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두아르 마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명화로 보는 19세기 역사이야기] 12, 멕시코 독립혁명과 막시밀리안 황제 (1867)
-- 에두아르 마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이태리 북서부 크로아티아 국경인근 아드리아해 바닷가에는 트리에스테라는 도시에 아름다운 미라마레 성이 있다. 지금은 이태리 땅이지만 19세기에는 오스트라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영토로서 오스트라아-헝가리 제국의 황제였던 프란츠요제프1세의 동생인 막시밀리안1세가 직접 지어서 살았던 곳이었다. 막시밀리안은 나폴레옹의 아들이었던 나폴레옹2세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는데, 그의 어머니 소피가 나폴레옹2세와 가까운 관계였고 다른 형제 자매들과는 전혀 안닮고 오히려 나폴레옹2세와 많이 닮았기에 그런 소문이 있으나 확인할 길은 없다. 어쨌든 황제 계승 서열 1위였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트리...에스테 궁전에 살고 있던 막시밀리안의 운명은 그가 전혀 상관없는 나라였던 멕시코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벌어진다.
막시밀리안은 미술과 식물학에 관심을 둔 씩씩한 청년으로 자라 22세에 해군 총사령관 직을 맡았으며, 트리에스테와 폴라 항구 건설에도 참여했다. 1857년에는 롬바르디아-베네치아의 총독이 되었으며, 그해 7월에는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1세의 딸인 카를로타와 결혼하였다. 1859년 막시밀리안은 멕시코 왕정주의자들로부터 멕시코 황제 자리를 제안 받았지만 처음에는 거절하였다. 그러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멕시코시티를 점령하고, 멕시코 제국 성립을 위한 국민투표가 벌어진다는 소식을 듣자, 나폴레옹 3세의 권유에 따라 멕시코 황제의 자리를 받아들이게 된다. 당시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멕시코공화국의 베니토 후아레스 정부를 무너뜨리고 라틴아메리카에 진출하려는 프랑스의 야욕과 자유주의 정부를 축출해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려는 멕시코 보수주의자들의 야합에 의한 황제 등극이었다.
1864년 아내와 함께 베라크루스 항에 상륙한 막시밀리안은, 자신이 잘못된 시기와 장소에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프랑스군이 점령한 멕시코 전역에서는 처절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베니토 후아레스의 반격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는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고, 막시밀리안이 제안한 수상직도 거절했다. 멕시코엔 외국인이 세운 정부건 왕정이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명확한 표현이었다. 결국 1866년 프랑스군은 프러시아와의 전운이 감돌자 라틴아메리카에서 후퇴를 시작했고, 후아레스의 멕시코 공화국은 막시밀리안의 멕시코 제국을 더욱 압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막시밀리안은 망명을 거부했고, 그의 아내 카를로타는 파리, 비엔나, 로마 등 유럽 각지를 돌며 지원을 호소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1867년 5월 황제의 기병대가 적의 포위망을 뚫는 것이 실패하면서 그는 사로잡혔고, 법정에서 사형을 언도 받았다. 유럽의 수많은 군주들과 빅토르 위고 등 유명인들이 그의 사면을 요청했으나 멕시코 공화국의 베니토 후아레스는 외세를 배격한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그를 사형대에 서게 했다. 결국 프랑스 제국주의 욕망의 희생양인 막시밀리안은 멕시코에 온지 3년만에 그의 부하 장군 2명과 함께 총살당했다. 황후 카를로타는 남편의 죽음 이후 편집증과 망상증 증세를 보이다 오빠인 레오폴트 2세에 의해 벨기에 성에 감금되었으며, 1927년 87세에 사망하기까지 남편이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렸다고 한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을 그린 에두아르 마네는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구도로 그렸다. 그러나 고야의 낭만주의적인 감정개입과는 다르게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묘사했다. 그는 시대와 국가의 희생양이 된 막시밀리안 황제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과 표현을 최대한 절제하고 매우 객관적이고 간결하게 황제의 최후를 묘사하였다. 이 때문에 그림을 보는 관람객들은 더욱 더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위 그림은 마네가 같은 주제로 1년반 동안이나 그렸던 네 개의 그림 중 최종판이다. 그림 초본에서 멕시코인의 잔인함을 비난하기 위하여 그렸던 멕시코 군대를 두 번째 버전부터는 프랑스 제국주의를 비난하기 위해 프랑스 군대로 바꾸었다. 만약을 위해 결정적 한 방을 장전하고 있는 오른쪽의 냉정한 프랑스 중사는 나폴레옹 3세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고 한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버전은 네 조각으로 나뉘어져 완전하지 못한 상태로 전시되어 있다.
** 막시밀리안 황제의 금괴반출 사건을 어드벤쳐 서부영화로 만든 1954년 개리 쿠퍼, 버트 랭카스터 주연의 영화 ‘베라크루즈’
https://www.youtube.com/watch?v=WMdfaMcg2as&list=PL9XdN4OSuwnXF2Zaj5CLFfiG3h46EYw8U
++ 에두아르 마네(Eduard Manet, 1832~1883),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The Execution of Maximilian)>, (1868), Oil on Canvas, 305Cm x 252Cm, 바덴 국립미술관, 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