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잘 새겨들어야 한다.
잘 새겨들어야 한다는 건, 표현된 말 그대로가 아니라, 그 말 뒤에 드러나지 않은 의도 혹은 깊은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잘 났어. 정말!”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아! 그래, 난 정말 잘났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 말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떤 의도로 하는 말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바로 의도 혹은 깊은 의미를 파악하라는 거다.
자주 사용하는 반어적 혹은 은유적 표현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 안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다. 말하는 사람이 드러나지 않게 의도를 제대로 숨겼거나, 새겨듣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 말을 하는지, 그 의미를 살피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또는 이 말을 하게 된 배경 등을 생각하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어떤 음식에 대해 매우 과민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그 음식으로 고생한 기억이 있어서 그럴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부분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왜 저런데?’하며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게 된다. 매번 예의주시하기 어렵지만, 중요한 대화는 잘 살펴야 ‘동상이몽’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맥락적 경청’이라는 것이 있다.
코칭 대화에서 강조하는 경청 방법이다. 코치는 고객이 말하는 것은 물론, 말하지 않은 숨은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경청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맥락적 경청이다. 말하는 텍스트가 아닌, 그 텍스트에 담긴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의미다. 혹은 말하지 않은 것까지 읽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어떻게 말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그렇다. 신(神)도 아닌데 어떻게 말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그런 의미일까?
이 또한, 맥락적 경청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의문이다. 말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정확하게 맞출 수 있겠는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있을 만큼, 사람 마음을 알아차리는 건 매우 어렵다. 평생을 같이 산 부부도 서로 속을 모르겠다고 한탄하는데, 어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겠는가? 그 말의 의미는 이렇다. 고객이 드러내지 못했거나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부분을 자각하도록, 질문을 통해 알아차리게 하라는 의미다. 그런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게 경청이고,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맥락적 경청’이라는 말이다.
성경에도, 맥락적 경청을 해야 할 부분이 있다.
자선을 베풀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종교를 떠나 많은 사람이 인용한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너무 생색내는 사람에게, 일침을 가할 때 주로 사용한다. 그렇게 생색내면 좋은 일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의도가 순수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도움을 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 다분해 보인다. 이런 사람을 ‘위선자’라 표현한다. 위선자는 마음의 중심이 타인에 있지 않고, 자기한테 있다. 심하게 말하면,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단으로 타인을 이용하는 거라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성경 말씀은, 자기를 중심으로 생색내지 말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정말 그래야 할까?
정말 자신이 행하는 선행을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할까? 필자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선한 영향력을 펼치시는 분들을 보고 그분들 얘기를 들으면서, 이 생각이 바뀌었다.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이다. 나 혼자 선한 영향력을 펼치면 한 명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사람 열이면 어떻게 될까? 열 명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수가 늘어날수록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은 늘어난다. 이분들이 위선자와 다른 점은, 마음 중심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분들의 마음 중심은 타인에게 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타인에게, 마음 중심이 있다. 그러니 그렇게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거다.
마음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
내가 하는 선행이 생색인지 아니면 선한 영향력을 펼치려는 것인지 구분하는 기준은, 마음 중심에 있다. 마음 중심이 자기를 드러내려는 데 있다면 생색이다. 마음 중심이 타인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도움을 주려는 것이라면, 선한 영향력이다. 드러내느냐 드러내지 않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를 위한 것인지가 중요하다.
가끔 누군가 어떤 제안을 한다.
모두를 위한 것이라며 제안한다. 하지만 함께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마음으로 묻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제안한 사람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지만,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공동체에 어떤 제안을 했는데 많은 사람이 함께 공감하지 않거나 호응하지 않는다면, 그건 공동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일 수 있다. 맥락적 경청을 통해 그 느낌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말이다.
<코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