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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반드시 통한다. 그때가 언제인지 모를 뿐.

by 청리성 김작가

좋아하지만, 잘 보지 않는 것이 있다.

드라마다. 영화는 길어야 2시간 정도면 되지만, 드라마는 시리즈물이라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잘 보지 않는다. 한번 빠지면 조절을 못 하는 성향인 것을, 나 자신이 잘 알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면 뿌듯한 마음이 들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흘려보낸 시간을 아쉬워하며 또 시간과 마음을 소비하게 된다. 의미 있다는 것은, 배울 것이 있다든지 마음에 울림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냥 재미로 보면 되지 뭘 또 의미를 찾느냐고 따져 묻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잘 안된다. 어떤 시간이든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그냥 누워있더라도 말이다.


<협상의 기술>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OTT 플랫폼으로 야구 중계를 보는데, 광고로 계속 나왔다. 제목이 와닿기도 했고, 배경이나 흐름도 하는 일과 연관이 있어 관심이 갔다. 광고에서 계속 나오던 대사는 이렇다. “너무 늦지 않았나?” “M&A하면 가능합니다.” 드라마 중심에, 대기업이 있다. 회장이 있고 본사 임원들과 계열사 대표들도 있다. 여기에 주인공인, M&A 팀장과 팀원들이 나온다. 회사의 위기 상황을 M&A로 풀어가는 이야기다. 예전에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기업 용어와 상황들로 몰입감이 더해간다. 기업의 생존을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협상하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에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한 이야기를 소개하면 이렇다.


회장이 임원과 팀장을 소환한다.

개인 주식을 담보로 500억을 대출받았는데, 상환일이 29일 남았다고 말한다. 문제는 상환 요청이 들어온 거다. 어떻게 갚아야 할지를 물었다. 임원은 다른 대출로 갚자고 제안한다. 팀장은 사용 용도를 묻는다.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회장은 리조트를 구매했다고 한다. 팀장은 리조트를 팔아 갚자고 제안한다. 회장은 분노한다. 리조트는 절대로 팔아서는 안 된다는 거다. 사연은 이렇다. 회장에게는 외동딸이 있다. 어린 시절 엄마를 잃고 방황했는데, 현재는 암에 걸려 죽음에 근접해 있었다. 딸의 마지막 소원이 제주도에 구매한 그 리조트에서 사는 거였다. 리조트에서 살다가 죽고 싶다고 했다는 거다. 그래서 리조트를 사서 딸에게 준 거다. 아픈 손가락의 마지막 소원인데 그것을 팔라고 했으니, 노발대발할 만하다.


팀장은 내막을 몰랐다.

내막을 모른 채 직원들과 리조트 실사를 떠났다. 회사 모르게 말이다. 드라마답게(?) 직원들과 회장 딸이 만난다. 여직원 숙소 바로 옆에서 살고 있던 거였다. 서로의 정체를 금방 알게 되었고, 리조트를 실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딸은 리조트 대표로 있지만, 경영이라는 것에 문외한이었고 관심도 없었기에,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상태로 계속 가면 리조트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실사 결과를 이야기했다. 딸은 그래도 팔지 않겠다고 했다. 회장은, 몰래 실사하러 가서 리조트 판매를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쓰러진다. 당장 올라와서 사표 쓰라고 엄포를 놓는다. 모든 게 잘못됐고, 끝으로 보였다.


팀장은 회장에게 사표를 제출한다.

사표 제출하고 돌아서는데, 회장한테 전화가 왔다. 딸이었다. 딸은 회장한테 리조트를 팔라고 했다. 지금까지 극구 반대하던 딸의 마음이 돌아선 거다. 딸은 무엇보다 기쁜 소식을, 회장에게 전했다. 암 수술 후 재발해서 재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거부했던 딸이었다. 재수술을 받겠다고 이야기한다. 회장은 이 말을 듣고 벅찬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다. 회장은 통화를 마치고 팀장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팀장 앞으로 가서 제안한다. 임원을 해보지 않겠냐고 말이다. 뱅뱅 돌고 꼬이기는 했지만, 팀장은 회장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온 셈이 됐다.


의중을 알아차린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팀장이 회장의 이런 의중을 다 파악했는지는 모른다. 중요한 건 팀장을 비롯한 팀원 모두가 딸에게 진심으로 대했다는 거였다.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진심이 통한 것으로 보였다. 이들을 통해 딸은, 아빠인 회장의 마음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말이다. 협상의 기술을 통해 배운다. 진정한 협상의 기술은 진심이라고. 진심을 능가하는 기술은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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