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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샘 Dec 21. 2018

[명화와 역사] 15. 이탈리아 통일과 가리발디

- 실베스트로 레가 <가리발디의 초상>

[명화로 보는 19세기 역사이야기] 15, 이탈리아 통일운동과 가리발디 (1870)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이후 이탈리아 반도는 주인 없는 땅이 되어 동고트족, 롬바르드족, 프랑크 왕국 등의 지배를 거쳐 962년 신성로마제국의 통치아래 들어갔다. 그러나 11세기 이후부터는 황제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지방 영주가 통치하는 도시국가들이 출현하였고 또한 교황에게 권력이 집중되었다. 이후 십자군 원정이후 교황의 권력은 약화되고,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하면서 피렌체나 베네치아 같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 국가들이 두각을 나타내게 되면서 금융, 학문, 예술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르네상스로 다시 한번 유럽의 중심지로 꽃피우게 된다.

그러나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의해 동방과의 교역이 가로막히고, 지리상의 발견으로 새...로운 해양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다시 쇠퇴하기 시작하고, 이탈리아 반도는 새롭게 떠오른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의 강대국들이 세력을 다투는 앞마당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중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에서 시작한 자유와 평등사상이 전파되면서 이탈리아에서도 외세의 지배를 물리치고 자유민주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1831년 이탈리아의 지도자 마치니는 청년 이탈리아당을 만들어 통일을 위한 운동을 펼쳤지만, 그 당시로서는 너무 급진적이어서 실패하고 만다. 1859년 프랑스와 연합한 사르데냐 군은 솔페리노 전투에서 승리하며 오스트리아군을 물리치면서 북부 이탈리아 땅을 회복하였고, 1859년 가을에는 파르마, 모데나, 토스카나와 교황령 로마냐 지방에서 혁명지도자들이 모여 사르데냐와의 병합을 결의하여 통일이 시작되었다. 1860년 5월에는 붉은 셔츠의 사나이 쥬세페 가리발디가 이끄는 붉은 셔츠군 1,000여명이 시칠리아를 진격하여 승리하였고, 이어 나폴리에도 입성하였다. 

이후 가리발디는 자신이 점령한 지역을 모두 사르데냐 국왕에게 헌납하였고, 이로써 이탈리아는 로마와 베네치아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 통일되어, 1861년 3월 17일 이탈리아 왕국의 탄생을 선포하였고, 초대 국왕으로는 사르데냐 왕국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추대되었다. 1866년에는 가리발디는 이탈리아군을 이끌고 베네치아의 오스트리아군을 몰아내고, 1870년 교황령도 점령하여 거의 완전한 이탈리아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807년 이탈리아 니스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가리발디는 외국 침략자에 대항하여 마치니의 청년 이탈리아당의 혁명운동에 가담했다가 프랑스로 피신한 뒤 남미로 건너갔다. 남미에서 13년을 보낸 그는 우루과이 독립전쟁에 참가해 공을 세웠으며, 1842년에는 우루과이 해군의 지휘를 맡아 아르헨티나의 독재자와 맞선 해방전쟁에서 공을 세워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1848년 이탈리아 해방전쟁이 일어나자 조국으로 귀국하여 비밀리에 의용군을 조직, 시칠리아 섬을 다스리던 프랑스계 지배자를 몰아내는 작전을 하면서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시작했다. 그의 붉은 셔츠가 상징하듯 순수 열정으로 위기에 처한 조국 이탈리아를 구해내고자 했으며, 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목이 터져라 단결을 호소하고 헌신적으로 전투에 앞장섰다. 통일 이후에는 어떠한 댓가도 바라지 않고 조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발표를 남긴 채 고향으로 낙향하여 사회사업을 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가리발디의 초상화를 그린 실베스트로 레가는 마키아이올리파의 화가이다. 마키아이올리는1850~60년대 이탈리아 피렌테에서 활약한 젊은 화가 그룹으로 그들은 당대의 사건 묘사에 집중했으며, 형식이나 격식에 얽메이는 회화양식에 반대하는 유파로 사실주의 화풍을 유지했으며, 일상적인 주변의 광경과 가정내의 정다운 모습, 따뜻한 일상등을 주제로 가정적인 친밀감이 넘치는 그림을 주로 그려 앵티미즘(Intimism)으로 불리기도 한다.

 ** 이태리 작곡가 베르디가 1842년 작곡한 ‘나부코’중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성경 속의 히브리인들이 바빌로니아에 노예로 살면서 간절한 소망을 노래한 곡인데, 당시 오스트리아의 압제하에 있던 이탈리아인들의 마음에 감정이입되면서 열광적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따라 불렀고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노래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제2의 국가처럼 여겨진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qWWpXfO7ts

 ++ 실베스트로 레가 (Silvestro Lega, 1826~1895) <가리발디의 초상 (Ritratto di Giuseppe Garibaldi)>, (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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