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사람의 기준이 아닌, 받는 사람의 기준일 때 완성되는 것
2년 전, 구역별 반 미사가 진행된 적이 있었다.
평일 저녁에 반별로 한 가정에 모여 미사가 진행됐는데, 주임 신부님께서 직접 집전하셨다. 우리 반은 우리 집에서 하기로 결정되었다. 자신의 가정에서 하면 영광이라고 말은 하지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겠다고 했다. 평일 저녁에 시간 맞춰서 집에 오는 건, 나에겐 하나의 미션과도 같다. 칼퇴근도 어렵지만, 칼퇴근을 해도 차가 막히면 도착하기 어려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늦지 않게 도착할 방법을 궁리했다. 퇴근 시간보다 조금 일찍 마칠 수 있도록, 거래처 미팅을 잡았다. 미팅을 마치고 바로 퇴근하면,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계획대로 진행이 되었고, 시작 시각 30분 전에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청소와 정리는 이미 마쳤고, 미사를 마치고 이야기하면서 간단하게 나눌 다과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거들기 시작했다. ‘제대’로 사용할 상과 신부님이 ‘제의’를 입으실 방을 정리했다. 방석을 깔아 참여하는 신자들을 맞이할 준비도 했다. 해설을 맡았기 때문에, 해설 준비도 했다. 신자분들이 한 분씩 들오기 시작하셨다. 눈에 익은 분도 계셨고, 처음 뵙는 분도 계셨다. 다해서 열 분 정도 참석하셨는데, 참석자 중에 남자는, 신부님과 나, 단둘이었다.
미사를 마치고 식탁에 둘러앉았다.
집에 있는 의자를 다 끌어모았고, 아이들은 피아노 의자에 다닥다닥 앉으라고 했다. 신부님을 중앙 자리에 앉으시라고 하고 자리에 앉는데, 그냥 앉기가 불편하셨는지 신자분들은 뭔가를 나르기 시작하셨다. 잘라놓은 과일과 음료수 그리고 컵과 기타 필요한 도구들을 옮겼다. 아내와 내가 해도 충분했는데,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그러셨는지 아니면 그냥 앉아 있기가 미안해서였는지 자리에 앉아 있지 않으셨다.
신부님만 앉아 계신 모양이 되었다.
신부님도 어색하셨는지 무언가를 계속 옮기고 있는 사람들만 바라보고 계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어?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부님 앞자리에 앉아, 식탁에 놓인 과일을 권해드렸다. 신부님은 혼자 드시기 뭐 하셨는지, 신자분들에게 그만하고 앉으시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모두 모여 앉아 간단하게 다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마치고 돌아가신 다음, 손님을 대접한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봤다.
반 미사를 집전하러 와주신 신부님을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분주하게 다과를 준비했지만, 그게 신부님을 위한 행동이었는지 돌아봤다.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접을 받는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보다 민망한 마음이 더 크게 자리했으리라 생각됐다. 무엇이 상대방을 위하는 것인지를,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닌, 내 기준에서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에 대해, 생각지 못한 상대방의 반응을 볼 때가 있다.
내 처지에서는 상대방을 생각해서 한 행동이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다. 성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민망하게 반응할 때도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 했지만 내 만족이 더 컸다. ‘이렇게 하면 좋아하겠지?’라는 생각은 내 생각일 뿐이다. 내가 맞이하는 손님을 잘 대접하는 방법은, 손님이 원하는 것을 먼저 찾는대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