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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샘 Dec 16. 2018

[명화와 역사] 14,보불전쟁과 비스마르크 (1871)

-- 안톤 폰 베르너  <빌헬름 1세 대관식>

[명화로 보는 19세기 역사이야기] 14, 보불전쟁과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1871)


 19세기 들어와 세력을 팽창하고 있던 프로이센은 1861년 빌헬름 1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적극적으로 독일 통일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해 비스마르크를 수상으로 등용하고, 몰트케를 참모총장에 임명함으로써 더욱 체계적으로 통일 과업이 추진되었다. 비스마르크는 군비확장을 반대하는 의회에 맞서 ‘독일에 필요한 것은 쇠와 피’라고 연설하면서 철혈재상으로 불리게 되었다. 군대개혁을 완수하고 1864년 덴마크와의 전쟁과 1866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마인강 이북의 프로이센, 작센, 하노버, 쿠어헤센 등의 연방들과 조약을 체결하여 북독일 연방을 결성하여 프로이센의 절대적인 주도권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남부 ...독일 국가들인 바이에른, 바덴, 뷔르템베르크 등과도 비밀 공수동맹을 맺은 데 이어 관세 동맹을 통하여 북독일 연방에 결속시킬 수 있었다.

강력한 통일 독일의 출현을 걱정하던 프랑스도 이를 감지하고 나폴레옹 3세의 지휘아래 군사력을 증강하고자 하였으나 일반 국민들은 군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기에 프로이센에 비해 열세에 있었다. 그런데 프로이센 수상 비스마르크는 스페인 왕위계승문제에서의 프랑스와 프로이센간의 각서 문제를 조작하여 영국 언론에 흘렸고, 결국 분노한 나폴레옹 3세의 선전포고에 의해 결국 1870년 7월 보불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나 신무기인 강선소총으로 무장한 스당전투에서 프로이센의 포위공격으로 인해 나폴레옹 3세를 포함한 10만명의 포로를 잡는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소식을 들은 파리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파리 코뮌의 제3공화국이 선포되어 전쟁은 6개월을 더 끌다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프러시아군은 순식간에 파리를 점령하였던 것이다.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인 1871년 1월 18일, 프로이센 황제 빌헬름 1세는 베르사이유 궁전 거울방에서 스스로 독일 황제임을 선포하고, 이제 이름을 프로이센군에서 독일군으로 바꾼 그의 군대는 파리 시가에서 개선행진을 벌였다. 그 외에 독일은 알자스, 로렌 지방을 획득하였으며 엄청난 금액의 전쟁 보상금을 받았다. 이렇게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결과는 이후 다시 1차 세계대전에서의 프랑스의 보복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역사적인 대관식 장면은 당시 프로이센의 역사와 전쟁화를 주로 그렸던 안톤 폰 베르너가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이 즉위식 장면에서 원래 원본에서는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서 비스마르크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자, 빌헬름 1세가 비스마르크를 부각시켜 다시 그리라고 지시하여 새로 그려진 그림으로 비스마크르에게 하사한 그림이라고 한다. 황제도 비스마르크가 독일제국 수립의 일등 공신임을 잘 알고 그를 존중해 그린 그림이었던 것이다. 다시 그려진 그림에서 비스마르크는 흰색 유니폼을 입고 정 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그가 역사의 주인공임을 누구나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원래 원본은 전란중에 소실되었고 비스마르크에게 하사한 동 작품만이 그의 고향인 프리드릭스루 소재 그의 기념관에 잘 보존되어 있다.

 ** 당시 알자스, 로렌 지방의 독일 이양의 슬픈 이야기를 그린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
https://www.youtube.com/watch?v=dfbAhcxkzkI

 ++ 안톤 폰 베르너 (Anton von Werner, 1843~1915) <독일제국 선포 빌헬름 1세 황제 즉위식 (Die Proklamation des Deutschen Kaiserreiches)>, (1877), Oil on Canvas, Bismarck Museum, Germany

소실된 원본 그림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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