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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Oct 01. 2024

헐린(Helene)이 지나가던 날

교환 학생으로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머무르고 있는 딸에게서 톡이 왔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고 그 때문에 수업이 휴강되어 기숙사에만 있는데 와중에 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창밖으로 보인다며, 그 모습이 낭만 있다는 것과 나갈 수 없으니 방에서 과제를 할 거라는 내용이었다. 잠깐의 날씨 얘기 후 주말에 친구들과 근처로 여행을 갈 거라는 얘기와 이곳 근황 등을 주고받았고 늘 그렇듯 안전이 제일이라는 얘기로 마무리를 했다.


다음날 아침, 교육이 있어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는데 뉴스에서 노스캐롤라이나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허리케인이 지나가면서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는 짤막한 소식. 딸이 전해온 소식이 뉴스에도 나오는구나 하며 티비화면을 찍어 보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톡 옆의 숫자 1은 없어지지 않았고 답도 없었다.  지난 8월 국 여행 당시, 마른날에도 정전 사태가 있었고 그게 흔한 일이라고 들은지라, 이번에도 폭우로 정전이 된 거면 곧 복구가 될 거고 그럼 딸이 답을 해올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흘렀고 딸과 연락이 끊긴 지 하루가 넘어갔다. 그러던 중 기사로 만난 현지 상황.


허리케인 '헐린' 노스캐롤라이나 강타.

폭우, 사망자, 피해, 사고..


노스캐롤라이나 주가 워낙 크니까 딸이 머무는 곳을 비껴지나가면서 폭우를 뿌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관통한 듯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허리케인이라니.


학교 간에 연결이 되어 있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이 올 거라 생각하면서도 불안했다. 딸의 학교에서 차로 네 시간 좀 넘게 걸리는 애틀랜타에 계신 신부님께 연락을 드리니 신부님 계신 곳은 괜찮다고 하셨고 폭우에 이틀씩 정전이 되는 상황도 있으니 기다려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다시 하루가 지고.. 사흘째 새벽, 낯선 번호의 국제 전화가 왔고 예상대로 딸이었다.


나와 톡을 주고받았던 날 저녁부터 비바람은 엄청 거세졌고, 이후 전기, 통신, 수도, 모든 게 끊겼으며 못 씻은 지 사흘이 지났고 아직도 암흑이라며 미국에 본가가 있는 학생들은 학교를 빠져나가고 있 각국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들도 방법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지인 친구가 교환학생 친구들에게 전화기를 빌려주며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라고 해서  한 시간 넘게 돌아가며 안부전화를 돌리는 중이라는 감동적인 이야기도 전했다. 안 그래도 그런 상황인 듯해서 모두 걱정했고 신부님 이 상황을 아신다는 말을 하데 전화가 뚝 끊겼다. 다시 무한 기다림.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신부님으로부터 보이스톡이 왔. 수화기로 들리는 딸의 목소리. 딸은  본인의  구원자가 되어줄 유일한 분인 신부님께 연락을 드렸고 신부님께서는 네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가 딸을 구해 나오시는 길이었다. 신부님은 통신이 끊겨 지도를 보며 가셨다고 했고 생각보다 현지 상황은 심각했고 아직도 강풍이 불고 있더라는 소식도 전해주셨다. 시는 길이 얼마나 위험했을지.


재난 영화 그 자체였다며 딸이 사진과 영상들을 보내왔다. 모든 걸 삼키고 모든 걸 휩쓸고 지나갔구나. 우리 딸 무서웠겠다. 


제야 정신 차리고 뉴스를 보니 기록적인 폭우와 강풍으로 인한 피해는 어마했구조되지 못한 분들의 안타까운 소식도 해졌다. 폐허가 된 곳을 하염없이 라보는 그곳 주민의 뒷모습에서 망연자실한 눈빛이 느껴졌다.

가끔 들려오는 허리케인 관련 뉴스에 '그렇구나'하며 지나쳤었는데 현지에 지인, 가족이 계신 분들은 이렇게 마음을 졸였겠구나 하는 생각도 지나갔다.


딸은 급박(?)했던 그때, 전송되지 않았던 카톡 메시지가 쌓인 화면을 캡처한 걸 보내왔다. 연락이 닿으면 그땐 이랬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던가 보다.

휴대폰 화면을 보는데 세월호 사건, 부천 호텔 화재사건 등이 생각나면서 울컥했다.


딸은 신부님의 구조(?)로 다시 네시간 넘게 달려 안전하게 애틀랜타에 도착했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신부님의 지인이신 로사 선생님 댁에 일주일간 머무르기로 했다. 다른 교환 학생 친구들도 근처 안전한 도시로 이동했고 숙소를 구해 묵고 있다는 소식도 딸이 전해주었다.


오늘밤 뉴스에도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주지사의 인터뷰와 함께 그곳 소식이 전해졌다. 헐린으로 많은 걸 잃어버린 도시와 그 안에 머무르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왕복 아홉시간을 달려주신 신부님과 기꺼이 머무를 곳을 내어주신 로사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이 교차했다.


피해를 입은 현장과 그곳에 계신 분들께 닿는 힘 전부가 모아져서 헐린으로 인한 상실에 빠른 회복의 기운이 돌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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