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
맛 칼럼니스트랍시고, 여기저기 다닌다. 음식점 종사자들도 많이 만난다. 의외로 ‘좋은 쌀’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들은 절박하다. 좋은 쌀,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는 쌀을 찾는다. 밥에 대해서 손님들의 불평이 많다고 하소연한다. 양이 아니라 질이 문제다. ‘밥 많이’에서 ‘맛있는 밥’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흔히 ‘밥심’이라고 표현한다. 밥이 하늘이다. “언제 밥 한번 먹자”고 말한다. 아무리 반찬이 좋아도 식사는 여전히 ‘밥상’이다. 고기 상도 생선 상도 아니다. 밥상의 주인은 밥이다. 밥이 푸슬푸슬하면 대뜸 불평하는 이들이 많다. 아무리 호화로운 밥상이라도 밥이 수준 이하면 “밥이 틀렸다”고 말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밥맛이 좋아야 한다. 식은 밥, 눌은 밥은 별로다. “에이, 방이 왜 이래!”라고 말한다. 가장 맛있는 밥? 말할 것도 없이 갓 지은 밥이다. 갓 지어서 막 퍼낸 밥은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문제는 이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식당들은 점심시간 전 밥을 미리 지어둔다. 바쁜 식사 시간에 바로 밥을 지어, 바로 퍼서 손님상에 올리는 경우는 드물다. 작은 가게에서는 가능하지만, 좌석이 50석만 되면 모든 손님들에게 갓 지은 밥을 내놓기는 힘들다. 직장인이 많은 오피스 타운에서는 수십 그릇을 바로 퍼내기는 불가능하다. 미리 밥을 퍼서 담아두는 수밖에 없다. 점심시간에 미리 지어둔 밥이 저녁 시간까지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밥은 떡이 된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한 끼 분량의 밥만 지은 다음, 한 끼에 먹어 치우면 되지만 언젠가는 남는 밥이 있고, 누군가는 식은 밥을 먹어야 한다. 보온밥통이 있지만, 긴 시간 보관한 밥은 맛이 떨어진다.
소비자들이 묻는 것은 간단하다. 어떤 쌀이 맛있느냐는 것이다. 시판하는 어떤 브랜드의 쌀이 제일 좋은지 묻는다. ‘대략 난감’이다. 브랜드가 쌀의 품질, 밥맛을 정확히 알려주지는 않는다. 일반인들이 가장 쉽게 좋은 쌀을 고르는 요령은 의외로 간단하다. 브랜드가 아니다. 단일미만 찾아도 기본적으로 좋은 쌀, 좋은 밥맛을 기대할 수 있다.
쌀을 생산하는 구조는 의외로 복잡하다.
혼합미는 여러 종류의 쌀을 섞은 것이다.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지만, 브랜드를 보면 브랜드만 보일 뿐 정작 쌀은 보이지 않는다. 단일미는 한 종류의 쌀을 의미한다. 한 지역 쌀이다. 한 지역 같은 논에서 생산된 쌀을 의미한다. 혼합미는 여러 종류의 쌀을 섞었다. 어떤 쌀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두 종류 이상, 서너 종류의 쌀을 섞는다. 물론 전문가들이 진행한다.
쌀 포장지 앞면이나 뒷면에는 혼합미 표시나 단일품종, 단일 생산지를 드러내는 표기가 있다. 단일미인지 혼합미인지만 구별만 해도 좋은 쌀을 찾을 수 있다. 단일미의 가격이 아무래도 혼합미보다는 상당히 비싸다.
쌀의 껍질을 벗기면 왕겨가 나온다. 쌀은 현미(玄米)가 된다. 현미에서 등겨 부분을 벗겨내면 우리가 만나는 흰쌀이 된다. 등겨는 미강(米糠)이라고 표시한다. 미강유(米糠油)는 등겨로 만든 기름이다.
오래전에는 정미소에서 벼가 현미가 되고, 등겨를 덜어내고 흰쌀이 되는 과정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낭만적인 아날로그 시절의 이야기다. 정미소에서 하얀 쌀이 쏟아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전 과정이 자동화되었다. 흔히 미곡종합처리장(RPC: Rice Processing Complex)이라고 부르는 공정이다. 벼가 들어가는 과정부터 흰쌀이 쏟아지는 과정까지 모두 자동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흰쌀이 되고 포대에 담는 과정을 볼 수가 없다. 깨진 쌀을 골라내고, 색깔이 좋지 않은 쌀, 크기가 작은 쌀을 골라내는 과정도 모두 기계가 해낸다.
좋은 쌀, 특등급 쌀은 수율이 70%다. 투입한 벼 대비, 쌀의 양이 70% 이하다. 30%는 쌀 포대에 담기지 않는다. 걸러낸다. 상등급은 수율이 75% 정도다. 좋지 않은 쌀이 5% 정도 더해지면 특등급이 아니라 상등급이 된다. 좋지 않은 색깔의 쌀까지 골라내는 판이니, 인간의 분야가 아니라 기계의 분야다. 기계가 이 과정을 모두 해낸다.
쌀의 수분 함량이 15%가 좋다는 이야기도 사실은 허망하다. 벼를 15도 내외로 보관한다는 말도 허망하긴 마찬가지다. 농업국가 시절에는 집마다 벼를 보관했다. 추수하고 벼를 말린 다음, 창고에 보관하고 1년 내내 필요한 만큼 도정한 다음 먹었다.
쌀을 사 먹는 시절이다. 내가 보관하지도 않는데, 수분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할 수 없다. 설혹 안다고 한들, 내가 쌀 수분 함량을 조절할 방법도 없다. 그렇다고 쌀을 냉장고에 보관할 수도 없다. 수분 함량 15%, 15도 내외로 보관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 아니다.
소비자가 따질 부분은 보관 기간이다. 벼로 보관한 다음 먹기 직전 도정하는 쌀이 가장 좋다. 벼를 쌀로 만든 후 가장 짧은 기간에 밥으로 지었을 때 가장 맛있다. 벼를 도정하고 3일, 1주일 이내에 밥을 지으면 당연히 맛있다.
벼든 쌀이든 오래 보관하면 산화 작용이 생긴다. 수분이 빠지고 산화한다. 맛이 변한다. 쌀의 경우 산화, 건조는 빠르게 일어난다. 맛이 떨어진다. 가능하면 벼로 보관하고, 도정한 후에는 짧은 기간 내에 밥을 짓는 것이 좋다.
여름철 쌀은 맛이 없다. 지난가을 수확한 쌀이다. 오래 묵은 쌀이다. 추수 전 쌀은 최악이다. 햅쌀 대비 1년 전 쌀이다. 지나친 건조, 변성, 변질된 것이다. 맛이 있을 리 없다. 벼로 보관했더라도 이미 맛은 떨어진다. 오랫동안 벼로 보관한 것도 수분이 빠진다. 맛과 향이 사라진다. 밥을 지으면 푸슬푸슬하다. 방법이 없다. 이때 맛있는 밥, 고슬고슬한 밥을 위하여 찹쌀을 10% 정도 섞기도 한다. 묵은쌀은 물에 불리는 것이 맛있는 밥을 짓는 요령이다. 밥을 짓기 전, 일정 시간, 물에 불려서 수분을 충분히 더한 다음 밥을 짓는다. 아무래도 갓 생산한 쌀만큼은 아니지만 그나마 조금 낫다.
조선 시대에는 대부분을 작물을 쌀[米]로 불렀다. 쌀은 대미(大米), 좁쌀은 소미(小米)다. 좁쌀은 작은 쌀이다. 소미다. 쌀, 대미는 쌀 중 가장 앞선 것, 바탕이 되는 쌀이다. 오늘날 같은 정미 기술이 없던 시절이다. 쌀을 잘 ‘쓿었다’는 것은 겉껍질, 속껍질을 모두 갈아냈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백미(白米)다. 곱게 만든 쌀이다.
‘임금님의 쌀’은 엉터리다. 조선 시대 기록 중에는 세갱미(細粳米)라는 표현이 있다. 곱게 쓿어낸 쌀, 백미다. 국왕도 곱게 쓿어낸 쌀, 백미, 세갱미는 먹기 힘들었다. 일부러 그런 쌀을 찾지도 않았다. 공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오히려 피하려 했다.
임금님이 특정한 지방에서 생산된 쌀을 찾았다? 이것도 동화다. 궁궐의 구조나 식재료 관리 체계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임금님 쌀’이 동화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조선 시대 궁궐의 살림살이 그중에서도 식재료, 음식을 관리했던 곳은 사옹원(司饔院)이다. 임금이 먹는 쌀도 이곳에서 관리한다. 임금이 쌀을 구하는 루트는 크게 두 곳이다. 하나는 국가의 재정에서 일부를 얻는 것이다. 국가는 세금을 걷는다. 공물(貢物)이다. 그중 일부를 규정에 따라 임금이 사용한다. 또 다른 길도 있다. 국왕 개인적으로 가진 땅이 있다. 개인 소유 땅이다. 이곳에서 거둔 곡물로 구한 쌀이다. ‘왕의 쌀’? 없다. 왕의 쌀은 국가에서 받거나, 개인 토지에서 거둔 임대 수익이다. 임금이나 왕비, 대비 모두 마찬가지다. 국가가 제공하는 것과 개인 재산에서 거둔 것을 먹는다.
궁궐의 모든 식재료는 사옹원에서 관리한다. 국가에서 제공한 쌀, 개인 토지에서 거둔 쌀 모두 사옹원에서 관리한다. 사옹원에서는 규격에 맞는지, 양이 맞는지 철저히 관리한다. 일단 창고에 들어오면 필요한 사항만 표기하고 모두 섞어서 보관한다. 어느 쌀이 어느 지방에서 들어온 것인지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이리저리 섞이고, 같이 보관하다가 적절한 절차로 내보낸다.
국가 세금의 경우 전국에서 모두 거둔다, 전국 팔도에서 거둔 세금 중 일부를 국왕에게 제공하는데, 그 쌀이 특정 지방 것일 리는 없다.
국왕이 어느 지방의 쌀로 밥을 지으라고 명령한 적도 없다. 조선 시대 내내, 연산군 정도를 제외하고는 식재료에 대해서 별도의 명령을 내린 국왕은 없었다.
국왕이 공물 이외에 식재료를 구하는 것은 ‘복정(卜定)’이라고 한다. 궁궐이나 상급 관아에서 하급 관아에 공물 이외의 특정한 물건을 콕 집어 구해오라고 시키는 일이다. 복정을 지극히 밝힌 국왕은 없었다.
국왕이 현지의 산물로 식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있었다. 국왕이 외부로 행차(行次)하면 현지에서는 행궁(行宮)을 만든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이니 몇몇 산물을 현지에서 구한다. 국왕이 드물게 현지의 산물로 식사를 하는 경우다. 현지 관리들은 가장 좋은 농산물로 밥상을 차린다. 이때 국왕이 “이곳 밥맛이 좋다”라고 인사치레로 말한 적은 있었을 것이다. 성종이 외부로 행차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전설이나 동화’ 같은 기록은 있다. 그뿐이다. 왕의 쌀은 없다.
전설처럼 떠도는 ‘아키바레(秋晴れ, 추청벼)’도 마찬가지다. 아키바레는 1955년 일본 아이치[愛知]현에서 개발, 한반도로 들여왔다. 1960-70년대 한반도로 들여온 후 ‘맛있는 쌀’로 인정받았던 것을 지금도 우리는 움켜쥐고 있다. 코미디다. 한국, 일본 모두 꾸준히 쌀 품종을 개량하고 있다. 지금 품종은 60년 전의 품종과 전혀 다르다. 땅의 성질이나 바람, 물, 기온, 농사법에 맞는 쌀 품종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한국, 일본 모두 마찬가지다. 무턱대고 아키바레, 고시히카리를 외칠 일은 아니다.
본 글은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가 2020년 3월부터 한국음식문화 누리집에 게재 중인 정기칼럼 내용입니다. 황광해 칼럼니스트의 주요 저서로는 <한식을 위한 변명>(2019), <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이야기 식사>(2017), <한국맛집 579>(2014) 등이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식문화진흥사업의 일환으로 매주 한식에 대한 유용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내용에 대한 문의는 한식문화진흥사업 계정(hansikculture@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본 칼럼은 한국음식문화 누리집(www.kculture.or.kr/main/hansikculture)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