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꼭꼭 숨어라, 결핍 보일라

은중과 상연 사이, 내가 숨겨둔 그림자에 대하여

by 해루아 healua

최근 내 마음의 가장 아픈 구석을 건드린 드라마가 있다.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이다. 화면 속 두 주인공, 은중과 상연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지만, 그들 사이를 흐르는 공기는 결코 평탄치 않았다.


은중은 아버지를 여의고 우유 배달을 하는 엄마를 도와 고단한 삶을 지탱한다. 반면 상연은 전학 첫날부터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선망의 대상이다. 외모, 성적, 집안 배경까지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상연의 곁에서 은중은 자꾸만 작아진다. 심지어 은중이 유일하게 마음을 열고 따르던 선생님마저 상연의 엄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은중이 느꼈을 그 아득한 박탈감을 나는 안다.


상연은 은중의 결핍을 먼저 알아봐 준 다정한 스승의 딸이었고, 은중이 짝사랑하던 '엄친아' 오빠를 둔 아이였다. 은중에게 상연은 부러움의 대상인 동시에, 내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을 쥐고 흔드는 얄미운 존재였다.

하지만 드라마는 반전을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빈곤은 물질의 부족이 아니라 외로움과 사랑받지 못한다는 절망감이다. 모든 것을 가진 줄 알았던 상연 또한 그 화려한 껍데기 안에서 지독한 사랑의 결핍을 앓고 있었고, 그늘진 얼굴로 위태롭게 서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들만을 응시하며 시기와 질투라는 이름의, 결코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을 쌓아 올린다.


은중과 상연이 서로의 벽 뒤로 숨었듯, 나를 숨바꼭질의 세계로 밀어 넣은 것은 중학교 시절의 잔인한 기억이었다. 학기 초, 나는 늘 사랑받는 아이였다. 누구와도 잘 어울렸고 밝은 에너지를 뿜어냈다. 하지만 그 빛이 누군가에게는 시기의 대상이었을까. 한 아이가 조작한 편지 한 장이 평온하던 나의 세계를 산산조각 냈다. 내가 밤에 친구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담은 편지를 썼다는 말도 안 되는 누명. 그 조작된 종이 쪼가리는 아이들 사이를 돌며 나를 순식간에 '괴물'로 만들었다.


가장 끔찍했던 것은 어른의 배신이었다. 나를 보호해 주어야 할 담임 선생님은 그 거짓말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가 되었다.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서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었고, 심지어 우리 엄마를 만나 "따님이 밤에 친구들에게 나쁜 편지를 썼다"는 비수를 꽂았다. 진실을 말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나는 교실이라는 광장 한복판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나를 지우기로 했다. 따돌림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을 피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가장 깊은 곳으로 숨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면 다시 배신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내 진심이 다시 조작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지배했다.


마음의 허기는 곧 신체의 허기로 이어졌다. 앞머리를 계속 뽑는 강박이 시작되었고, 스트레스를 씹어 삼키듯 음식에 조금씩 집착하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는 내가 알던 아이 대신 낯설게 살이 찐 아이가 서 있었다. 늘어난 체중은 또 다른 결핍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뚱뚱해진 몸을 가리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니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나의 긴 숨바꼭질은 시작되었다. 선생님이라는 권위가 휘두른 폭력과, 친구들의 차가운 시선을 피해 나는 스스로 만든 어두운 방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 방의 문을 잠근 채, 나는 수십 년을 살아냈다. 남들이 보기엔 밝고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한 것 같았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교실 구석에서 떨고 있는 중학생 소녀가 숨어 있었다.


나에게도 그런 벽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굵직하고 부끄러운 결핍들. 그것을 들키는 날엔 내 인생이 정말로 끝장날 것만 같아 더 깊은 곳에 나를 감추었다. 들키지 않기 위해 더 밝은 척 크게 웃었고, 우울과 슬픔을 감추려 날 선 자존심이라는 가시를 온몸에 세웠다. 숨바꼭질은 외로운 게임이다. 내가 꽁꽁 숨을수록 세상은 나를 찾지 못했고, 나 역시 세상으로 나가는 법을 잊어버렸다. 간혹 예리한 누군가가 내 결핍의 꼬리를 찾아낼 때면, 나는 인정하는 대신 상대를 증오하고 외면하며 더 먼 곳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도망친 자리에서 숨을 헐떡이며 하루를 '연명'했다.


드라마 속 은중의 명대사가 비수처럼 와닿았다.


"싫어하는 건 생각이 안 나서 좋은 거고, 미워하는 건 생각나서 힘든 거야."


그 문장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내 결핍을 그토록 미워했던 이유는 그것이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내 결핍이 탄로 날까 봐 전전긍긍했던 시간들, 그 미움이 결국 나 자신과 타인을 향한 거대한 벽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나는 이 긴 숨바꼭질을 끝내려 한다. 과거 71kg의 거구 뒤에 나를 가두고, 강박과 집착 뒤에 숨으며, 문턱 앞에서 망설이던 시간들과 작별하려 한다. 이 글은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했던 내 안의 상연과 은중을 꺼내어 놓는 기록이자, '결핍'이라는 아픈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과정이다.


누구보다 나 자신과 잘 지내고 싶은 당신에게, 과거의 상처에서 조금은 멀어져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고 싶은 당신에게 이 글을 바친다. 채울수록 공허해지는 마음의 진짜 이유를 찾고 있다면, 이제 나와 함께 숨어 있던 방의 문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


이제 그만 나와도 괜찮다. 결핍을 숨긴 채 연기하는 내가 아니라, 드러난 '진짜 나'로 살아도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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