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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문어 Jun 20. 2024

저는 제가 죽기 전에 지구가 멸망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러면 안 되겠더라고요.

친구들에게, 주변사람들에게도 지나가면서 우스갯소리로 하던 말이었는데, 사실은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 정도면 내가 죽기 전에 지구가 망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를 거라며, 우리를 둘러싼 지구환경과, 나날이 갈수록 차가워지는 자본주의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음, 역시 답도 없군."


이라 생각하며, 먼 미래를 그리는 것을 포기해야만 하루하루가 살아졌다. 그리고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안다.


가까스로 졸업을 하고 취업시장에 던져진 지 이제 반년이 다 되어가는데, 생각보다도 나는 여러모로 꽤나 최악의 상태였고, 취업을 하기에, 일을 하기에 적합한 상태가 아니었다. 나이도, 스펙도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재정적으로, 정신적으로 결핍에 시달리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끊임없이 나아가고 도전하고 성장해야 하는데 잘 되질 않았다. 왜 이렇게 힘들까 그간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알아냈다.


지구가 멸망할 거라 생각하는 마음의 소리와, 내가 그리는 이상으로 향하는 움직임이 계속해서 충돌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터무니없는 소리를 진심으로 생각한 나의 마음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발걸음을 계속해서 붙잡게 만든 이 상황이, 요즘말로 상당히 킹받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오늘도 나의 미련함을 글로 남긴다.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라도 위로받고 가라고. 



이걸 깨달은 계기는 정말 작은 데서 출발했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영어학원 보조교사 아르바이트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만나고, 보충수업을 해주면서부터다. 하루에 6시간 정도, 많이 일하고 많이 버는 일은 아니지만, 월세를 내고 당장 먹고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일을 시작했다. 


학창 시절에 학원을 다녀본 적도 없고, 영어를 지지리도 못했던 나지만, 운 좋게도(?) 여고에서 매를 들고 가르치셨던 카리스마의 영어선생님을 만나 기본은 따라잡을 수 있었고, 대학에서 강제적으로 영어를 주입받은 덕에 보충수업 정도는 무리 없이 해줄 수 있는 수준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기했다.


그렇게 공교육에만 의지했던 나였기에, 학원에 와서 수업을 못 따라가서 힘들어하거나 파닉스를 끝내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면 '나보다 잘하는데?'라는 생각이 진심으로 솟구쳐서 온 마음을 담아 "괜찮다. 진짜 잘하고 있다. 너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못하는 거 아니다."라는 말을 계속해주게 된 것이다.


나도 이 아이들처럼 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면 조금 달랐을까? 라는 생각도 스쳐 지나가기도 했지만, 학교가 끝나고도 이런저런 학원을 거쳐 하루를 마무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는 부분이 크다.


스스로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도 있고, 아직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서툰 아이도 있고, 무난하게 성실하게 공부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아이도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 수줍음이 많은 아이, 정말 가지각색인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언젠가 내게 "너희들은 모두 천재야"라며 말씀해 주신 한 교수님을 떠올리면서, 안 된다, 못한다는 소리를 하는 아이들에게 교수님께서 하신 말과 비슷한 류의 말을 계속해서 해대고 있었다.


결코 빈 말이 아니었다. 아직 깨닫거나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이 아이들 마다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보석이 보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깨달은 것이다. 이런 말을 내뱉고 있는 나는 지구가 멸망할 거라며, 하루빨리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이런 보석 같은 아이들의 미래를 사실은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실은 포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 목표라 말했는데, 정말 글러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구멸망기원을 그만하기로 했다.



솔직히, 조금만 눈 돌리면 나를 숨 막히게 하는 것들이 투성이라 흐린 눈을 장착하고 살아가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버겁게 느껴질 때가 정말 많다.


나이를 이 만큼 먹었으면 얼마만큼은 벌어야 한다는 말, 살까지 얼마만큼은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 최소한의 기준에 대한 얘기,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미련하고 멍청한 사람들이니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한 말들.


이게 맞나, 나는 왜 해내지 못하는 것인가, 기준이 맞는 것인가, 수많은 의문이 드는 동시에 또 그 기준에 납득을 해버리는 나의 마음.


개인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개인의 책임과 탓으로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 펼쳐지다 보면, 삶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사라지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삶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게 됨에 정말 감사하다. 언젠가 또 잊어버리고, 무의미한 관성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은 깨달음을 간직하고자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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