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샘 Dec 27. 2018

[명화와 역사] 17, 마르크스와 엥겔스

[명화로 보는 역사이야기] 17, 마르크스와 엥겔스

-- 세실리아 비쿠냐 <칼 마르크스>


20세기는 가히 마르크스의 시대였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칼 마르크스는 긍정적 의미이던 부정적 의미이던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비록 지금은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념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났지만, 그의 공산주의 이론은 20세기 지구의 절반을 차지하여 자본주의와 냉전의 시대를 이끌었었다. 그러나 그의 치열한 노력이 없었다면, 아직도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적확한 지적과 비판은 불가능하였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창시한 마르크스에 대하여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칼 마르크스는 지금부터 꼭 200년 전인 1818년 독일 라인주의 트리어(Trier)시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트리어는 당시 독일에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한 곳이었으며, 프랑스 혁명군에 의해 진보적인 이념이 널리 퍼져 있던 곳이었다. 1835년 본대학에 입학하여 그리스.로마 신화와 미술사 등을 공부하던 마르크스는 1년후에는 베를린 대학 법학부로 전학하여 법학, 역사학, 철학을 공부하였다. 특히 여기에서 그는 헤겔의 유물론 철학에 경도되었다. 그러나 그는 헤겔의 관념철학에 만족하지 않고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접목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대학 졸업후 ‘라인신문’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반정부적인 기사를 쓰다가 편집장에서도 쫓겨나고 신문도 폐간되고 말았다. 1843년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한 후 아내와 함께 파리로 이주하여, 15개월 가량 머물면서 프랑스혁명 연구에 몰두하였고, 영국의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자들의 책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의 영혼의 동반자 프리드리히 엥겔스와의 운명적 교류를 시작하게 되었다. 마르크스보다 두 살 아래인 엥겔스는 독일의 방직공장 사장의 아들로 부유하게 테어나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반항적 성향이었고, 22살되던 해에 아버지의 회사의 영국 법인을 경영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여기에서 그는 영국의 공상적 사회주의와 진보적 노동운동인 차티스트 운동을 접하게 된다.


조국 프로이센의 압력에 의해 브뤼셀로 추방된 마르크스는 결국 프로이센 국적을 포기하고 1848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여기에서 무직으로 가족과 같이 살아야 했기에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던 마르크스는 엥겔스의 재정지원을 받아 근근히 살면서 그와 공동으로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고 선언하였다.


그 이후 런던에서 ‘신라인 신문’을 발행하기도 하고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연구와 저술 작업도 하면서 유물론적 역사관과 계급투쟁이론을 더욱 심화하여갔다. 그리고 드디어 1867년 ‘자본론 (das Kapital)’ 제1권을 출간하게 된다. 이 책에서 자본주의 경제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밝힘과 동시에 자본주의가 내적 모순에 의해서 붕괴될 수 밖에 없음을 주장하였다. ‘자본론’ 2권과 3권은 그의 사후 엥겔스에 의해 출판되었다. 그리고 1871년에는 프랑스에서 노동자들이 세웠다 실패한 ‘파리꼬뮌’을 지지하였다. 그때 그는 이 최초의 사회주의 경험이 결국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로 가게 될 것임을 예언하였다. 그러나 그는 1883년 폐렴에 걸려 국적도 없는 상태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서 있었던 그의 장례식에는 그의 평생의 동지 엥겔스를 포함해 11명의 조객만 참석했다고 한다.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의 비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철학자들은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했다. 문제는 해석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냐이다."


칠레의 시인이자 비쥬얼 아티스트인 세실리아 비쿠냐는 1972년부터 런던에 3년 동안 머물 때 현대의 혁명 영웅들을 연작으로 그렸는데, 그 첫 번째 작품으로 칼 마르크스를 그렸다. 그녀는 마르크스를 드높이기 위해 에로티시즘, 시학, 블루스, 재즈, 락, 여성과 동성애 등으로부터의 혁명을 배경에 그려 넣었다.


 ** 젊은 시절 마르크스의 활동을 그린 영화 ‘청년 마르크스’ (2017)
https://www.youtube.com/watch?v=wuju_RaZ_D0


 ++ 세실리아 비쿠냐 (Cecilia Vicuña, 1948~ ) <칼 마르크스 (Karl Marx)> (1972), Oil on canvas,  36.25 x 28.25 inches, Guggenheim Museum, New York.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의 마르크스 묘지



영화 '청년 마르크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