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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랑 Oct 01. 2019

부처님께 빚진 마음

엄마를 사랑하는 방법


봉은사는 엄마의 무급 직장이었다. 9시부터 6시까지 봉사를 했고 어디서든 장을 놓치지 않는 엄마답게 '봉은장'이라는 근사한 명함도 가지며 봉사자의 끝판왕에 오르기도 했다.

내 기억이 선명할 때부터 엄마는 거의 매일 봉은사에 갔다. 엄마가 내 나이일 때, 마음 속에 가득 기원하는 바가 있었다고 했다. 어느날 길을 걷다 봉은사를 마주했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열린 문으로 빨려 들 듯 들어섰다. 기도하는 방법은 몰랐어도 이내 평온함을 느꼈다고 했다.

자식들을 위한 기도는 끝이 없었다. 입시가 끝나자마자 고시가 시작된 아들, 딸을 가졌기에 기도로부터 해방될 틈이 없었다. 아득한 꿈을 향해 걷는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이 엄마의 일이었다. 봉은사는 엄마의 터전이 되며 봉사를 시작했고, 친구들이 생겨났고 모임이 많아졌다.

맞벌이는 아니지만 맞벌이와 진배없이 언제나 바쁜 엄마였다. 때론 엄마를 이해할 수 없던 날들도 있었다. 딸을 위한 기도보다 딸과의 대화가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내 마음을 왜 내게 묻지 않고 부처님께 의탁하는 것이냐고 따져 묻던 날도 있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엄마가 너무 바빠 듣지 못하는 현실 속 나의 이야기가 쌓여가고 있다고 느낀 날도 있었다.

오랜만에 퇴근하고 엄마가 있는 봉은사로 갔다. 내 회사도 삼성동이라 10분이면 갈 수 있었지만 봉은사로 엄마를 만나러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엄마의 숱한 시간과 추억과 주변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이지만 딱히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엄마에게 서운하다고 말한 그대로 나도 똑같았다. 점심 한 번 먹으러 오라고 해도 바쁘다고 말하는 딸내미 었으니까.

엄마를 기다리며 탑을 돌았다. 문득 부처님께 빚을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들어주길 바랬을 엄마의 이야기들, 바라봐주길 바랬을 엄마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못된 말, 서운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딸에게 마음을 다칠 때면, 엄마는 이곳에 왔을 거다. 그때마다 부처님을 찾고, 부처님께 말했을 거다. 기도하며 이내 마음이 다독여졌을 거다.

이젠 함께 살던 시절이 다 지나고 엄마와 서로 다른 집에 산다. 집에 가면 늘 있는 엄마가 아니니 따로 약속을 잡고 만나야 한다. 보이지 않았던, 아니 애써 보려 하지 않았던 엄마가 보인다.


이전보다 더 자주 봉은사에 오려고 한다. 부처님께 의탁해둔 엄마의 이야기를 틈내어 더 많이 들어봐야지. 봉은사에 머무는 엄마를 더 많이 봐주러 와야지. 엄마가 사랑하는 공간, 좋아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바라봐주어야지.


엄마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엄마를 사랑해주어야지.



가을밤의 봉은사,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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