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아집

by 청리성 김작가
『편견과 선입견이 사는 집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기 위해,
허물어야 하는 집』


“우리의 마음에는 두 마리의 개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선입견(先入見)이고 다른 하나는 편견(偏見)입니다. 이 두 마리의 개가 살 수 있는 집은 아집(我執)이라고 합니다.”

(출처: 2019년 2월 23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복음 묵상 글 중에서)


판단은 아집에서 나오고 아집을 견고하게 만드는 건 선입견과 편견이라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나 일에 관한 판단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으로 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에 관한 판단을 그렇게 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기준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내 기준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내 의도와 상관없이 판단 당하게 된다.


아내와 나는 성당에서 만났다.

그때 우리의 관계는 교사와 학생이었다. 물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교제를 한 건 아니다. 내가 군대를 다녀오고 아내가 대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사귀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결혼 초반에는 부부라기보다 선생님과 학생 같은 분위기였다. 내가 모든 것을 주도하고 아내는 따라주었다. 지금도 큰 부분에서는 그렇게 하지만, 17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애가 애를 키우는 것 같았는데, 어느덧 세 아이의 친구 같은 엄마가 되었다.

셋 모두 순조롭게 나온 아이는 없었다. 마음고생과 몸 고생을 다 하면서, 고비를 넘기듯 어렵게 출산했다. 마음이 여려서 어떻게 견디나 싶었는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있었던 모든 일을 엄마에게 전하고 상의한다. 아내는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고, 조언해 주면서 그렇게 받아준다.


아내와 나는 잘 맞는 부분도 있지만, 잘 안 맞는 부분도 있다.

잘 안 맞는 부분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있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가 어느 정도 이해하고 넘어가게 되었다. 서로의 단점을 잘 알고 있어, 서로 보완해 주면서 동반자가 되었다. 대화를 자주 하면서 간극이 조금씩 좁혀졌다는 생각이 든다. 주로 아내가 말을 하기는 하지만.


아내는 밖에서 있던 일을 자주 이야기하는 편이다.

좋은 일도 얘기하지만 기분 나빴던 일도 얘기한다. 기분 나빴던 일은 더 자세히 얘기한다. 상황이 어땠는지 왜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는지 다 얘기한다. 자신이 얼마나 기분 나빴을지 설명하는 것 이상으로, 함께 공감해 주기를 바랐다. 이런 방면에서는 눈치가 전혀 없던 나는, “너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이야!” 모드로 종종 진입하곤 했다. 같이 씩씩대야 하는데, 조곤조곤 설명했던 거다. 그것도 상대방의 입장을.

변호사가 의뢰인이 아닌 검사의 편을 들면, 그런 기분일까?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을 풀려고 얘기했는데, 오히려 훈계를 들어야 하는 상황에 아내는 많이 속상해했다. “나는 선생님이 필요한 게 아니고, 내 편이 필요한 거라고!” 이 말을 듣고 매우 뜨끔했다. 이제는 아내의 기분 나쁜 일을 저울에 달지 않는다. 기분을 먼저 헤아리려고 노력한다. 누구 편을 드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판단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잘못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어쩌면, 판단하는 순간 편견과 선입견이 사는 아집에 갇히게 되는지도 모른다.

다른 부분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넘기는 게 아니라, 옳고 그름으로 갈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기준은 내가 알고 있는 경험과 지식 등 내 안에 있는 게 전부다.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이 더는 보지 못하게 만들고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 선입견과 편견을 내보내야 아집을 무너트릴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을 판단하는, 우를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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