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 삶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종종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을 택할지 고민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늘 의식하든 못하든 어떤 기준에 따라 선택을 하고 있다. 그 기준은 각자의 가치관에 기반한다.
가장 대표적인 기준 중 하나는 ‘종교’다. 종교는 식습관이나 의례, 심지어 인간관계까지 삶의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이는 소고기를 먹지 않고, 어떤 이는 조상에게 절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모두 신념에 따른 선택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물건을 고를 때도 기준은 다양하다. 디자인, 품질, 가격… 그래서 '가성비' '가심비' 같은 새로운 말들도 생겼다.
취향, 가족, 연인, 친구, 자란 환경, 문화… 모두 나의 선택에 영향을 준다.
특히 자녀가 생기면 선택의 기준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이전엔 나 중심의 판단이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에게 좋은가’를 기준으로 삼게 된다.
선택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상대도 존중하리란 보장은 없다.
사람은 자신의 기준이 무시당한다고 느끼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힘을 행사하거나, 영향력을 키우려고 한다.
그만큼 다양한 기준을 알고 있는 것은 현명한 선택을 위해,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여행을 떠난다고 해보자.
누군가에게 여행은 많은 곳을 둘러보며 경험과 식견을 쌓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조용히 쉬는 ‘피로 회복’일 수 있다.
같은 ‘여행’이라 해도, 선택의 기준이 다르면 목적지도 달라진다.
나는 인사 업무를 하다 보니 선택의 기준이 종종 ‘법’에 편향된다는 걸 느낀다.
"이건 법에 어긋나지 않아", "법에 어긋나니 하면 안 돼"라는 말이 쉽게 나온다.
누군가와 갈등이 생겼을 때 “법대로 하자”는 말은 결국 최후의 수단이다.
법은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지만, 협의와 이해가 먼저다.
법으로 조정되기 전에 합의와 조율이 이뤄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회사가 직원과 맺는 계약은 대부분 기울어진 계약이다.
그래서 노동법은 ‘최소한 이 정도는 보장하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 정도는 지켰으니 위반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법을 기준의 최대치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선택의 기준이 법의 최소조건인지, 혹은 동기부여와 신뢰를 중시하는 방향인지,가정과 사회의 건강을 고려한 것인지… 입장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그 입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요즘 우리는 선택의 기준이 무척 다양해졌다는 사실을 자주 잊고 사는 것 같다.
누군가의 선택이 내 기준과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여기면 안 된다.서로의 기준을 이해하려는 태도,
그것이 결국 더 나은 선택을 이끌고, 더 나은 관계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