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놀쓴 Oct 24. 2023

이상은 먼 달나라에 있고, 현실은 바로 옆에 있지

  아주 오랫동안 한 가지 직업만 꿈꾸고 이루어내고 그 직업을 오랫동안 만족하면서 하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 반대의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본인이 현재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뒤로한 채 돈만 벌기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직업을 갖게 되었지만 막상 해보니 적성에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 일하러 가는 게 지옥 같아도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 직업이라 쉽사리 그만두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이상적인 직업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평균 이상 벌 수 있고, 보람과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직업일 것이다. 이 3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긴 힘들지만 본인의 가치관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한 가지만 맞아도 어느 정도 일을 지속해 나갈 동력이 된다. 그런데 이 한 가지가 맞는 직업을 갖는 것조차도 힘들다.


  나의 경우 우선순위는 '보람과 성취를 느낄 수 있는지'다. 물론 돈도 중요하다. 다만 중위소득 정도의 허들을 넘고 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라든지 높은 연봉이라든지 상관없이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 외에는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일이 좋고, 똑같은 걸 반복하는 업무를 싫어하고, 스스로 뭔가 새로운 걸 창작해 내거나 만드는 일이 잘 맞는 것 같다. 그런 나에게 현재 하고 있는 노무사라는 직업은 맞지도 않고 하기도 싫다. 흔히 사짜 들어가는 전문직은 고객들의 문제를 전문지식을 통해 해결해 주어야 하는 '서비스직'이다. 그리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 혼자서 에너지 충전하는 시간이 길게 필요한 나에게 이런 서비스직은 고도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누군가는 부러워하는 전문직이라는 노무사를 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차고 넘친다.


  '나 노무사 안 할 거야!' 하다가도, '그래도 나름 전문직인데 이걸 써먹어야 하지 않나? 일단 냅다 노무법인을 차려볼까?!'하기도 한다. 현실의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가 사무실도 알아보고 노무법인 개업 절차를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네이버 지도로 지금 회사 근처에 '노무법인'을 검색해 보니 근방 3km 이내에 노무법인이 수십 개다. 저렇게 많은 노무법인과 노무사들이 있고 대부분 비슷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할 텐데, 나 하나 더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나? 나보다 훨씬 더 실력 있는 노무사들도 많은데 말이지. 이러면서 또 금세 노무법인 차려볼까 하는 생각이 쏙 들어간다. 노무법인 개업하려면 해야 할 일들과 개업 후 해야 하는 일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걸 보면 어지간히 하기 싫은 듯하다.



  이상은 돈을 좀 못 벌어도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부은 전문자격증과 월급의 안정감을 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모양새는 애매하게 현실과 타협한 모습이라고 해두어야겠다. 지금은 현실에 있지만, 달나라로 가고자 하는 꿈은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이렇게 현실에 타협해 있고 싶지 않은데, 잠깐만 타협해 있는 거라고 위안 중인데, 이러다 떠나지 못하고 영영 현실에 주저앉아 버릴까 봐 두렵기도 하다.


  마음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나의 이상은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다. 언젠가는 제풀에 지쳐 지금껏 살아오며 했던 것처럼 또 현실에 타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 안 깊숙이서 나를 꾸짖는 목소리가 가끔 들린다. 자꾸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겠다고, 이것저것 해보겠다고 설치고 다니지 말라고, 네까짓 게 뭐 그리 잘났냐고.. 그럴 땐 문득 의기소침해진다. 그나마 머리가 나빠서 푹 자고 일어나면 다 까먹고 개운해져서 다행이다.




  현실과 타협해도 괜찮다. 비겁한 것이 아니다. 원래 인생의 정답 따윈 없으니. 인생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여러 가지 '방향'이 있고 또 '시기'도 있으니. 좀 다른 면에서 보면 '현실과의 타협'은 본인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 현실과 타협하면 이상을 좇았을 때 예상되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피할 수 있고, 나 자신이 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너무 힘들어지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은 저 먼 달나라에 있고, 현실은 바로 옆에 떡하니 있다. 가는 길에 위험요소가 많고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이상으로 떠나는 것보다, 바로 옆에 가까이 있고 더 편하고 안정적이게 보이는 현실에 안착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다. 누구나 다 현실에 몇 번씩 타협하면서 살아간다. 현실과 타협한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현실을 뿌리치고 이상을 향해 무모하게 달려 나가는 것도 나쁘거나 잘못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 본인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대가를 감당하며 살아갈 뿐이다.


  현실과 타협해서 겉으로는 안정적인 것처럼 살아도 인생은 갑자기 "옜다~받아라~" 하면서 내가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돌덩이를 던져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런 큰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현실과의 타협은 이상보다 훨씬 편한 선택지처럼 보인다. 당장은 별문제 없어 보이니까. 다만 지금은 비록 현실에 타협하고 있다 하더라도, 먼 미래에는 '혹시?!' 하는 생각으로 이상을 꿈꾸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이 현실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비록 지금은 현실에 발 담그고 있을지언정, 마음은 늘 달나라를 향해 보이지 않게 열심히 물장구를 치는 중이다. 안전해 보이는 현실이 무너지기 전에 내가 먼저 벽을 깨고 나올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한번 해볼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