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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Nov 02. 2023

초보 농사꾼인 당신, 어떻게 재능을 키워야 할까

20년 전 공기 정화에 좋다고 해서 산 화분(식물 이름을 아직도 모른다. AB라고 해두자). 관심을 거의 주지 않았는데도 AB는 무럭무럭 자라 10년쯤 전인가 분갈이를 하게 됐다.(그 당시 집이 딸린 가게의 뒷마당 정원을 가꾸던 집주인 아저씨가 해주셨다). 두 개의 화분으로 나눠져서 또 세월 따라 잘 자라준 A와 B. 올해 초 나는 '가지치기를 해줘야 잘 자란다'는 단순무식한 생각 하나로 정말 어리석게도 양쪽 다 메인 줄기를 잘라버렸다. 다행인 것은 오른쪽 화분은 잘린 부위에 새순이 올라오더니 신기하게도 또 쑥쑥 자랐다. 불행인 건 왼쪽 화분은 남은 줄기가 여전히 초록색이긴 하나 몇 년째 어떤 새순도, 싹도 올라오지 않고 있다. 죽은 건지, 아직 살아는 있는 건지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 


하지만 또 잘린 부위에서 새순이 올라오는 B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생명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 이후에도 B는 잔가지를 여러 번 잘랐는데, 그때마다 연두색의 새 순이 연약한 듯 나오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 보면 아주 싱싱하고 젊은 줄기가 새로 탄생해 있다.


식물의 생명력이 이렇게 신기하고 신비할진대 사람의 재능이란 것도 식물만큼, 그 이상의 잠재력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무식하게 메인 줄기를 잘라버린 A처럼 스스로 가능성의 메인 줄기를 잘라버리고 죽은 듯이 사는 삶도 분명 있다. 새순이 올라오는 B를 보면서 나는 생명력, 역동성, 성장의 기쁨, 아름다움, 용기를 느낀다. 사람이 재능을 키워가는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더군다나 새순이 돋아나는 나무가 늙었다면 그 기쁨은 배가될 것이다. 늙음과 생명이 너무나 대조되어 아름답기 때문이다.


가지치기에 요령이 필요하듯 재능을 키우는 데도 요령이 필요하다. 메인 줄기를 잘라도 안되고, 우후죽순 자라도록 가지치기 없이 그냥 방치해서도 안된다. 열정이 끓어오르는 일을 하기 위해 당장 직장을 때려치우고, 대출을 한도껏 받는 건 메인 줄기를 자르는 일이다. 재능이란 모름지기 발견이나 시작보다 지속(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속할 수 없도록 무모하게 메인 줄기를 잘라버려서는 일을 그르치고 만다. 그렇다고 현실에, 현재에 안주한다고 해서 새로운 재능의 발현을 통한 새 삶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식물에서 돋아나는 새순, 새 생명의 신비를 경험하려면 식물을 잘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내 삶을 통한 재능의 발현을 경험하려면 우선 나를 잘 알아야 한다. 주위를 돌아보면 50대 이후에도 아직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것 같다. 나이가 많아서 이것밖에 할 게 없다면서 단순노무직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진정한 자기의 삶을 퇴직 후로 미루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더 크고 다양한 능력이 있고, 진정한 자기의 삶을 지금부터 살 수 있는데도 지레짐작으로 포기한다. 왜? 자기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타인이 자기에게 붙여준 이름표, 능력, 인식을 그대로 믿기 때문이다. 


자기를 발견하는 일은 그저 되지 않는다. 지적, 육체적인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시민지식강사 양성과정>이라는, 관에서 하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니 신청해 보라는 내 말에 아내는 처음에 역정을 냈다. 일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강사가 웬 말이냐고, 그게 나한테 어울리겠냐고. <수제 화장품과 아로마>라는 주제로 5강까지 강의를 무사히 마친 아내. 아내의 강의는 내 강의보다 수강생이 더 많았고, 분위기도 아주 좋았다. 지금은 수제 화장품 공부에 아내가 더 열심이고, 재미를 붙였다. 


내가 처음에 아내에게 <시민지식강사 양성과정>을 권한 것은 꼭 전문 강사의 길로 나가지 않더라도 아내의 현재 직업인 단순판매직 외에 다른 세상도 있다는 걸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도 2019년쯤 시작한 음악(작곡)으로 아직 출세하진 못했지만, 많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였다. 옛날의 내가 그 시절에 지금의 나를 본다면 정말 깜짝 놀랄 경험들이다. B의 새순 같은 경험들.


도서관에 가면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도 뒤져보고, 여행을 가면 관광지가 아닌 곳도 여기저기 다녀보고, 하고 싶은데 못 할 것 같은 일은 일단 작게 저질러 보는 것이다. 피아노를 치고 싶은데, 자신이 없으면 오른손만으로 '학교종이 땡땡땡'부터 쳐보면 된다.


'나'를 알아가는 데 시간을 투자하라. 아까워하지 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나를 가꾸는 데는 평생을 보내지 않았는가. 내면의 나를 발견하고 꺼내서 성장시키는 일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시도를 하는데 잘 안되는 그 시간은 나를 발견하는, 시행착오를 겪는, 성장하는 시간이다. 가지를 잘라서 새순이 돋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재능을 발견하고 시작하고 성장시키는 일은 식물을 키우는 것과 같다. A의 사망이 나를 아프게 하고, B의 성장이 나를 설레게 하듯이 내 재능의 사망은 타인(세상)을 슬프게 하고, 내 재능의 성장은 타인(세상)을 기쁘게 한다.


식물에게 빨리 자라라고 채찍질하지 않는다. 양분을 과하게 주면 죽어버린다. 순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애정을 가지고 보살피며 기다려주는 게 최고다. 내 재능도 그렇게 대우해 주면 된다. 재능이 당장 세상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 가치를 믿어라. 그양이 어느 정도든 나 자신과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이라는 믿음. 


초보 농사꾼은 조급하다. 심은 후 기다리지 못하고, 열매만을 기다린다. 과정을 경험해 본 고수는 과정을 즐기고 기다릴 줄 안다. 그리고 그 농작물을 사랑할 줄 안다. 그 농작물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당신의 재능을 반짝 빛을 발해 당신을 왕좌에 올릴 도구라고 생각지 마라. 재능은 당신과 동고동락하는 당신의 벗이다. 재능과의 신혼집을 마련하라. 단칸방이든, 넓은 평수의 아파트든 재능과의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희로애락을 겪으며 자식(재능의 열매)을 낳을  때까지, 자식을 낳으면서, 부대끼며 함께 사는 것이다.




가을 녘의 들판을 아름답다. 누렇게 익은 벼들이 펼치는 황금들판. 황금들판을 보면서, 모내기를 하고 장마철에 물을 뺀, 잡초를 뽑느라 수고한 농부를 생각해 보라. 황금들판도, 농부도 아름답다. 당신과 당신의 재능이 모두 아름다울 수 있도록. 아름다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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