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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Nov 06. 2023

이그토록 강력한 도오온을 벗어나서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들은 돈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다. 무엇이 하기 싫든(주로 일), 하고 싶든(주로 꿈) 돈은 필수불가결이다. 이미 경제적 자유를 이룬 분들, 부모의 넉넉한 지원을 받는 분들은 논외로 하겠다. 재능이라는 씨앗을 잘 키워서 재능이 꽃을 피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돈과의 관계를 잘 설정해야 한다.


내가 40대 중반까지 재능과 상관없는 그저 그런 삶을 산 이유는 이 돈과의 관계 설정에 실패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음악(작곡)을 하고 싶은데, 돈을 포기하고 음악에 전념할 것이냐, 돈을 넉넉히 벌어놓고 음악을 시작할 것이냐 하는 문제. 사실 양쪽 다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먹고살아야 하니 돈을 포기할 수 없고, 또 넉넉히 돈을 벌어서 비축해 둔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의 로망이지만 이 또한 보통 사람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자신의 재능을 취미로만 사용하며 직장생활도 만족스럽게 하는 분들도 있다. 일찌감치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포기하고 타협하여 현실과 이상 양쪽을 적당히 조율하며 사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재능을 취미 이상으로 사용하고 싶고, 재능이 있는 분야에서 생계까지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분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왜 똑같이 글을 쓰는데, 누구는 유명한 작가가 되고 나는 책 한 권 내지 못할까, 왜 똑같이 음악을 하는데 누구는 유명한 뮤지션이 되고, 나는 골방 뮤지션에 머물러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다들 한두 번은 해보셨을 것이다. 타고난 재능의 차이 때문일까? 우리가 제일 흔히 하는 말. "타고났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40대 중반에 작곡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후로 현업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작곡가, 교수님, 평론가, 지역 뮤지션들을 직접 혹은 강의나 책을 통해 만나본 결과 우리 삶에서 재능이 행동을 부르는 것보다 행동이 재능을 부르는 원리가 월등한 비율로 높다는 것을 확인하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하면 된다. 그것이 간단한 정답이다. 그런데 먹고살아야 하고, 먹고사는 일은 시간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4시간 수면법? 4시간만 자야 할까?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두 눈을 부릅뜨고 독하고 악착같이 일과 자기계발을 병행해야 할까?


정답은 간단하지만 이것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자기 나름의 논리를 세우고 마인드셋을 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왜냐하면 돈이, 현실이 언제나 나를 흔들기 때문이다. 이 마인드를 세팅하는 데 있어서 우선순위가 정말 중요한데 내 경험을 토대로 말해 보겠다.


첫째,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재능과 함께, 재능을 품고 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죽을 때까지 내가 이 재능으로 출세하지 못해도 후회는 하지 않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건 억지로 다짐하는 의지가 아니라 결과에 상관없이 그 일을 사랑하겠다는 그 일에 대한 사랑이자 믿음이다. 나는 재능이 내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지 못해도 재능을 좇는 삶을 통해 귀한 인연들을 만나고, 그 과정을 함께 즐기고 나눌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무척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늦었지만 음악을 시작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로 나는 수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작곡을 하지 않았으면 결코 내 삶에서 만날 일 없었을 사람들. 지금도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직 나는 한 곡도 팔진 못했지만 곡 작업을 공동으로 하고 있는 뮤지션, 내 곡에 흔쾌히 작사로 동참하겠다는 작사가, 노래를 불러주겠다는 보컬, 공연을 같이 해보자는 버스킹 공연자... 처음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냉소적이었던 형(과거에 직업으로 음악을 했음)도 지금은 조언을 해주고 도와준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공저로 출간한 책에서 (당연히) 인세를 한 푼도 벌지 못했지만, 함께 책을 낸 작가님들과 지금도 소통하고 있고, 브런치 구독자분 중에도 대면한 적이 없음에도 통하는 부분이 있어 각별히 느껴지는 분이 있다. 


출세도 좋지만, 이런 과정과 사람들이 소중하고 좋지 아니한가. 나는 내가 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음악하는 사람들. 뭔가 전문가 같고, 대단해 보였던 그 사람들 틈에 어느새 내가 끼여있다는 사실에 문득문득 놀란다. '어, 내가 지금 이 물에서 놀고 있네. 실화냐!' 


'곡 하나 뜨서 저작권 부자가 되겠다', '어찌어찌 요령껏 곡 하나 써서 인지도 있는 가수한테 빨리 팔아야지' 이런 얄팍한 생각으로는 당연히 이 바닥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둘째, 시간과 돈에 대해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나는 브런치에 월, 목 연재로 글을 쓰기로 한 이후로 글을 쓰기 위해 어느 정도 돈벌이를 포기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노동적으로 일정하게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멘탈은 가져야 한다. 시간이 나면 쓰겠다고 하면 당연히 시간은 안 나고, 막연한 계획은 시간이 나더라도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재빨리 바뀌어 버린다. 하지만 이렇게 성실히 쓴다고 해서 당장(이 아니라 꽤 오랜 기간) 브런치나 독자가 나에게 돈을 주지는 않는다.


곡쓰기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 친구에게 의뢰받은 곡 작업을 위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여러 날의 파트타임 일거리를 포기했다. 대충 계산해 봐도 요 며칠 사이 벌 수 있는데 놓친 돈이 50만 원은 넘을 것 같다. 음악 관련 강의를 하거나 강의를 들으러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제법 많은 시간과 돈을 음악을 위해 포기했다. 친구의 곡 작업도, 강의도 당장의 수입은 없거나 아주 미미할 것이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 더 확실히 깨달았다. 돈을 좇으면 결코 돈을 벌 수 없고, 내 재능을 즐기고 거기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돈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따라붙으리라는 것을. 그런 느낌이 점점 더 확실한 믿음으로 변해간다.


셋째, 돈(생계)을 포기하면 안 된다. 두 번째 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라는 것이지 아예 돈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당연히 꿈과 재능을 좇을 수 없다. 퇴사하고, 빚내서 여행 간다고 다음날부터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신은 인간에게 책임감이라는 걸 부여했다. 자기 삶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다른 사람의 고통과 고난도 눈에 보이는 법이다. 내가 하고 싶은 아주 작은 일을 하는 것조차 조금만 생각해 보면 수많은 타인의 희생이 깔려 있다. 음악을 하기 위해 필요한 컴퓨터와 피아노, 스피커, 음악이론, 악보... 이 모든 것들도 누군가가 만들고 정립을 해놔서 내가 쉽게 사용하고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글쓰기에 필요한 펜과 노트, 플랫폼 등도 다 혼자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즉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재능을 조금이라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도대체 나는 언제쯤 풀릴지, 뜰지 불안과 불만이 가득한 마음으로는 결코 재능의 싹에 좋은 양분을 줄 수 없다. 재능은 내 마음과 감정, 의식과 습관이라는 양분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넷째로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과 책임감이다. 내가 오늘 좋아하는 악기를 연습할 시간이 단 30분 밖에 나지 않더라도 그 시간이 날 수 있도록 도와준 많은 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습에 임하는 것이다. '어휴, 30분 가지고 뭐가 연습이 되겠어. 3시간을 해도 모자랄 판에, 로또 말고는 답이 없어' 이런 마음을 가지고는 재능을 순리대로 잘 키울 수 없다.


'나는 글쓰기, 음악하기도 바쁘니 설거지와 집 청소는 아내(남편)에게 맡기고 나는 하나에 전념해야지' 이런 마음도 책임감이 없고 옹졸하기는 마찬가지다. 배우자가 기꺼이 도와주려고 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면 되지만, 합의가 안된 상태에서 '나는 저런 시답잖은 일 할 사람이 아니야. 크게 될 사람인데, 집중해야지' 이런 마인드로 책임을 회피한다면 당연히 크게 못 될 것이다. 중간도 못될 것이다. 재능이든, 예술이든, 사업이든 사람 아래에 있지 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세 번째와 연관되는 이야기인데, 배수의 진을 (섣불리) 치지 마라. '나는 이 분야로 성공할 것이란 대단한 각오를 다졌기 때문에 과감히 사표를 내고,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그 일에만 전념할 것이다.' 이런 결정을 함부로 내리지 말라는 것이다. 배수의 진을 쳤지만, 처참하게 패배한 백제의 황산벌 전투를 생각해 보라. 인간의 의지는 믿을 게 못되고, 우리 감정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배수의 진보다는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늘고 길게, 꾸준히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여섯째, 생계와 직결된 돈에 매몰되거나 집착해서는 안 된다. 돈을 포기해서도 안되지만 돈에 집착하게 되면 '우선 돈부터 벌자'는 마음으로 꿈과 재능에서 멀어지게 된다. 재능은 돈을 넉넉히 벌어놓고 키우는 게 아니라 생활하면서 매일매일 키우는 것이다. 퇴직하고 나면 신춘문예에 당선될 걸작 소설을 쓰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이루어질 확률이 매우 낮다. 일기라도 매일 쓰고, A4 한 장짜리 소설 - 아무도 안 읽고 나와 제일 친한 친구 한 명만 읽더라도 - 이라도 주 2회 쓰겠다는 편이 꿈이 이루어지 확률이 훨씬 높다.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하면 된다. 그런데 이 간단한 보이는 정답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으로 이런 미묘한 전략들을 알고,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재능은 나를 뽐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기여하기 위해서 내가 받은 선물이다. 우리는 그것을 잘 키워낼 의무가 있다. 잘 키우지 않아도 되지만, 그러면 씨앗을 쓰레기통에 버린 농부처럼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깊은 행복감을 느낄 수 없어서 공허할 것이다.




재능에 충실한 것은 나에게 충실한 것이요, 나에게 충실한 것은 남은 내 삶에 충실한 것이다. 내 삶에 충실한 것은 곧 타인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줄 밑거름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기쁜 의무감으로 재능을 잘 키워내야 하고 키워낼 수 있는 농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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