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절반을 너와 함께
내 나이 17살, 너를 처음 만났어.
네 엄마가 양수를 터뜨린 순간,
산파가 되겠다던 배짱은 사라지고
나의 엄마에게 엄마, 엄마하며 전화를 했었지.
이윽고 손가락만 한 네가 태어났어.
혹여 내 검지가 너를 아프게 할까봐,
새끼손가락으로 몇 번 쓰다듬어 본 것이
나의 첫인사였어.
나는 때때로 둘째로 태어남에 대한 설움이 있었어.
예를 들면, 오빠가 돌잡이 때 연필을 잡은 것은
마치 어제 일처럼 묘사하는 반면
엄마 아빠가 내 돌잡이는 머뭇거리는 거야.
잘 기억이 안나는 거지.
10대는 서운할 수 있는 일들이야.
너는 우리 집의, 나의 두 번째 강아지였기에
너를 기르며 나는 나만의 힐링캠프를 찍었어.
결코 덜 사랑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구나.
내가 너에게 그랬듯이.
첫째는 처음인 그 순간들이 각인돼 특별하고,
둘째는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어 특별했어.
그래서 네가 뭘 해도 예쁘고, 귀엽고, 아기 같았어.
보는 것도 아까워서 혼내기는커녕
손, 발, 앉아 이런 걸 가르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었어.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냥 난 네가 숨만 쉬어도 좋아라 하는 마음.
그렇게 너와 하루, 하루 살아갔어.
어느새 너는,
내가 너를 처음 만나던 나이가 되어 있었지.
열일곱.
강아지 나이로 환산하면 여든이 넘는다고 하더라.
슈퍼 듀퍼 호호 할머니.
그래도 여전히 내겐 안으면 부서질까,
바람 불면 날아갈까 싶은 아기였어.
매일 네 입에 심장약을 털어 넣어야 했어.
그래야 네가 산다고 하더라.
때론 귀찮아서 먹이지 않은 날도 있었어.
하루쯤 괜찮겠지 했어.
그리곤 다음 날 부끄러웠지.
이 작은 것도 귀찮아 미루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자격이나 있나.
나는 이 생명에게 우주이자 전부인데
이렇게 게으르고 나태하며 안일하다니.
심장약이 네 신장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걸 알지만
이 약을 먹이지 않으면
그 언젠가처럼 쓰러지고
그럼 나는 숨도 못 쉬고 울면서 병원으로 뛰어가
의사 선생님께 너를 건네야 하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너무 슬프고
네가 불쑥 사라져 버릴 테니까.
심장이 덜컹이는 너를 느낄 때마다
하루만, 하루만 더 있어 달라고 애원했어.
약 복용을 시작한 순간부터 최대 3년이고,
대체로 1,2년 정도라고 했지만
너는 4년을 버텨주었어.
그러다 네가 다시 쓰러졌어.
심장이 아니라 신장 때문이었지.
그렇게 점점 야위어 가는 너를 끌어안고
긴 이야기를 건네던 밤이 있었어.
너에게 반한 수많은 순간을 얘기해주고 싶었어.
어떤 순간에도 의리 있었고
너의 유리함과 불리함과 상관없이 한결같았고
그리고 언제나 나를 사랑해주었던
나보다 더 멋진 구석이 많던 너.
충분히 무엇이든 책임질 나이도, 여력도 되지만
너에 대하여 사소한 책임도 다하지 않은 순간이
분명 있었음에 대한 사과도.
너와 인생의 절반을 넘게 함께 했기에
방문을 열었을 때
네가 없는 풍경은 두렵고 싫지만
그래도 네가 아픈 건 더 싫으니까.
너무 아프면, 너무너무 아프면
이제 가도 된다고.
고맙고, 행복했고,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다음 생이 있다면
또 내 곁의 누군가가 되어 달라고.
정말 그 밤이 지나고
너는 떠났어.
오늘, 네가 간지 꼬박 1년이 되는 날이야.
아직도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어.
너랑 눈을 마주치고 싶어.
네 이름을 부르고 싶어.
네 등에 얼굴을 묻고 숨을 쉬고 싶은 날들이 많아.
잘 지내고 있니?
내 똥강아지. 내 사랑. 내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