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숙 (사)남도학연구소 대표
나주 임씨 대종가는 전라도를 대표할만한 종가이다. 24대째 현손으로 대를 이어오는 600여년 동안 종가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종가는 고려 충렬왕 때 대장군을 지낸 임비를 원조로 한다. 이후 고려가 망할 무렵에 해남 현감으로 있던 임탁이 조선의 왕을 섬기는 것을 거부하고, 전남 나주시 회진면의 누저동에 내려와서 대종가를 이루게 된다.
나주 임씨의 중시조인 임탁은 나주에 온 유일한 두문동 72현이다. 그는 후손들에게 조선 조정에서 벼슬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김에 따라 어느 후손도 벼슬에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4대에 내려와 임평이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도 병마우후가 됨으로서 비로소 벼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임평의 아들인 귀래정 임붕이 문과에 급제하여 좌승지, 경주부윤, 광주목사 등을 두루 역임함에 따라 비로소 후손들은 여러 관직에 나아가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종가와 문중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이러한 나주 임씨 대종가의 종택은 나주시의 명산인 신걸산을 등에 지고 영산강을 바라보는 자리에 위치한다. 그리고 건축물은 안채, 사랑채, 문간채, 대문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 형태를 온전히 갖추고 있다.
이 종택의 안채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작은 문이 있는데,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종손의 부,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다시 큰 외삼문이 있어,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임평의 신위를 모시는 부조묘가 자리하고 있다. 이 사당은 전라도 어느 부조묘 못지 않게 규모가 큰 편인데, 이는 지역사회에서 그만큼 종가와 문중의 위상이 위중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 부조묘에서는 귀래정 임붕의 유훈에 따라서 매년 음력 12월 15일에 임평과 배위인 언양 김씨 제례를 함께 모시고 있다. 이 제례를 ‘사당제사’, ‘큰제사’라 부르기도 한다. 예전에는 임평과 배위 언양 김씨 제사를 따로 모셨으나 2016년부터 대종중에서 음력 12월 5일에 함께 모시는 것으로 결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한 2014년까지는 음력 12월 5일 자정에 모셨으나 2015년부터 음력 12월 5일 오전 11시에 모시고 있다.
나주임씨 대종가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통을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은 노종부의 힘이 크다. 노종부 이화주(1946년생)는 매년 제일이 돌아오면 친척들과 함께 메와 갱, 편, 도적 등을 비롯해서 무려 45가지의 제물을 직접 장만한다. 노종부가 시집와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다해 제물을 장만하고 있는데, 이런 마음의 기저에는 종가와 문중의 번성과 위상을 위한 신념이요, 사명감이요, 명분이라 할 수 있다.
나주임씨 대종가는 제례음식에 있어서도 조상의 유훈에 따라 거행하고 있다. 비록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예전과 똑같을 수는 없겠으나 노종부는 여전히 예전 방식을 고수하면서 제물 장만에 여념이 없다.
가가례라는 말이 있듯이 종가마다 그리고 제례마다 제물이 모두 똑같을 수 없다. 각자 저마다 집안의 전통에 따라서 제물을 준비하고 차려서 제를 모시고 있는 것이다.
나주 임씨 대종가에서는 위의 진설도와 같이 제물을 차려놓는데, 신위 앞의 제물부터 차례로 살펴보면, 먼저 1열에는 메와 갱, 시저, 제주가 올라가고 헌다례 때 녹차를 올린다. 갱은 ‘멧국’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소고기와 두부를 넣어 끓이고 집간장으로 간을 맞춘 후 지단을 고명으로 장식한다. 제주는 제례에 맞추어 종가에서 직접 빚은 청주를 올렸으나 근래에는 후손이 직접 빚어온 술을 올리고 있다.
1열 다음의 2열에는 참례자측의 맨 좌측(서쪽)에 맨 위에 지단으로 고명을 한 도적을 올린다. 그리고 맨 우측(동쪽)에 높이 60㎝의 편(떡)을 올린다. 그 사이에 ‘멧진지상’이라 하여 평소 먹는 식사 그대로를 차려놓는데, 보통 7첩 반상이다. 멧진지상으로는 물김치, 숙주나물, 세발나물, 김자반, 고사리나물, 어전, 육전, 김, 장, 조청을 올린다. 멧진지상은 여느 제물보다 양이 적은데, 뚜껑이 있는 작은 놋그릇에 각각의 제물을 담아서 제상에 올린다. 멧진지상 옆으로 ‘면’이라 하여 놓는데, 실제 면은 아니고 흰떡을 가늘게 잘라 밀가루를 묻힌 다음, 회오리모양으로 돌돌 말아서 뚜껑이 있는 밥그릇에 담아서 올린다.
3열에는 상어탕, 병어탕, 조기탕, 민어탕, 제육탕을 올리는데, 국물이 없는 마른 탕으로 뚜껑이 있는 밥그릇에 담아서 올린다. 탕은 어전과 육전을 뺀 나머지 다섯 가지 재료로 만드는데, 탕감이 부족할 때는 전어나 명태, 오징어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제 모시기 전에 상어, 병어, 조기, 민어를 미리 사서 소금에 절인 뒤에 2~5일간 말린 다음에 쪄서 적당한 크기로 토막을 내어 오목한 제기에 담고 그 위에 지단을 고명으로 올리고 뚜껑을 덮는다. 이 고명을 ‘알고명’이라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제육탕은 돼지고기를 삶아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오목한 제기에 담고 그 위에 알고명을 얹고 뚜껑을 덮는다. 탕은 모두 뚜껑을 덮어두었다가 제가 시작하면 뚜껑을 열고서 제를 모신다.
4열에는 어적이라 하여 상어, 병어, 조기, 민어 4가지의 생선을 각각의 제기에 올린다. 앞서 3열에 탕으로 올리는 것과 같은 재료이다. 어적으로 올리는 상어, 병어, 조기, 민어는 생것을 소금에 절여 3~5일간 건조하여 찐 뒤에 빨리 깨를 뿌리고 적절한 크기로 토막을 내서 제기에 담고 알고명을 올린다. 어적으로 올리는 생선은 찐 뒤에 토막을 낼 때 형태가 흐물흐물할 수 있으므로 건조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데, 충분히 건조하면 생선을 찐 뒤에도 형태가 온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종부가 제를 앞두고 생선을 말리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적 외에 명태를 얇게 포를 떠서 달걀을 입힌 뒤에 기름에 부쳐서 제기에 올리는 어전, 소고기에 달걀을 입힌 뒤에 기름에 부쳐서 제기에 올리는 육전, 돼지고기를 쪄서 먹기 좋게 썰어서 올리는 제육도 함께 올린다. 이렇게 제상의 4열에 어적4(상어, 민어, 조기, 병어), 어전1, 육전1, 제육1 총 7가지를 놓는데, 이를 ‘7갈랍’이라 부른다.
5열에는 맨 좌측(서쪽)에 육포를, 맨 우측(동쪽)에는 밥식혜를 놓고 그 사이에 과(果)로 천혜향, 다식, 딸기, 유과, 강정, 수박을 올린다. 육포는 소고기 홍두깨살로 노종부가 직접 만들었는데, 냄새를 없애려고 육수를 빼서 약간의 소주를 넣고 하룻밤 숙성 시킨 다음, 건조기에서 3시간 정도 말려서 편다. 그리고 꿀을 바르고 잣 7개로 꽃을 얹었다. 예전에는 육포 대신 상어포를 사용하기도 했다.
밥식혜는 ‘마른식혜’라 부르기도 하는데, 식혜를 만든 뒤에 끓이지 않고 밭아 놓은 밥을 제기 위에 소복하게 담고, 그 위에 육포 6조각을 올려 장식한다. 육포를 눈이라고 생각하여 ‘눈 박았냐’라고 묻기도 하였으며, 예전에는 육포 대신 대추를 사용하기도 했다. 다식은 콩가루로 직접 만들어서 제상에 놓는다. 예전에는 송홧가루에 식혜물을 섞어서 만든 송홧가루 다식과 색을 맞추기 위해서 쌀을 갈아 만든 쌀다식을 만들어 삼색 다식을 올렸으나, 지금은 송홧가루가 정갈하지 못하다고 하여 콩가루다식을 만들어서 놓는다. 과는 11과에서 13과까지 제상의 6열에 배열하는데, 딸기, 수박처럼 놓을 자리가 없을 경우 5열에 놓는다.
마지막으로 6열에는 밤, 배, 정과, 약과, 토마토, 사과, 단감, 곶감, 대추로 맨 좌측(서쪽)에 밤을 놓고, 맨 우측(동쪽)에 대추를 놓았다. 정과는 엿을 먼저 고아서 만든 다음 연근이나 도라지를 넣은 것으로, 제기에 먼저 도라지정과를 놓고 그 위에 연근정과를 쌓아서 놓는다. 약과는 제 모시기 전에 미리 튀겨 놓은 다음, 제사 당일에 엿을 묻힌 뒤에 깨나 밤채로 장식한다. 밤채 대신에 간혹 고구마채를 올리기도 한다. 약과를 만들 때 반죽을 밀어 직사각형 모양으로 자른 다음, 세 번에서 다섯 번 정도 칼집을 내서 선을 만들어야 모양이 예쁘다고 한다.
이렇게 나주 임씨 대종가에서는 제례음식으로 총 6열에 45가지의 제물을 놓는다. 그리고 진설하는데 있어서도 격식을 따르고 있는데, 신위를 모신 쪽이 북쪽이고, 신위를 향해 우측이 동쪽, 좌측이 서쪽인 우동좌서(右東左西)를 따르고 있고, 신위를 향해 좌측에서부터 웃어른 순서로 하는 이서위상(以西爲上)를 따라고 있다. 또한 어동육서(魚東肉西), 좌포우혜(左脯右醯)를 여느 제례와 마찬가지로 이를 기본으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나주 임씨 대종가에서는 여느 제례에서 행하는 생선의 머리를 동쪽으로 꼬리가 서쪽으로 향하게 하는 ‘동두서미(東頭西尾)’가 아니라 생선 머리를 서쪽, 꼬리를 동쪽, 배부분은 신위쪽으로 하는 ‘두서미동(頭西尾東)’ 방식을 따르고 있다. 또한 좌측부터 대추, 밤, 배, 감(곶감)를 놓은 조율이시(棗栗梨枾)가 아니라 우측(東) 끝에 조(대추), 좌측(西)에 율(밤)를 놓는 ‘조동율서(棗東栗西)’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점이 다르다.
필자 서해숙은 전남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민속 연구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전북대학교 쌀.삶.문명연구원 HK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전남대학교 국문학과 강사로 출강하면서 사단법인 남도학연구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요저서로는 <호남의 가정신앙>, <고전문학교육의 현재와 지향>, <지역민속의 전승체계와 활용>, <한국 성씨의 기원과 신화>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현대구전설화에 담긴 기억과 역사문화적 인식], [나주 임씨 대종가의 불천위제례와 제례음식에 관한 연구] 등 다수가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식문화진흥사업의 일환으로 매주 한식에 대한 유용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내용에 대한 문의는 한식문화진흥사업 계정(hansikculture@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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