살라’라고 씐 부분인데 상대의 크기에 상관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내용입니다. 일체개고는 이 책의 많은 부분, 5부~10부에 걸쳐 쓰인 걱정을 줄이는 방법에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는 번뇌의 불을 끄고, 깨우침의 불을 켜면 완전한 편안 상태인 열반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 책의 마지막 부분 32편의 생생한 이야기가 어쩌면 열반적정의 사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고백건대 프로걱정러입니다. 가볍게 살고 있냐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걱정을 떠올리는 순간, 머릿속에서 기다렸다는 듯 걱정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오늘 수업도 무사히 마쳐야 할 텐데, 퇴근길에 사고 나면 안 될 텐데, 제가 만나는 수많은 타인에게서 기대와 실망과 즐거움과 답답함이 넘실거리고, 지금도 제대로 말하고 있는 건지 사실 걱정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불안과 걱정을 극복하는 저만의 비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최악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어쩌면 249쪽처럼 절대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저만의 의식이었습니다. 효과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이 방법의 부작용은 걱정만큼 불안도 커졌다는 사실입니다. 몇 년 전 딸아이가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우울과 불면이 심해 약을 먹였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휴직하고 섬에 살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불교 공부도 해보았고, 실컷 책 보다가 책도 쓰면서 모든 이가 고통 속에서 산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받아들인 상태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라도 좋은 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쁜 점만 있는 것도 아니며 장점과 단점이 혼재하기에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다는 진리는 어느 정도 체득했다고 생각합니다. 걱정을 줄이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기에 저는 걱정을 효과적으로 잊는 법을 연습했습니다. 걱정을 잊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저만의 놀이-미싱으로 옷 만들기, 필라테스 가서 근육뽀개며 운동하기, 어릴 때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돈 걸고 골프 치기, 비 오듯 땀 흘리며 10킬로 달리기,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쉬지 않고 2킬로 수영하기, 시간 목표를 정해놓고 등산하기, 나만의 독후활동으로 브런치에 글 올리기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하기 싫을 때는 산 중턱에 있는 단골 카페에 가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먼 숲을 봅니다. 나무는 늘 변화무쌍하여 제행무상을 알려주고 그러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제법무아가 됩니다. 이렇게 살다 늙다 보면 프로걱정러였던 저도 열반 언저리에는 가지 않을까요. 어떻게 보면 인생이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애써 걱정하고, 실컷 불안하고, 힘껏 극복하는 과정이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