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슬로 호머 <전선에서 온 포로들>
[명화로 보는 19세기 역사이야기] 11, 남북전쟁과 링컨 (1861)
-- 윈슬로 호머 <전선에서 온 포로들>
1776년 미국 13개주가 독립선언을 하고 치열한 독립전쟁을 치뤄 마침내 178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루게 된다.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의 탄압을 피해서 1620년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이주한 이후, 미국은 드디어 세계최초로 왕족과 귀족의 1, 2계층이 없이, 평민과 하층민의 3, 4계층만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국가이며 대통령제를 제일 먼저 실시한 국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독립이후 미국 남부와 북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남부는 흑인들을 노예로 부려 면화를 재배하는 농업중심의 사회가 되었던 반면, 북부는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제조업이 발달했다. 남부와 북부...는 먹고 사는 방식도 달라서 자국 제조업을 보호해야 하는 북부는 관세를 높여 제조업을 보호하려 하였던 반면, 면화를 수출해야하는 남부는 낮은 관세를 주장했다.
그러나 북부와 남부의 가장 큰 입장 차이는 노예제도 문제였다. 생산력을 노예들에 의존하는 남부의 입장과 저임의 공장 노동자가 필요한 북부의 입장이 심각할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었고, 이는 남부 주들의 주의 권리(States’ Rights)와 맞물려 연방정부와 대립하게 되면서 남북전쟁은 일어나게 되었다.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 국가들은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에 필요한 노동력이 본국으로부터의 이민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었다. 식민지 운영에 필요한 노동력을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노예제도였고 아프리카 흑인들은 노예무역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대량 유입되기 이전에 이미 미국 땅에는 많은 수의 흑인 자유민이 있었고 이 자유민들은 흑인노예들과 공존했다.
그런데 노예무역을 시작하였던 영국도 노예제도의 폐해를 깨닫고 이미 1833년에 영국은 물론 영연방 국가 모두에서 노예제를 폐지하였기에 노예제도 폐지는 시대적 흐름이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1861년, 노예제도는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에 반대하는 남부의 일곱 개 주는 미국 연방에서 떨어져 나가 ‘남부연합’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된다.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미국정부는 남부를 공격하게 되면서 남북전쟁은 시작되었다.
군사력에서는 열세였지만 면화를 팔아 부유했고 바닷길도 잘 뚫려 있어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던 남부는, 불세출의 영웅 총사령관 리 장군의 뛰어난 전략으로 불리한 조건에서도 초반의 전투에서는 승리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북부가 해상을 봉쇄하고, 1863년 1월,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하자, 자유를 추구하는 유럽의 나라들도 북부를 지지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드디어 1863년 7월 남북전쟁 최대의 전투인 게티스버그 전투가 벌어진다. 수도 워싱턴에서 북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자그마한 마을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남군 약 7만5천, 북군 약 10만명이 나라의 명운을 놓고 벌인 일진일퇴의 공방전 끝에 새로 임명된 총사령관 그랜트장군이 이끄는 북군의 승리로 끝이 났고 사상자는 양측 합쳐 5만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전쟁은 2년을 더 끌었지만 이는 최후의 순간까지 명예를 지키려는 남부인들의 자존심 때문이었고, 1865년 3월 남부의 수도 리치먼드가 함락되자 리 장군이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써 4년여에 걸친 미국 내전은 끝나게 되었다.
전쟁의 포성은 멎었지만 북군 36만, 남군 26만명의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민간인 사상자 수도 수백만이 넘었다. 또한 노예제를 폐지하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링컨 대통령도 그해 4월 연극관람 도중 피격되어 사망하였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변호사가 된 이후, 노예해방 문제가 미국의 커다란 이슈가 된 이후 수많은 공개토론과 웅변을 통해 전국적 지지도를 얻어 대통령에 오른 링컨. 그와 참전 군인들의 고귀한 희생 덕에 노예제도는 폐지되었고 미국은 20세기 세계 최강의 제국이 되는 기초를 만들게 되었으며, 링컨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당시 남북전쟁에 종군화가였던 윈슬로 호머가 미술계에서 주목 받게 된 결정적인 작품이 바로 <전선에서 온 포로들>이다. 남북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북군에 포로로 잡혀서도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는 남군 포로들을 그리고 있는데, 이 작품은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미국의 전시작품으로 선정되었고, 이를 계기로 호머는 파리 여행길에 올라 근대 프랑스 화가들과 교류를 하게 되면서 미국 사실주의의 대가가 되었다.
* 남북전쟁 소재의 대표적인 영화 비비안 리 주연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39년작)
https://www.youtube.com/watch?v=WaShJRfLDzg
** 남북전쟁에서 링컨의 인간적 고뇌를 그린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영화 ‘링컨’ (2012년작)
https://www.youtube.com/watch?v=sXo16szj4vs
++ 윈슬로 호머 (Winslow Homer, 1836~1910) <전선에서 온 포로들 (Prisoners from the Front)>, (1866), Oil on canvas, 24 x 38 in,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