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섭 Jun 20. 2020

식기 전에 먹자, 엄마의 파전

스물두 번째 접시, 스물두 번째 이야기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되었다. 주말이면 나는 구수한 기름 냄새가 좋았다. 다른 것을 비교한다면 끝이 없겠지만, 적어도 풍족하고, 배부르게 먹으면서 자란 어린 시절이었다.


 '집밥'이라고 말하면, 밥도 국도 생각하는 것이 맞을 텐데. 오히려 파전이 떠오른다. 특이하게 비가 온다고 하는 음식은 아니었다. 가족 모두가 있는 일요일 점심 그리고 토요일 저녁이 소문난 잔치였고, 부엌의 들리는 소리와 향기가 좋았다.


 가장 이상적인 파전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었다. 어떤 타이밍에 뭘 넣고, 재료의 크기는 어떻게 잘라야 할지, 정형화된 레시피가 아니었지만. 그 순간에 가장 따듯하고, 맛있는 모든 것이 담아냈다. '빨리 와 전 식어' 이 말을 듣고, 뒹굴거릴 수 없었다. 잽싸게 뛰어가서 각자 한 장씩 파전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항상 결말은 포식으로 끝이 났다. 언제 사용을 시작한 지 기억도 안나는 빛바랜 프라이팬에서 구운 파전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다. 기름에 튀겨진 반죽의 바삭함은 아주 찰나에 사라진다. 그 한 끼 식사 시간을 넘어가면, 조금 흐물흐물해진 하지만 맛은 진해진 파전이 조연으로 다음 무대를 기다렸다. 붙잡을 수 없기에 좋았고, 그 때문에 계속 추억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젠 날을 잡아야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지금, 그 순간에 더 많이 더 열심히 먹고 즐겼어야 했다. 행복을 남기고, 아낄 필요가 없다.


 한 장의 전에서, 가족의 식탁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아주 어린 시절 만들어 먹던 파전에는 오징어와 파 그리고 청양고추 정도만 기억난다. 그러던 중 방아잎을 키우기 시작하자 한참은 꼭 이름은 파전인데 방아잎이 더 많은 주객이 전도된 일도 있었다. 내가 요리를 취미로 시작했지만, 여전히 모든 전은 총괄은 우리 어머니였다. 아직도 그 비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서양 식탁의 문화가 들어온 우리 냉장고 속 재료들이 차츰 자기 자리를 찾았다. 칵테일 새우, 모차렐라 치즈. 최근에는 집에서 키우는 바질이 파전에 들어갔다.


 세월의 흔적이 검고 짙게 묻는 프라이팬에서 재밌는 반응이 만들어졌다. 훌륭하게 먹고 자라서 맛있는 것을 찾아다닌다. 외식을 하면, 아직 길가에 양식, 일식 식당이 한식당보다 많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요리법이 한식을 정의하거나, 요리하는 사람이 한국인이라면 한식이라는 생각도 했다. 우리 집 파전은 한국인에 손에서 만든 요리였지만, 계속해서 세계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여지를 두고, 다양한 국가의 음식을 접하고 있었다. 아주 멋진 가르침이었다.


엄마의 파전 요리법. 재료: 파와 부침가루, 소금 각종채소(정말 그 때 그 때 다르다), 각종해물, 그리고 섞어서 적당히 부쳐낸다.


 엄마의 파전 조리법은 매우 간단했다. 아니 어렵다. 언제 뭘 넣어야 하는지 다 눈대중이고, 덕분에 항상 그 맛이 일정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맛이 있었고, 꼭 먹어야만 하는 시간이 있었다. 때문에 오늘의 파전은 처음이자, 마지막 파전이 될지도 모르는 그런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집에서 경험했던 한식의 레시피는, 파 한 단, 밀가루는 이 정도, 해산물은 이렇게 썰어서, 최대한 많이. 적당히 기름을 두르고, 구수한 향이 나오면 뒤집어내는 말 그대로 즉흥적인 방법이다.


 가족이 함께 먹을 좋은 재료를, 양껏 담아서 섞은 반죽을 만들고, 기름에서 부쳐낸다. 그리고 식기 전에 맛있게 먹는다. 이게 가장 오묘하고, 어려운 이 요리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꼭 바로 먹어야 맛있다.


저렇게 바삭한 테두리를 좋아했다.


 행복을 다음으로 미룰 필요가 없다. 엄마의 파전도 빨리 배워야 한다. 생각보다 우리 가족이 쌓은 추억의 장면이 많아진 만큼. 생활하는 것도 변했다. 이른 아침 부랴부랴 집을 나가고, 식사 시간이 지난 후 들어오는 지금. 이제 바삭하고 구수한 그 맛을 나눌 시간이 확 줄어들었다. 때문에 예전만큼, 생각만큼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


 거리에 가득한 수많은 식당 틈에서, 그 맛을 찾을 수 없었다. 단순하게 맛있다는 개념을 떠난 울림. 맛집이 모여있는 먹자 거리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정 때문에, 나는 흔히 '집밥'으로 소개하는 감각을 모두 그리워한다. 정말 집에서 식사를 하거나, 그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맛과 분위기가 주변을 감쌀 때, 행복하다. 그래서 편안하다.


 한식은 나에게 추억이 가득한, 그리고 또 쌓아갈 마음속 작은 공간이다. 우리 가족의 역사처럼 재료가 바뀌고, 조리법이 조금씩 변해도, 그 기둥이 매우 단단하다. 그래서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다.


결국 이 파전은 가족과 같이 먹어서 맛있는 요리이자, 추억이다

  

 구수한 기름이 맛있는 지금, 달큼한 파와 해산물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 딱 맛있을 때다. 그런 한식을 먹을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은 미루는 게 아니다. 좋은 건 언제나, 지금 흠뻑 즐겨야 한다. 이 요리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본다.


어떤 방법이 되었건, 행복은 미루는 게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느끼함을 쫙 빼보자 '연어 그라브락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