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할 때, 상대방에게 받는 느낌은 크게 두 가지다.
스펀지 같은 느낌과 벽 같은 느낌이다. 뭐든 잘 흡수하는 것을 비유할 때, 스펀지를 자주 인용한다. 물에 스펀지를 담그면, 금세 물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신기하리만큼 잘 흡수한다. 바닥에 물을 흘렸을 때도, 걸레나 휴지보다 스펀지를 이용할 때 더 빨리 정리할 수 있다. 이렇듯 내가 하는 말을 쫙쫙 잘 흡수한다는 느낌이 들면, 말할 맛이 난다.
벽 같은 느낌은, 벽에 공을 던지는 느낌이다.
공의 탄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벽에 공을 던지면 다시 튕겨 나온다. 내가 던지는 공이 나에게 다시 되돌아온다. 공놀이할 때는 좋다. 공을 주우러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할 때는 어떤가? 최악이다. 물 없이 고구마를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삼킨 것처럼, 꽉 막힌 느낌이 든다. 어떤 때는, 얄밉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으면서, 못 알아들은 척할 때가 그렇다. 벽을 세우는 거다.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는 못 알아들은 척하지 말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싶다.
느낌을 잘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느낌에 따라 대화를 어떻게 끌고 갈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펀지처럼 말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진도(?)를 착착 나가면 된다. 이런 사람에게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건, 시간 낭비이기도 하고,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크다. 이해했는데 더 이야기하거나, 했던 얘기를 반복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더는 마주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마주하고 있는 것 자체로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따라서 스펀지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은, 속도감 있게 대화를 이끌어 갈 필요가 있다. 이는, 좋은 느낌을 잘 살려가는 데도 도움이 된다.
벽처럼 자꾸 튕기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이 벽을 뚫거나 넘어가야 한다면, 한 곳으로만 던져서는 안 된다. 여기저기 던져서 공이 통과할 만한 곳을 찾아야 한다. 다양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내용이지만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해야 한다. 대화할 때는, 상대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 관해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직업을 안다면 그 직업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거다. 잘 아는 사람이라면 함께 나눈 경험이나 추억을 바탕으로 설명하면 이해가 빠르게 된다.
자! 이번에는 듣는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
“나는 스펀지 같은 사람인가? 벽 같은 사람인가?” 아니, 다시 질문한다. “스펀지 같은 사람이고자 하는가? 벽 같은 사람이고자 하는가?” 전자와 후자의 질문 차이는, 의지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듣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말할 때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으니, 자연스레 의지가 담기게 된다. 하지만 듣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들리는 대로 듣겠다고 생각한다.
듣고자 하는 의지를, 편견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이렇게 질문하면 좋겠다. “스펀지로 들을 것인가? 벽으로 들을 것인가?” 스펀지로 듣는다는 건, 경청하는 마음과 태도로 상대의 말을 잘 듣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기에 더 해야 할 것은 공감이다. 공감하지 않는 경청은 의미가 없다. 벽으로 듣는다는 건, 애초에 들을 생각이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후자라면 그 어떤 얘기도 나눌 수 없다. 왜 속담에도 있지 않은가?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일 순 없다는 속담 말이다. 본인의 의지와 노력 없이는, 스펀지처럼 들을 수 없다.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말을 잘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제대로 듣지 않고 공감하지 않아서다. 대화의 연결고리가 제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대로 듣고 공감하는 게 먼저다. 코칭에서 경청과 공감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대로 듣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처럼,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서로의 머릿속에 있는 내용이 달라진다. 이 얼마나 허무한 상황인가! 마음의 문은 밖에서 열지 못한다. 안에서만 열 수 있다. 공감만이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듣고자 하는 의지를 안에서 열지 않으면, 그 어떤 말도 들어오지 못한다. 코칭하는 데 벽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고객이 아닌, 코치 자신이 벽으로 서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