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헤엄치려면
서핑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닌다. 실제로 그렇게 되기 위해 투자도 했다. 벌이가 없는 학생에게 하루 서핑을 하러 다른 지역에 가고, 장비를 빌리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하는 다양한 비용은 상당했다. 또한 해외에 가서도 꼭 그 바다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내 기억에 바닷물에 온 몸을 처음으로 담근 것은 25살 서핑을 하러 동해에 갔을 때다. 이 사람 참 재미없는 사람인가 싶은데, 그게 내 솔직한 모습이다. 때문에 바다를 보러 가는 것도, 바다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도 나의 지난 삶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수영은 자유형을 할 줄 안다. 하지만 바다수영을 할 만큼 잘하진 못한다. 배영으로 하면 할 수 있는데... 그 바다의 맛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연출될 것을 알고 있다. 서핑을 배우며 가장 걱정했던 것은 내게는 수영이었는데 사실 그 문제는 어느 순간 해결되었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내가 믿는 것을 붙든다.
나의 두 번째 서핑이었던 2017년의 강릉바다는 무모함의 결과를 알려준 장소였다. 딱 하루 패들링 <보드에서 팔을 움직여서 나아가는 방법>을 하고서는 나는 서핑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좋은 파도는 큰 파도라고 생각했고, 무척이나 바람이 많이 불고, 파도와 조류가 강한 그 바다에 직접 기어들어갔다. 당연히 나는 재미는커녕 물만 먹고, 파도가 오면 방파제 쪽으로 휩쓸려갔다. 아 이거 위험하다 싶어서 방파제 안에서 작은 파도를 가지고 탈 생각을 하던 찰나. 보드가 뒤집어졌다. 보드를 다시 원래대로 하고, 그 위에 올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보드를 위태롭게 끌어안고 해변까지 쓸려가서야 그 위험한 순간이 끝났다.
발이 닿지 않아서 두려웠다. 실제로 내가 지금껏 몸을 담갔던 물은 바닥을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바다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서핑이 제법 무서워졌는데, 나는 날씨 탓을 했다.
두려움을 이겨낸 건 세 번째 서핑이었다. 유럽여행에서 포르토에서 서핑을 했는데, 다행히 그 해변은 바람은 적게 불고, 파도는 멋스러웠다. 강사였던 친구의 차가 견인이 되며 혼란에 빠진 시간 동안도 나는 멍 때리고 있었다. 근데 해변가에 보이는 서핑을 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쟤들도 하는데..' 다시 조금 더 먼 바다로 향했다. 해변으로 가려는 파도와 그걸 뚫고 나가는 보드는 당연히 서로 만나고, 바닷물은 내 얼굴을 향한다. 그리고 난 이 수심이 얼마인지도 몰랐다. 그 자체로 굉장히 기념적이었는데. 문제를 해결하고 온 강사는 '다이빙! 다이빙!' 그게 뭔지 몰랐어 잘 나가다가 또 물을 먹었다. 그래도 이번엔 보드가 뒤집히지 않았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발버둥 치는데 보드는 평온하게 있었다. 나만 허우적거리고 있던 거다. 이번엔 생명의 위기가 없었기에 나의 두려움은 사라졌다.
삶을 대하는 방식을 제주에서 배웠다. 중문 색달해변은 유명한 서핑 스폿이고 당연히 제주에서 잠시 살았던 2018년 나는 바다에 들어갔다. 제법 큰 파도를 타고, 패들링도 부쩍 늘었다(파도가 없어서 패들링만 3번을 갔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나 나의 미숙함과 불안함 때문에 나는 보드에서 떨어졌고, 바다 깊숙이 처박힌다. 보드는 뒤집혔을까? 사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발이 닿지 않았다. 또 겁을 먹을 법했는데. 몸에 힘이 빼고 내 발목의 리드 줄 <보드와 서퍼를 연결시켜주는 줄> 잡았다. 물속에서 침착하게 내 발을 찾았다. 물속에서 부유하고 있는 나의 발에는 리드 줄이 있었고, 그걸 잡아서 보드 위로 올라갔다.
어? 왜 이렇지?
그 날 세 번은 더 뒤집혔다. 물에 처박혔고, 다시 올라왔다. 근데 더 이상 허우적거리거나 발버둥 치지 않았다. 침착하게 리드 줄을 찾고, 보드에 올라 가거나. 보드가 뒤집혔으면, 보드를 뒤집고 다시 줄을 잡으면 된다. 땅을 박차고 올라가야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를 지탱해주는 선을 찾고, 침착하게 행동했을 때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때로는 몸에 힘을 빼는 것이 격렬하게 발버둥 치는 것보다 살기 위해 필요한 방법이었다. 바다와 서핑이 내게 준 지혜다.
간단하다. 지난 7개월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다고 자부했는데, 이제 나는 발이 닿지 않는 바다에서도 다시 올라갈 수 있었는데. 항상 발을 맞대고 있는 도서관, 스터디룸에서도 허우적거리면서 이상한 방법으로 살 궁리를 했다. 때문에 익사할뻔했다.
난 나의 우울에 빠져 죽기 싫다. 바다는 내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다시 잊지 말아야 한다. 삶도 서핑과 같다. 나는 계속 바다에서 흔들리고, 헤엄칠 테니. 더 이상 그 지혜를 잊으면,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