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흔들리는 어른'이다

걱정말아요, 그대 - 전인권

by 꼬르륵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버리고

(걱정말아요 그대 - 전인권)


"엄마, 아빠는?"

서늘한 겨울 바람까지 부는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그날도 나는 아이들과 택시에 몸을 실었다.

"아빠는 일찍 일하러 갔지."

창밖으로 차들이 지나갔다. 택시 뒷좌석 아이는 내게 요즘 매일 묻는다.

"아빠는?"


내가 육아휴직을 낸 뒤 남편은 출근 시간을 앞당겼다. 아직 집에 차가 한 대인 상황에서 아이들이 하원할 때 여의도 직장인인 남편의 차를 타기 위한 선택이었다. 남편이 오후 5시에 퇴근하고 아이들을 데리러 가려면 오전 8시까지 사무실에 가야 했다. 남편이 아직 아이들이 자고 있는 시간에 나간 후, 나는 두 아이를 오전 10시를 넘겨서야 상암의 어린이집에 보냈다. 겨울이라 그런지 아침잠이 많아진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옷을 입히느라 아이들과의 실랑이는 일상이 됐다.


"차가 한 대 더 있으면 좋을 텐데, 내 차라도 줄까?"

"차 두 대 굴리는 것보다 이게 더 나아."

걱정하는 친정엄마의 말에 나는 그렇게 말했다. 사실이었다.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져 휴직을 했지만 아이들의 어린이집은 여전히 내 직장 근처였다. 그렇게 출근도 하지 않는 회사 건물을 매일 보며 한 블록 옆 어린이집을 택시를 타고 가기 시작했다.


그날도 집 앞에서 택시를 타니 라디오에서 누군가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 날씨, 뉴스, 가족 이야기. 우리 회사에서도 매일같이 방송하던 주제였다. 라디오 소리를 듣자니 회사가 떠올라 잠시 울적해졌다.

"저기 엄마 방송국 맞지?"

어린이집이 가까워지자 첫째 아이가 말했다.

"응~"

"아니~ 엄마 '응'만 하지 말고."

"응, 맞아."

"응"이라는 것은 '맞다'는 의미라고 해도, 어쩐지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섯 살 딸아이가 다시 물었다.

'근데 엄마가 다시 방송을 만들 수 있으려나?'

문득 그런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하지 않았다. 아직 어린아이였다.

힘차게 인사를 하며 아이들을 어린이집으로 들여보내고 돌아서니 매일 하는 고민이 또 시작됐다.


'이제 어디로 갈까?'


자주 가던 도서관을 가서 공부를 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얼마 전 문을 연 무인카페에 가서 있는 게 좋을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서늘한 겨울바람이 부는 인도에서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 있자니 그 모습이 지금 내 삶 같기도 했다. 여기를 건너서 무인카페로 가야 하나, 아니면 건너지 말고 도서관에 가야 하나.

어려워진 회사 상황을 더 지켜보는 게 나으려나, 아니면 어떤 일이라도 돈을 버는 게 나으려나, 라디오 PD로 계속 살 수 있으려나, 아니면 다른 직종으로 준비를 해야 하나. 누군가에게는 편파적이었던 조직이라고 여겨질지라도 라디오와 음악이 좋았던 내게는 나름 의미 있던 일터가 흔들리니 나의 삶도 달라졌다. 나이 마흔의 문턱에서 내가 속한 조직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나는 갑자기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디로, 나는 어디로~" (한 사람을 위한 마음 - 럼블피쉬)


갑자기 익숙한 멜로디가 내 입술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훗.'

라디오 PD 아니랄까 봐. 상황별 노래가 습관처럼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결국 아직 무임금으로 방송을 제작하고 있는 선배님을 돕기 위한 라디오 원고와 내 글을 쓰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이런 시간을 바라왔다. 마음껏 책을 읽고, 글도 쓸 수 있는 시간. 실업수당이라도 받아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퇴사를 고하던 선배님의 벌건 눈이 떠오를 때면 내가 겪는 이 사건의 의미가 아름답게 정리되진 않는다. 다만, 차라리 지금 이런 불안을 맞닥뜨린 게 개인적으로는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는 항상 예측할 수 없고, 어느 조직이든 완벽하지 않다. 그런 불안 속에서 나는 언제든 나만의 길을 찾아야 하고, 그게 또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불안에 힘들어하기보다 불안에 익숙해지고, 나만의 속도로 나의 길을 만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불안을 다스리는 데 역시나 다른 무엇보다 음악이 큰 위로가 되었다. 12년간 라디오 PD로 일하며 수많은 사연과 음악을 엮어왔던 경험 덕분일까. 나는 일상의 모든 순간에 어울리는 노래를 찾아내는 것이 특기가 되었고, 그 노래들은 늘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와 같은 불안은 어른에게는 항상 있는 것들이었다. 실직, 이직, 퇴직, 가족 문제, 경제 문제. 조직이든 삶 속에서든 변화로 인해 겪는 불안을 한 발짝 뒤에서 볼 수 있도록, 그 속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던 음악들. 그 음악들을 이 책을 통해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걱정 말라고. 언제나 그렇듯이 이것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라고.

매일매일 불안한 마음으로 횡단보도 앞에 서있지만, 그래도 발걸음을 떼어 글을 쓰다 보면 그 시간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에는 각자의 불안한 순간에 어울리는 음악과 함께, 그 시간을 견디어 낸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노래와 함께라면, 우리는 조금 더 다행인 날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글속에 등장한 노래들)

-걱정말아요, 그대(전인권)

https://www.youtube.com/watch?v=Gk2fBpu2bW4

-한 사람을 위한 마음(럼블피쉬)

https://www.youtube.com/watch?v=qyTIzN30sE4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