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콜리어 <찰스 다윈의 초상>
[명화로 보는 19세기 역사이야기] 17, 찰스 다윈과 진화론
-- 존 콜리어 <찰스 다윈의 초상>
뉴턴의 역학과 더불어 자연관과 세계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과학자는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이다. 1809년 영국에서 태어난 다윈은 16세에 의사인 아버지의 가업을 계승하기 위하여 에딘버러 의대에 진학하였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2년후 자퇴하였다. 이듬해 다시 신학 공부를 위하여 캠브리지 대학에 갔으나 전공보다는 식물학에 더 관심을 가졌고, 식물학 교수였던 핸슬로와 친교를 맺고 그 분야의 지도를 받았다. 1831년 대학 졸업후 핸슬로 교수의 추천으로 남아메리카의 신항로 개척을 위해 출항하는 해군측량선 비글호에 자연과학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19세기 당시에 제국주의의 팽창정책을 꿈꾸는 영국에서는 해외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에 이런 탐험가들과 탐험선들을 많이 보냈었다. 이런 탐험선들이 하는 일은 현지의 세세한 풍물을 기술하고 정확한 지도와 해도를 작성하여, 해외진출을 위한 기초자료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청년 다윈은 26미터에 불과한 작은 배에서 배멀미와 온갖 풍토병으로 고생하며 5년에 걸친 남아메리카와 남태평양의 여러 섬, 그리고 호주 등지를 탐사하고 1836년 귀국하였다.
다윈은 그중에서도 특히 갈라파고스제도에 널리 서식하는 동식물과 지질 등을 조사하였다.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가장 중요한 관찰로 지역에 따라서 같은 종들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을 본 것이다. 그는 겨우 수십 마일 떨어진 여러 섬들에서 다른 종류의 동물상과 식물상이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 하였다. 특히 핀치새는 섬에 따라 그 모양이 조금씩 달랐다는 점인데, 이러한 관찰로 다윈은 진화가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귀국한 다윈은 부모와 후에 그의 아내가 될 사촌 엠마로부터 재정적 후원을 얻어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한다. 진화론의 개념은 그가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고 당시에 그런 주장이 이미 있었지만 이론적 뒷받침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다윈은 맬서스의 ‘인구론’(1798)을 읽으며 생존 경쟁의 개념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의 ‘자연선택설’ 이론을 체계화 시킨다. 자연선택설은 생물의 어떤 종의 개체 간에 변이가 생겼을 경우, 그 생물이 생존에 가장 적합한 것만이 살아남고 부적합한 것은 도태된다는 것이고, 이것이 자연의 힘으로 선택이 반복되는 결과 진화가 생긴다고 하는 설이다. 이러한 연구를 정리하여 1859년 ‘종의 기원’을 발간하였고 이는 초판 1,250부가 발매 당일에 매진될 정도로 학계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겼다.
‘종의 기원’이 발간된 이후 진화론자와 창조론자 사이에는 엄청난 대립이 있었지만, 1870년대 이후로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기독교 신자여부와 상관 없이 진화론을 정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진화론과 같은 외적 증거를 다루는 과학이 다루는 영역은, 마음이나 양심 과 같은 내적 증거를 다루는 종교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화론에 대한 비판은 과학계 내에서 일어났는데, 화석상의 증거를 볼 때 종과 종 사이의 중간적인 형태가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었다. 또한 우연히 획득한 형질이 어떻게 유전되는가 하는 비판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후대 학자들에 의해 이론상 보충이 되어왔다. 후에 다윈의 진화론은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나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이론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2009년 영국 BBC에서 제작한 다윈의 생애를 그린 영화 ‘크리에이션(Creation)’은 안타깝게도 흥행에 참패했는데, 그 원인은 세계 최대 영화 시장인 미국에서 영화 배급을 거부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미국에 진화론을 믿는 사람보다 창조론을 믿는 사람이 많기때문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런 이유가 아니라 다윈이 우생학의 아버지라고 잘 못 알려졌고, 그 이론이 인종우생학으로 번창했던 히틀러의 독일에서 ‘홀로코스트’ 같은 끔찍한 행위를 하게한 단초를 제공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인류의 세계관의 변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지만, 아직도 종교와 역사 양쪽 모두에서 편견과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찰스 다윈의 초상화>를 그린 영국 빅토리아시대의 유명한 초상화가 존 콜리어의 작품으로 1881년 원본은 린네학회에 전시되어 있고 이 그림은 1883년에 다시 그린 그림이라 한다. 콜리어는 인물과 주위 배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을 보여주는 그림을 주로 그렸는데 그의 대표작은 그 유명한 <레이디 고다이바>이다.
** 영화 ‘크리에이션’의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0aKdAekTVvU
++ 존 콜리어 (John Collier, 1850~1934) <찰스 다윈의 초상 (Charles Darwin)>, (1883), 126x97cm, oil on canvas,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