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를 살게 하는 한마디, 아버지와 방울토마토

by 꼬르륵

나는 부모님의 사랑이 자존감의 원천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어느 초여름이었던 거 같다. 오랜만에 고향 집에 부모님을 뵈러 갔다가
이제 다시 서울 올라갈 채비를 하는 데 축담에 앉아있는 내게 아버지가 마당 저만치서 다가오셨다.

이것저것 밑반찬을 챙겨주는 엄마에게 너무 많다며 신발을 신으며 실랑이를 벌이던 중이었다. 한숨 돌려 마당 쪽을 봤더니 아버지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그러시더니 내게 왼손을 펴 보이셨다.
“자”
아버지의 왼손 손바닥 안 이제 갓 딴, 앳 땐 방울토마토 세 개가 있었다. 그 토마토를 내게 건네시며 아버지는 그저
“허허”
하고 흡족하게 웃으셨다.

우리 아버지는 무뚝뚝한 분이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드러나지 않게 나에겐 자상하셨다. 내가 다시 서울 올라간다고 하니 배웅차 마당에 나오셔서 기웃거리시다가 토마토 나무를 발견하셨으리라.
그런데 거기 처음 열린 빨간 열매가 눈에 띄셨으리라.

그렇게 아버지는 그날 마당에서 발견하신 가장 귀한 것을 내게 주셨다.

사랑 심은 데 사랑 난다고들 한다.
부모님의 사랑은 각박한 서울살이를 하던 내가 기댈 수 있는 심리적 언덕이었다.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곧 자녀의 자존감이 된다고들 한다.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나를 귀하게 여겨 주는 아버지의 마음이 내가 서울에서도 기죽지 않고 할 말 하게 하는 용기의 원천이었다.

상대방이 무례할 경우, 때로는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지분을 주장하는 경우, 내 마음에는 항상
‘나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저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부모님이 내게 심으신 거다. 그리고 아버지와 엄마가 심은 그 씨앗이 있는 한 나는 넘어질지언정, 계속 쓰러져 있지 않다.

사건이 나의 가치를 깎아내리진 못하기 때문이다.
길 가다 버려진 5만 원이 구겨졌다고 해도 여전히 5만 원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나의 고유한 가치가 사건과 사람에 의해 망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살아갈수록 누군가 나를 귀하게 여겨 준 기억들을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추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행복하고,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
꼭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 진심을 느끼고 감동한 경우는 누구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이 글을 써보려고 한다.
‘오늘 나를 살게 하는 한마디’
그리고 꾸준히 해보려 한다.

누군가의 마음도 너그러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치료하는 마음을 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