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에버렛 밀레이 <디즈레일리 초상>
[명화와 역사] 18, 빅토리아 인도 황제 즉위와 디즈레일리 (1876)
18세기 중엽 무굴 제국의 통일적 지배가 붕괴된 이후 인도는 여러 개의 독립된 나라들로 형성되어 있었다. 이 틈을 타고 서구의 제국주의 세력들은 인도 침략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영국과 프랑스가 가장 치열하게 주도권 다툼을 벌였는데, 해상은 물론 육상에서도 서로의 거점을 습격하며 세 차례에 걸친 전쟁을 벌였다. 인도의 각 나라들은 영국 아니면 프랑스와 각기 손잡고 그들의 원조와 지지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인도에 이어 벵골까지 접수한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앞세워 인도에서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동인도 회사에 고용되어 있던 영국인들은 각자가 회사의 자유 통관권을 악용해서 자신들의 무역 사업을 했으며, 더 나아가 벵골 내 사업(내륙 무역)까지 무관세 무역을 하게 되면서 토착상권을 붕괴시키고 인도 경제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에 반발한 지방 태수들을 중심으로 ...일어나 1764년의 반란이 진압되면서 인도의 태수들은 허수아비로 전락하게 되었고, 벵골과 비하르 지방은 동인도 회사의 식민지가 되어 버렸다. 1784년에는 피트 인도법이 제정되어 인도의 통치기관으로 감독국이 신설되면서, 동인도 회사를 통한 위장을 걷어치우고 이중 통치가 청산되면서 실질적인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영국군 내에 용병으로 근무하던 세포이들이 1857년 반란을 일으켰다. 그 이유는 영국이 세포이를 모독하고, 카스트 및 신앙을 빼앗아 기독교도로 만들려고 한다는 이유였다. 저항의 도화선은 화약과 탄알을 따로 장전하는 구식소총 대신 지급된 화약과 탄알 일체형 신형 소총이었다. 소나 돼지기름을 묻힌 탄약포를 입으로 물어 뜯어 탄약을 장전하는 방식이 자신들의 종교적 금기를 깨트리게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 반란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져서 농민과 시민 등 일반 대중들도 참여하게 되면서, 영국의 인도 지배는 붕괴에 이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반란군은 통일된 구심점이 없었고 전략도 없었으며, 자기 보존적 배영 감정 외에는 그들을 결속시킬만한 유대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1858년 여름에 접어들어 본국에서 지원군이 도착하면서 순식간에 반란군은 궤멸되었다. 영국군은 델리로 진군하여, 무굴황제를 폐위시키면서 이름 뿐이던 무굴제국도 역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후 1년여에 결쳐 각 지역의 반란군들을 완전 진압하고 세포이 독립전쟁은 막을 내리게 된다.
이 반란 소식은 영국 본국을 당황시켰고, 1858년에 ‘인도 통치 개선법’이 제정되며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 기업 동인도 회사도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또 1876년에는 국왕 칭호법이 개정되어 영국 국왕인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 황제의 칭호를 얻으며 겸직하게 되었다. 또한 형식상으로 ‘인도 제국’의 모습이 갖추어지게 된다.
이러한 인도황제의 탄생 뒤에는 당시의 수상이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1804~81)이라는 인물이 있다. 유대인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 광산회사에 투자했다가 파산해 채무자 신세도 경험하였고, 소설도 발표한 작가였다. 그러나 정치에 입문하기로 하여 다섯 번의 도전 끝에 보수당의원으로 의회에 진출하였고, 같은 당 소속의원의 미망인으로 많은 유산을 물려받고 또 자신보다 열두살 연상인 매리 앤 루이스라는 여성과 결혼하였다. 그는 평생의 라이벌인 글래드스턴과 서로 경쟁하면서 번갈아 수상을 하게 되었고, 그의 두 번째 수상 재임기에 수에즈운하 주식 매입과 빅토리아 여왕의 인도 황제 즉위 등을 추진하였다. 빅토리아 여왕과 디즈레일리 둘 사이의 공통분모인 ‘동방 정책’과 ‘제국 건설’의 야욕이 찰떡 호흡을 과시하면서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루었다. 당시 인도를 포함한 대영제국의 인구는 10억명에 달하고 ‘해가지지 않는 나라’를 이루게 된다. 그는 수상 재임시절 국회 답변을 할 때는 항상 통계 수치를 들면서 답변했다고 하는데, 그가 남긴 유명한 어록은 아이러니 하기만 하다.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그럴 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이다“
디즈레일리와 친했던 라파엘전파 화가 밀레이가 그린 그의 초상화는 그의 사망 직전에 그린 그림으로서 여왕으로부터 그의 특유의 지적이고 온화한 표정이 잘 표현되었다고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 빅토리아 여왕의 말년 그녀의 인도인 시종과의 특별한 우정을 다룬 영화 ‘빅토리아와 압둘’ (2017)
https://www.youtube.com/watch?v=uOw1GMn65rE
++ 존 에버렛 밀레이 (Sir John Everett Millais, 1829 ~ 1896) <디즈레일리 초상 (Benjamin Disraeli, Earl of Beaconsfield), (1881),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