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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Nov 06. 2024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얻고 싶은가요?

땅에 발을  디딘 채로, 점프할 수는 없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땅에 발을 디딘 채로 그냥 있거나, 발로 땅을 힘차게 딛고 오르거나 말이죠. 양립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과 자주 마주합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거죠. 책을 읽을 것이냐, 드라마를 볼 것이냐의 선택. 운동할 것이냐, 그냥 쉴 것이냐의 선택. 배가 고픈 늦은 밤, 밥을 먹을 것이냐 참을 것이냐 선택 등등. 크고 작은 갈림길에서 선택한 결과로 하루하루가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돼도 그만 저렇게 돼도 그만인 건,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진 않습니다. 점심 메뉴로 뭘 할지 선택하는 것 같은 게 그렇죠. 밥을 먹든 면을 먹든, 고기를 먹든 해물을 먹든 큰 상관이 없습니다. 아! 특정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좀 다르겠네요. 변수는 언제 어느 때나 존재한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잘 알지만,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이 떠오르네요. 숙제는 해야 하는데, 꼭 보고 싶은 드라마가 있을 때였습니다. 과감하게(?) 둘 모두를 선택했을 때의 참담한 최후를 기억합니다. 숙제는 숙제대로 제대로 하지 못했고, 드라마 내용은 뒤죽박죽 뒤엉켜버렸습니다. 둘 다 선택했다가,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을 마주했을 때의 허무함이란. 다음에는 뭐든 하나만 선택하리라 다짐합니다. 실제로, 그랬을까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죠?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생겼을 때, 지난 다짐은 어느새 희미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의지를 불태웁니다. 지난번의 잘못을 돌이켜보고 피드백을 얻어, 이번만은 다르다고 스스로 설득한 거죠. 타인을 설득할 때는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은데, 나 자신을 설득할 때는 왜 그리 논리적이던지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아마도 이런 경험 한두 번은 있으셨을 텐데요. 이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난번보다는 조금은 낫다고 스스로 다독였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런 습관으로 힘겨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진화해서, ‘멀티 테스킹’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을 한 거죠. 하지만 많이 알려진 대로, 멀티 테스킹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사람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다는 건데요. 멀티 테스킹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번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환이 빠르다는 겁니다. 이 일에서 저 일로 넘어가는 전환이 빠른 거죠. 훈련의 결과가 아닐지 싶습니다. 우직하게 하나의 일에 집중하지 못한 것을 매우 안 좋은 습성으로 여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습성이 멀티 테스킹이라는 갑옷을 입고 능력이 되었으니, 세상 참, 모를 일입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끝까지 인내하고 묵묵하게 나아갈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겠지요?     


삶의 중요한 갈림길에서는 멀티 테스킹이 불가능합니다.

회사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을 때, 두 회사 모두 선택이 가능한가요? 아닙니다. 한 곳은 포기해야 합니다. 곧 수능이 다가오는데요. 수험생이나 가족들을 위해 기분 좋은 상상 하나 해보죠. 원하는 대학에 동시 합격이 되었다고 해보겠습니다. 두 학교 모두 등록이 가능한가요? 아니죠? 하나의 대학만 선택해야 합니다. 고심을 거듭해서 최종적으로 하나의 대학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런 선택을 하는 수험생이 많기를 바랍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수많은 선택의 결과입니다.

수험생 이야기를 했으니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해보죠. 학창 시절 공부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재능을 선택한 사람이 있습니다. 계열이 나뉘고 전공이 갈라집니다. 계열과 전공을 그대로 살려 직업과 직장을 선택하는 비율이 적다고는 하지만, 그 안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일들 또한 선택의 결과이니, 아예 무시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선택한 결과가 지금의 모습입니다. 만족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죠. 그래서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게 됩니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선택이 어렵습니다.

확신이 서지 않는 선택은 더욱 그렇습니다. 다시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선택은 더 그렇습니다. 선택하지 않은 길이 더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상상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말합니다. <초보 직장인을 위한 직장 생활 설명서>에도 언급했는데요. “최악의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내가 한 선택을 부정하는 것이다.”라고요. 이 말은 저 자신에게도 매번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말고 믿고 나아가라고 말이죠. 그 안에서 밝은 점을 찾고 내가 이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찾으려 노력합니다.    

  

강한 시련은, 더 큰 기회를 찾도록 도와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강한 시련이 없었다면, 기회를 찾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찾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만나게 됩니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만 가득 차 있으면, 기회를 얻을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불만에 가득 차서 그 이유를 헤아리려 노력하지 않으니까요. 자기 자신을 버리라는 말을 이렇게 해석해 봅니다.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모두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로요. 내가 알지 못했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가던 길만 가는데 새로운 기회를 만날 수 있을까요?

가지 않던 길을 가야 얻지 못한 기회를 얻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정말 뼈 때리는 말입니다. “하던 일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 그렇습니다. 같은 시도를 계속하면서 새로운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건, 정말 멍청한 짓입니다. 비워야 채워집니다. 고집과 아집을 내려놓아야,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어떤 새로운 집을 짓고 싶으신가요? 그러기 위해 무엇을 내려놓고,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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