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일랜드의 한이 서린 인상주의
꽃그림 명화 8, 존 래버리, 아일랜드의 한이 서린 인상주의
영국과 아일랜드는 애증의 역사이다. 영국의 앵글로색슨족과는 달리 캘트족으로 별도의 문화를 영위하던 아일랜드는 12세기 헨리 2세 이후 위대했던 튜더 가문의 헨리8세와 엘리자베스여왕까지 끝없이 영국의 침략에 시달렸다. 아일랜드는 20세기초 까지도 영국에 병합되어 있다가 겨우 독립하지만, 이후에도 구교와 신교로 나뉘어져 자기들끼리 또 반목하여 다시 내전을 벌이는 불행을 겪게 된다. 그 이후 북아일랜드는 분리되어 영국에 합병되게 된다.
존 래버리 (John Lavery, 1856–1941)는 초상화와 1차대전 전쟁화로 잘 알려진 아일랜드 화가이다. 아일랜드 벨파스트 북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스코틀랜드로 이주하여 1870년대 글래스고의 할데인 아카데미와 1880년대 초 파리의 줄리안 아카데미에 다녔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일랜드인의 긍지를 항상 지니고 있었다.
1889년에 결혼 한 래버리의 첫 번째 아내 캐슬린은 1891년에 딸 에일린이 태어난 직후 결핵으로 사망하였다. 그 이후 혼자 지내던 래버리는 1909년 아일랜드계 미국인이며 당시 유명한 미인이었던 헤이젤 마틴(1886-1935)과 재혼하여 딸 앨리스를 낳았다. 미모가 뛰어났던 헤이젤은 남편의 그림 중 400개가 넘는 그림에 묘사되어 있다. 헤이젤과 딸 앨리스와 에일린을 그린 그림들은 현재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다.
화가로 입지를 다져 가던 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종군 예술가로 차출되었다. 그러나 그는 건강이 안 좋아 영국에 남아 있었고 주로 보트, 비행기 및 비행선을 그렸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기사 작위를 받게 되었으며, 1921년에는 왕립 아카데미 회장에 선출되었다.
이 기간 동안 그와 그의 아내 헤이젤은 아일랜드 독립 전쟁과 아일랜드 내전에 은밀히 참여했다. 그들은 영국-아일랜드 조약으로 이어지는 협상 중에 런던의 자신의 집을 아일랜드 협상가들에게 협상장으로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일랜드의 독립 지도자 마이클 콜린스가 암살 된 후, 래버리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휴 레인 시립 갤러리에서 마이클 콜린스, 아일랜드 사랑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그 후 래버리는 자신의 작품들의 상당수를 Ulster Museum과 Hugh Lane Municipal Gallery에 기부하며 아일랜드를 죽을 때까지 사랑한 아일랜드 화가였다.
래버리의 그림을 보면 딱 인상주의 화풍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한 많은 아이리쉬라서 그의 그림에는 애잔함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여인들 초상화들도 화려하면서도 애잔함을 함께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