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주사실 앞에서 책도 읽어보고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보기도 하고 가끔은 글을 쓰기도 하고... 그러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가 있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노라면 지나간 기억. 며칠 전 있었던 일. 아끼고 사랑스러운 페북 벗의 막둥이에 대한 내 모자란 기도가 닿았는지 하는 생각. 아끼는 언니 오빠분의 병환은 어떠신지.. 그로 인해 힘들진 않은지.. 따님의 시험과 계획은 잘 되어가는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과 마음 안에서 둥둥 떠다닌다.
시간이 나서 보는 국감은 개탄스럽고 속이 더 답답하고 이제는 너무 어두운 영화는 눈에 잘 담아지질 않는다. 그러다 우연히 조립식 가족과 정숙한 세일즈를 접하게 되었다. 둘 다 옆지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내가 좋다니 함께 보기로 했다. 조립식 가족. 꼭 핏줄을 나눠야만 가족일까. 많이 느끼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정숙한 세일즈에서 정숙(배우 김소연 님)의 이런 대사가 나왔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슬픔이 좋았다.'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그래.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옆지기.
원인이 나완 틀리지만 가깝지 않은 가족관계.. 지나온 슬픔들.. 현재 서로의 마음 상태가 같진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슬픔이.. 편했고 적지않은 나이에 두번째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책을 읽고 쓰고, 난 커다란 강아지를 키우며 다른 언어들을 배우며 어쩌다 여행 가고 그렇게 그렇게 잔잔히 나이 들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하늘은 아직 아직이라 했고 한다.
러브스토리나 가을동화 같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접할 수 있다 생각했던 쉽게들 말했던 백혈병. 나는 지금 수혈을 하지 않으면 기운을 내지 못하는 옆지기의 혈액 주사실 앞에 3시간째 앉아있다. 기다림은 내겐 늘 해 오던 것이라서 이젠 버겁지도 그다지 힘들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