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다르다'와 '틀린다'를 구분하는, 인정

by 청리성 김작가

코칭에서 간과하기 쉽지만, 중요한 기술이 있다.

인정과 칭찬이다. 비슷한 말 같지만, 엄연히 다르다. 칭찬은 겉으로 드러난 성과에 대해 하는 것이라면, 인정은 그 성과의 밑바탕이 되는 태도와 품성 그리고 가치관 등에 대해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공동체에서 누군가 쓰레기를 버렸다고 하자. “혼자서 쓰레기를 버리고 왔구나? 멋지다.”라고 말하는 건 칭찬이다. 행동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참 좋네. 훌륭해!”라고 하면 인정이 된다. 행동에 깔린 근본적인 태도와 품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인정과 칭찬은 동기부여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쓰레기를 버리고 온 사람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다음에 어떻게 하겠는가? 또 쓰레기를 버리지 않겠는가? 어떤 보상이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인정과 칭찬이 그 사람에게,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만든다. 여기서 가성비를 언급하기는 뭣하지만, 말 한마디로 최고의 가성비를 내는 게 인정과 칭찬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잘 안 된다. 해야지 하면서도 잘 안 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필자는 평소에 사용하는 말 표현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별거 아닌 말이 자기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설명할 테니 잘 들어보시길.


우리는 잘못된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다.

나쁜 의도를 품고 그렇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정보를 알게 되고, 그것이 익숙하게 된 탓이라고 보는 게 맞다. 의외로 잘못된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되는 때가 있다. 지하철 객실에 있는 스크린 광고판에서 ‘바른말 쓰기’ 캠페인이 나올 때가 그렇다. 제대로 아는 표현도 있지만, ‘어? 그래?’라며, 지금까지 알고 있던 표현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을 때도 있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던 표현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음부터는 주의해서 사용하게 된다. 충격(?)에 여파가 클수록 머릿속에 강하게 남는다. 그래도 다행인 거는, 맞춤법이 틀린 정도의 잘못된 표현이라는 사실이다. 의미를 아주 다르게 사용하고 있던 표현은 없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표현은 분명히 있다.


문제가 되는 표현이 있다.

그게 무슨 문제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조그만 깊이 생각하면, 그냥 그렇게 넘길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조금 강하게 이야기하면, 그 표현으로 마음 자세까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네 안의 잠든 거인을 깨워라>에서도,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말이 가진 놀라운 능력’이라고 제목을 붙일 정도로,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안에 품고 있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다. 유명한 연설가들의 말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언급하면서, 말을 잘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삶의 경험을 그대로 나타내는 말을 효과적으로 선택하면 활력을 주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반대로 말을 잘못 선택하면 사람 이 순식간에 황폐해진다. 그런데도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사용할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선택한다. 자신이 가진 가능성의 미궁 속을 생각 없이 몽유병자처럼 떠돌아다니는 셈이다. 현명하게 선택하기만 해도 말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내가 내뱉는 말 한마디로 불러오는 감정이 극과 극이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 더해 말은, 감정뿐만 아니라 마음 자세까지 다르게 한다. 마음 자세가 행동으로 연결된다는 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같은 말과 행동으로 대하진 않기 때문이다. 말과 감정 그리고 행동은 서로 연결돼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느 하나가 바르면 다른 것도 바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어느 하나가 바르지 못하면 다른 것도 바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 옷 색깔하고, 저 옷 색깔이 틀리네?”

어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다는 말이 된다. 이 말에서 잘못된 점은, 다른 것을 틀린다고 표현한 거다. 색깔은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다. ‘다르다’와 ‘틀린다’. 우리는 이 표현을, 같은 의미로 사용할 때가 많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인데도 말이다. 필자도 처음부터 이 둘을 잘 구분해서 사용한 건 아니다. 깊은 의미를 알게 되면서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의식하지 않아도 잘 구분해서 사용한다. 두 가지 표현을 사용하는 비중이 같은 건 아니다. 후자의 표현 그러니까, ‘틀린다’라는 표현을 훨씬 많이 사용한다. 사용해야 할 때나 그러지 않아야 할 때, 모두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르다’라고 해야 할 때, ‘틀린다’라고 한다.


다른 것을 틀렸다고 하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

다름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틀렸기 때문이다. 틀렸다는 건 잘못됐다는 의미이고, 그건 고쳐야 할 부분이다. 잘못돼서 고쳐야 하는 부분을 인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없다고 보는 게 맞겠다. 자기는 그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틀렸다는 말을 통해 내 마음 밭에는 고쳐야 하는 씨앗이 심어지게 된다. 다르다는 표현을 써야 할 때, 틀렸다고 표현하는 사람을 잘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하게 된다. 의견이 다른 것뿐인데 그걸 잘못된 것으로 인식해서 고치려 든다. 자기와 다른 의견을 틀린 의견이라 여기고 그렇게 대한다.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거다.


마음 자세를 만드는 건, 말뿐만이 아니다.

행동도 그렇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포크 대신, 젓가락을 사용하게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유를 물었는데, 답을 듣고 살짝 소름이 돋았다. 포크나 젓가락이나 음식을 집는 도구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포크는 음식을 어떻게 집는가? 찌른다. 찔러서 음식을 관통시켜야 집을 수 있다. 이 행동 자체가 공격성을 띤다고 한다. 찌르는 게 공격적인 동작이기 때문에, 마음에 공격적인 성향이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코 하는 말과 행동이 마음 밭을 가꾼다.

잘 가꿔진 마음 밭이라야 좋은 씨앗이 들어왔을 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마음 밭은 마음 자세이고, 좋은 씨앗은 외부 영향이다. 그리고 열매는 원하는 것을 얻는 결과라 볼 수 있다. 마음 밭이 잘 가꾸어져 있으면, 좋은 씨앗이 아니라도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고 해도 밭이 좋지 않으면, 오래 지나지 않아 썩어 없어지거나 시들 가능성이 크다. 열매를 맺는 데에는 씨앗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밭이라는 말이다. 당신의 마음 밭은 안녕한가? 그 마음 밭이 인정을 이끌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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