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츠 빈터할터 <엘리자베스 황후>
[명화로 보는 19세기 역사이야기] 13,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시씨 황후 (1867)
스위스의 작은 영주였던 합스부르크가문은 결혼과 전쟁 등으로 세력을 확대하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어 유럽을 좌우하는 왕가가 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등장 이후 신성로마제국이 유명무실해지자 해체를 선언하고 오스트라아제국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그러나 1866년 독일의 통일 방식을 놓고 크게 대립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벌어진 보오전쟁에서 패하며, 다민족 국가였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독일 연방에서 제외되고 만다. 이렇듯 오스트리아 제국이 전쟁에서 패배하자 제국 내의 여러 민족들이 독립을 시도하였고, 이에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제국내에 독일인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보유한 헝가리의 귀족들과 타협하여,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라는 역사상 초유의 이중 제국을 수립하게 된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오스트리아 황제가 헝가리의 국왕을 겸하고, 군사.외교.재정을 공동으로 하지만 각각 별개의 의회와 정부를 가지고 독립된 정치를 행하였다. 이때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는 헝가리 왕국의 수도로서 제국의 수도인 비엔나와 쌍둥이 도시로 불릴만큼 비엔나식의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헝가리는 피지배민족에서 제국의 동쪽을 책임지는 국가가 되어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등 많은 슬라브 민족들의 지배자가 되어 국가의 최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이중 제국은 1914년 제국의 황태자 부처가 세르비아의 사라예보를 방문하다 피살된 사건으로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독일과 함께 동맹국으로 싸우다 패전국이 되어 50년만에 해체되고 각 민족들이 제 각기 독립국가를 이루게 된다.
당시 오스트리아 프란츠 요제프1세의 황후는 흔히 시씨라고 불리는 엘리자베트 황후이다. 그녀는 1837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의 영주의 딸로 태어나서 16세 때에 그의 언니 헬레나가 그들의 이종사촌 오빠인 프란츠 요제프 1세와의 맞선자리에 동행하게 된다. 그러나 황제는 맞선 상대인 헬레나 대신 동생인 엘리자베트의 눈부신 미모에 반하게 된다. 결국 조신한 언니 헬레나를 며느리 삼으려던 황제의 어머니이자 이모인 소피의 반대를 이겨내고 1854년 빈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자유분방하고 감성적인 성격의 시씨는 시어머니의 구박과 황실의 엄격한 규율과 통제에 짓눌려 고통스러워한다. 그녀의 자녀들도 그녀의 시어머니에게 양육권이 뺏긴 상태에서 두 살배기 딸이 죽고, 믿었던 남편이 여배우와 바람이 나자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지게 된다. 이 스트레스를 그녀는 자신의 미모에 대한 극단적인 탐닉으로 풀어서 살인적인 다이어트를 이어간 결과, 그녀의 허리 사이즈는 20인치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다 그녀의 아들 황태자 루돌프가 마리아 베체라 남작부인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고통스러워하다 동반 자살하는데, 이 사건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시씨는 황제 곁을 떠나 헝가리에 머물며 유럽 각지를 여행하였다. 시씨는 오랫동안 억압받던 헝가리가 자신과 비슷하다하여 헝가리를 사랑하였고, 헝가리어를 배우며 자신의 모든 시녀들을 헝가리인으로 교체하고, 의상도 헝가리풍의 의상을 입었다고 한다. 헝가리인들도 그녀를 사랑하여 그녀의 이름을 딴 다리와 공원이 있을 정도이다. 또한 당시 제국의 외무장관이자 헝가리 총리인 언드라시 백작과의 염문설도 있었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1898년 스위스 제네바의 레만호를 여행하던 시씨는 배에 오르던 중에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에게 칼에 찔렸는데, 어이없게도 한동안 자신이 찔린 줄도 몰랐다고 한다. 이유는 너무 꽉 조이는 검은색의 코르셋 때문에 피가 계속 흘러 나와도 통증을 못느끼고 티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황후는 자신이 무슨 이유로 죽는지도 모르고 죽게 되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도 얼마 못가 1차대전의 패전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하지만 아직도 비엔나 시내 곳곳에서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 독일 출신의 프란츠 사버 빈터할터는, 오스트리아는 물론 영국,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스위스, 러시아 등 유럽 각국의 ‘왕족 전문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화가였다. 그러나 그의 수많은 왕족 초상화 중에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화와 함께 시씨 황후의 초상화가 가장 명작으로 꼽힌다.
** 뮤지컬 ‘엘리자벳’의 각국의 여주인공들 (한국 대표 옥주현)
https://www.youtube.com/watch?v=pEEi5D13Y7I
++ 프란츠 사버 빈터할터 (Franz Xaver Winterhalter, 1805~1873) <엘리자베트 황후 (Empress Elisabeth)> (1865), Oil On Canvas, 시씨박물관, 비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