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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지우개 Jun 17. 2024

나를 뛰어넘어보려는 순간

[조원재] 삶은 예술로 빛난다

  타인의 말에서 굳이 가시만 찾아내어 내 살을 찔러보는 나는 그 가시를 향한 거부반응도 활발한 편이다. 화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지 아픔을 느끼는 순간 나 역시 공격 태세가 된다.      


 자랑은 아니나 중학생 때는 상위권이었던 나는 중위권의 고등입학성적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좌절과 무기력으로 교복이 이렇게 무거운 옷이었나를 실감하던 때, 쏟아지는 가시 벼락을 맞은 적이 있었다. 학기 초 학생상담을 앞두고 내 입학성적을 확인하신 담임선생님은 평온하게 말씀하셨다.     


 “사는데 성적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건강하게 학교 다니다 무사히 졸업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조언은 내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모욕적인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말씀이 더 압권이었다.   

  

 “부모님의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못 미치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 해 봐라.”     


 이 말을 듣고 교실로 돌아온 나는 두어 시간을 엎드려 울었다. 머리가 아프고 눈은 퉁퉁 부어 밥을 먹을 수도, 공부를 할 수도 없었다. 겨우 집에 돌아와 정신을 차리고 책상에 앉으니 실컷 울고 난 뒤의 후련함 뒤에 뭔가가 꽉꽉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복수. 나는 나를 무참히 짓밟은 담임선생님을 짓밟기로 결심했다. 선생님의 이름 석자를 일기장에 꾹꾹 눌러썼다. 당신이 나에게 한 그 무자비한 언어를 후회하고 부끄럽게 해 주리라.     


 나는 전투적으로 공부했다. 고등학교에 대한 설렘과 환상따윈 없었다. 학교는 그저 정복해야 할 전쟁터. 선생님 얼굴을 볼 때마다 전투력은 상승되었고, 공부가 잘 되지 않으면 스스로 실망하다 화가 났다. 그럴 때는 일부러 그 모욕의 장면을 떠올리며 집중했다. 덕분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반에서 7등을 했다. 50명 중 중간쯤이던 위치를 보면 꽤 상승한 터. 그러나 그 등수를 결코 상위권이라 말할 수는 없었다. 성적을 끌어올리는데 약간의 벽에 부딪힌 나는 어떻게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머리가 복잡하던 중 선생님이 나를 다시 불렀다.      

 “성적이 이렇게 오를 수 있는지 정말 놀랍다. 이건 기적이다!”     


 그렇게 선생님은 나를 다시 마구 찔렀다. 생채기가 아물기도 전에 ‘기적’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나를 또다시 복수의 코너로 몰아넣다니! 어쩌면 선생님은 정말 상처를 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내 전투력은 정점을 찍었다. 새벽부터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도시락 2개를 스스로 쌌다.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으로 문제집을 두세 번씩 풀었다. 남들 다 가는 독서실을 가지 않고, 정해진 시간보다 더 오래 학교에 남아 공부했다. 부모님의 기대에 미칠 수 없다는 선생님의 단언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단순히 부모님께 인정받으려고 했다면 진작 관두었을 터. 나는 나를 인정해 주고 싶었다. 적어도 나는 나를 짓밟지 말자고.   



    

  김영갑은 1982년 제주에 매료되어 이후 제주에 정착, 20년 가까이 오로지 제주를 필름에 담는 일에 전념한 사진작가이다. 루게릭병에 걸린 것을 알고도 폐교를 임대하여 죽을힘을 다해 자신만의 갤러리를 만들었고 결혼도 하지 않고 가족과도 연락하지 않은 채, 자연에 묻혀 살다 갔다. “섬사람들은 혀를 차며 나를 안쓰러워한다.”, “밥벌이가 되지 않는 일에 매달려 영혼을 바치는 사람들, 주위의 냉대와 비웃음에도 우직하게 한길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답답하다. 그런 일은 팔자 좋은 사람이나 정신 나간 사람들이 하는 짓으로 여기는 게 세상이다.” 라며 자신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사람들과 같이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비웃는다. 그러나 그는 자비를 털어 자신을 위한 전시회를 열었고 자신이 흡족할 때까지 사진을 찍었다. 모두에게 인정받기보다 자신에게 인정받길 원했고, 자신에게 진실하려 했다.     


 “마라도에 가면 세상이 보인다. 작은 섬 안에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 종교, 철학, 문학, 회화, 음악, 무영이 모두 다 있다. 갯바위 파도는 시를 읽어주고 바람은 잠시도 쉬지 않고 노래하며, 억새는 춤추고, 하늘과 바다는 그림을 그린다. 수평선은 고독과 자유를 강의하고 구름은 삶의 허무를 보여준다.”    



 김영갑의 사진에는 사람을 향한 애정 따윈 없다. 오로지 자연의 황홀한 순간뿐. 그가 훔쳐본 이어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진 속 나무, 풀, 파도, 하늘, 돌, 바람, 구름은 결코 한 곳에 멈춰있지 않다. 자연물마다 다른 소리를 내고 다른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 소리와 움직임이 워낙 커 가만히 사진을 보고 있으면 바람소리가 들리고 바다 냄새가 난다. 바로 옆에서 파도가 치고 나무가 거칠게 흔들린다. 그의 가족과 주변인이 그토록 걱정하고, 비난하고, 조롱하고, 안타까워해도 김영갑의 열정은 멈추지 않는다. 비난할수록 더 몰두한다. ‘절망하자면 한없이 절망스러운 상황이지만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하고 가여워해도 김영갑은 그저 편안했다. 김영갑은 혼자선 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혼자이길 원했다. 온전히 혼자여야 사진에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다. 그렇게 제주에 중독된 김영갑은 속세로부터 진정 자유롭게 놀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토록 비웃고 조롱하던 이들에게 수많은 역작을 남긴 채 말이다.


 김영갑의 책에는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발언이 자주 등장한다. ‘밑 빠진 독에 물 채우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정신 나갔다고 혀를 찬다. 그래도 나는 웃는다.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밥벌이도 못한다고 핀잔을 주어도 웃는다. 그 나이에 장가도 못 가고 뭐 했냐고 다그쳐도 웃는다.’, ‘세상물정 모른다고 답답해하던 그가 서울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명함을 주웠지만 그것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는 부분을 보면 사람들의 비난이 그에게 결코 아프지 않았을 리 없을 터. 편안하고 행복하다 했지만 반복되는 조롱과 무시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뜻이다. 사진을 향한 기이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집착은 자기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에서 출발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궁핍한 생활로 배고픔은 참아도 필름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던 자존심이 그를 독하게 밀고 가는 기폭제였으리라. 한참 뒤에 그는 팔순 노인이 거동조차 불편한 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물질을 하는 것을 보고서 고백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형편없고 가치 없었는지. 자신만만하게 세상과 삶에 대해 떠벌렸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자발적 겸손은 내면의 긍정적 에너지를 발생시키지만, 강요된 겸손은 부정적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그 폭발력은 희한하게도 부정적 에너지가 훨씬 강력하여 기대한 것보다 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다. 타인을 향한 반발의 에너지로 결국 더 나은 결과를 이루어 낸 셈. 그렇게 주변에 등 돌리고 자기만의 방향으로 묵묵히 밀고 가다 보면 비로소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모두가 크든 작든 한 덩어리의 한을 가지고 묵묵하게 자기 몫에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만 잘난 것이 아니라고. 나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타인의 말과 행동에서 느꼈던 그 많던 가시들은 어쩌면 나를 나답게 살게 하는 길잡이였다고 말이다. 사람에게 환멸을 느낀 김영갑은 제주의 자연에게 위로받지만 사실은 자연마저 불확실하다. 그렇게 마음이 번잡하면 김영갑은 들판으로 나가 치열하게 일하는 노인을 보았다. 한결같은 노인을 보며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과 자신을 향한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다시 사진을 찍는다. 이제 사람들은 사진 속에서 자연을 넘어선 그를 본다. 사람을 넘어서고 자연을 넘어선 그는 사진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다.      




 열일곱이면 누가 무슨 말만 해도 까르르 넘어가고, 그 나이만이 누릴 수 있는 풋풋함으로 하루 종일 신나고 설렐 법도 한 나이. 그러나 내 열일곱은 눈물로 얼룩져 종이마저 우는 ‘수학의 정석’ 같았다. 그럼에도 한층 끌어올려진 복수심 덕에 나는 나쁘지 않은 내신과 수능성적으로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가장 감사한 선생님이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늘 그 선생님이다. 내 성향에 적확한 발언으로 전에 없던 복수심을 일으켜 결국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게 만든 진정한 스승님 말이다. 선생님의 발언으로 나는 고등학생 시절을 보람차게 끝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분노했지만 덕분에 나는 나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내 한계를 알았고, 내 한계를 넘었다. 그 시절을 겪고 나니 모든 일에 끝이 있다는 진리가 좋아졌다. 끝날 것을 알기에 오늘도 즐길 수 있다. 공부, 운동, 인간관계 심지어 내 목숨마저도 언젠가 다 끝이 난다. 영원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싶을 만큼 ‘끝’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김영갑은 “인생의 끝을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일을 찾았다.”라고 했다. 생이 결국 끝나버리기에 오늘을 잘 살 수 있다. 그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기에 내일은 어제와 다른 나를 만나고 싶다. 만나야 한다.      


김영갑의 책 말미에는 ‘살고 싶다고 해서 살아지는 것이 아니요, 죽고 싶다고 해서 쉽사리 죽어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쓰여 있다. 살고 죽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도 있지만 내 삶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라는 뜻도 아니다. 적어도 저 말에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살아보고 싶은 대로 한번 살아보라는 말이 아닐까. 나도 몰랐던 내 안의 폭발력으로 삶을 주체적으로 끌고 가봐야만 비로소 삶의 진리나 예술의 참뜻을 알아 간다는 뜻이리라. 살아지거나 죽어지는 진리를 깨닫기까지는 적어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고, 죽을 만큼 절실하게 달려보라는 말이다. 나는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의 강요된 겸손으로 내 폭발력을 보았고 김영갑은 자신을 향한 비난과 조롱에 힘입어 평생 동안 폭발적으로 사진을 밀고 나갔다. 나는 현재의 나를 뛰어넘는 에너지가 지금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높은 암벽을 보면 몇 번이고 떨어져도 도전하고 싶고, 숨이 턱까지 차서 그만두고 싶어도 끝내 목표치만큼 달린다. 어려워 보이는 패턴일수록 더 신나게 원단을 자르고 바느질을 한다. 그렇게 새로운 나를 만나면 ‘그래, 이게 나지.’라며 비로소 내가 나를 인정한다. 오늘도 나는 타인을 만나고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나를 찌르는 가시를 만난다. 고통스럽게 찔리고 기꺼이 아파본다. 그렇게 나를 뛰어넘어보려는 순간 내 삶은 예술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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