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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숙 Dec 20. 2021

괜찮아, 못해도 괜찮아



나는 못 해..



시무룩한 표정으로 A4 한 장을 들고 오는 어린 조카의 모습이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입꼬리를 한없이 내려뜨리고는 1부터 10까지 적어달라고 하는데, 조카가 따라서 그려보길 바라며 일부러 점선으로 숫자를 하나하나 적어주었다.

조카는 내가 그린 숫자의 모습이 마음에 썩 내켜 하지 않는 눈치다. 1부터 4까지는 수월하게 따라 그려보았으나 5에서 막히는 듯 보였다. 망설이는 표정이 역력했다. 귀여운 울 미노.

결국 '5는 못 그려'라며 잡고 있던 펜을 내려놓으려 했다. 어린아이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분별력이 생겨났나 보다. 스스로 잘 해내지 못할 거라고 인지하는 능력. 그 인지력으로 인해 '잘 하지 못할 바에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으려 하는 마음'이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해 조금은 찡하면서도 더 마음이 갔다.



- 괜찮아, 못 해도 괜찮아.


조카는 물끄러미 숫자가 적힌 종이를 보며 잠깐 망설인 뒤에 1에서 4를 쓸 때의 시간보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점선의 5를 꼼꼼하게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다 그리고 나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종이를 들고 내게로 왔다.


- 고모, 이거 바 나 5(오) 그려처!

- 오~ 우리 미노가 노력을 많이 했구나.

- 응, 나 노력했처!


노력했음에 대해서 인정받는 조카의 표정엔 환한 웃음꽃이 피었고, 나도 덩달아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칭찬받고 싶은 나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칭찬받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조금 더 유별난 게 아니었다.

사실 조카가 그린 5는 펜을 꾹꾹 눌러서 천천히 쓴 만큼 다른 숫자들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그렸다. 그럼에도 '잘한다'라는 말을 되도록이면 하지 않기로 했다. 결과에 대한 칭찬보다는 얼마큼 시간과 정성을 들였는지, 노력했는지를 알아주고 칭찬해 주기로 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다 잘 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저 매일 아침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며 확신하고 확언한다. 실패를 한다 해도 내가 노력했던 일들은 나중에 다른 무언가로 꼭 보상을 받게 되는 날이 온다. 그게 셀프 보상이든, 사회가 주는 보상이든.

나는 우리 미노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과정을 즐기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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